기획/특집

[원로들의 이야기-박철희 편] '태권도, 나의 길'(5부)

[원로들의 이야기-박철희 편] '태권도, 나의 길'(5부)

엄운규 전 원장과의 한판 승부


육사교관시절 졸업사진 박철희 사범(아랫줄 가운데)의 모습


1954년 사관학교에 가기 직전인 중위시절(포병학교에 있을 때이다)에 4단 심사를 봤습니다. 장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외박이 허락된 때라 서울에 다녀올 수 있었죠. 어느 날 서울에 왔더니 이남석 씨가 심사가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 때 나는 군대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협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계획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그전에는 각 도장 별로 별도 심사를 봤기 때문에 더더욱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심사를 보라고 해서 심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4단 심사였던 것입니다.

이 심사에는 전 엄운규(嚴雲奎) 국기원장도 참가했습니다. 당시에는 서로 안면은 없었습니다. 당시 협회라고는 하지만 각 도장별로 별도 수련을 했으므로 실제 수련하는 모습을 서로 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소문을 통해 ‘어느 관에 누가 어떻다’더라 하는 정도 였습니다.

엄운규씨는 당시 청도관에서 제일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옆차기를 맞고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는 소문도 있었죠. 그런 엄운규 원장하고 겨루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잘 모르던 사이였으므로 어떤 특기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 탐색을 하였다. 그러다 내가 돌려차기를 하며 선제공격에 나섰죠.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진짜로 때리는 거냐’는 항의가 들어온 것이다. 엄운규씨하고는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사위원인 노병직 선생에게 “뭘 때리는 겁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 항의를 하고 있는데…”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노병직 선생이 “가(서) 해”라고 지시해 다시 겨루기가 진행되었습니다(당시 심사위원은 노병직․윤쾌병 선생이었습니다). 이후 엄운규 원장이 뛰어오면서 공격 하려는 걸 살짝 피하는 찰나 심사를 주관하던 선생님들이 겨루기를 중단시켰습니다. 한창 혈기 왕성한 때이므로 일이 크게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죠. 어린 나이 때문이었는지 이때 저는 3단을 취득했습니다.

6개월 뒤에 다시 4단 심사를 보러갔습니다. 창무관 도장이었습니다. 이 때 형을 연무하다가 마루바닥이 낡아서인지 약해서인지 발을 구르다가 마루바닥이 깨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심사에서는 전일섭 선생과 대련하게 되었죠(정리자 주: 전일섭은 조선연무관권법부를 창설한 전상섭의 친동생으로, 6․25이후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북도에서 지도관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때는 군인이었으므로 민간에 있는 도장(관)에 가입하지는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중위시절 하루는 한체(한국체육관)에 들렸는데, 고려대 학생이 날 알아보더니, 선생님 체신부 자리에 창무관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가보니까, 이남석 씨가 그 자리에서 창무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올라오면 여기서 운동이나 해야겠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는 창무관에 가입한 적이 없습니다. 저를 교범으로 해 놓았다는 기억이 납니다. 이 때문에 간혹 저와 창무관을 연결시키기도 하는데요 저는 가입조차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남석 씨는 YMCA권법부에서 저와 수련을 하면서, 6․25 이전에 이미 체신부에 권법부를 두고 운동을 가르쳤습니다. 윤병인 선생도 가끔 가서 운동을 가르치고 심사에 참여하시곤 했습니다.

1954년 육군 사관학교에서 ‘태권도’라는 과목이 개설되면서 초대 태권도 교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육군사관학교에 태권도를 하는 모임은 있었습니다. 4년 동안 초단을 따야하는 정식 과목으로 채택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포병학교 참모장에게 사관학교로 가겠다고 부탁을 해서 전출을 가게 되었고 이후 초대교관을 지냈습니다.

1946년 설립된 육군사관학교는 1952년 4년제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4년제가 처음 적용된 육사 11기생 중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 김복동 전 육군사관학교장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11기생이 아닌 1기생이라고 했습니다. 이 학사 학위를 따는데 2학점이 모자라서 뭘 가르칠 것인가 고민 하다가 태권도를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보충학기에 3~4개월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태권도는 육사 생도들이 대부분 참가할 정도로 체육 활동 종목 가운데 럭비, 검도, 유도보다 인기 있는 종목이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교관은 1956년 5월 제대하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육사에서도 윤병인 선생에게 배운 무예를 지도했습니다.

육사에 있는 동안 명동에 있는 중국(당시는 대만을 말함)대사관에서 무예를 가르치는 산동 출신의 고광유 씨하고 잠시 동안이나마 무예를 교류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중국대사관에 가서 무예에 대해 물어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고광유 씨는 원래 산동성의 마령 장군 밑에 있다가 군산에서 포목장사를 했는데, 당시 중국인들이 한국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왕동원 장군이 요청해서 중국대사관에서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고광유 씨를 처음 봤을 때 나보고 뭘 하나 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뭘 할 줄 아는지 알아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때 장권을 시연했습니다. 당시 형 연무를 본 고광유 씨는 가르칠 게 없다면서 교류를 제의했죠. 별도로 도장을 만들테니 그 곳에서 수련하자고 했습니다. 그 때 고광유씨가 자기 딸을 훈련시켰던 기억이 있다. 당시 저는 차가 없었습니다. 새벽 4시에 명동까지 걸어 와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다시 사관학교에 출근해야 했죠. 이후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교본을 내다


파사권법 책 표지

1956년 5월경에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다가 제대를 한 후 그 해7월부터 8월 12일까지 한달 간 해인사에서 그동안 배운 권법을 중심으로 해서 ‘파사권법(破邪拳法)’이라는 책의 내용을 탈고했습니다 이 책은 신설동에 있을 때, 김용채씨가 데리고 와서 수련하던 최성규(崔成圭) 중령이 미국에 가서 계속 수련을 하고 싶은데, 권법 하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사진을 찍어가야겠다고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럴 바에 아예 교본을 한 권 만들자’라고 해서 시작된 거였죠. 그래서 한달 간 해인사(海印寺) 홍제암(弘濟菴) 영자전(影子殿)에 들어가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 교본은 3부작으로 그 첫 번째 권이 ‘파사권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작으로 ‘활인권법(活人拳法)’,․‘완인권법(完人拳法)’을 이어 구상했습니다. ‘파사권법’은 기본기와 오키나와 카라테 형들을 중심으로 구성됐습니다. ‘활인권법’과 ‘완인권법’은 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형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사권법’의 파사는 삿된 것을 깨트리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에서따온 것입니다. ‘활인권법’의 활인(活人)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으로 다른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완인권법’의 완인(完人)은 인간을 완성하고자 한 뜻에서 붙인 것인데, 이 명칭들은 권법, 즉 태권도를 하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즉 ‘파사권법’은 내가 수련한 권법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무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저의 이상이 담긴 명칭인 것입니다.

‘파사권법’에는 윤 선생님이 창안한 기본형 1절 부터 5절의 내용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리한 정공형 중 제1형도 포함되어 있죠. 자세를 고정한 채 뒷손으로 찌르는 걸 해 보자는 뜻에서 형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대구에 아이끼를 한다는 노인이 있다고 해서 대구에 가서 만났는데, 그 분이 바로 최용술 선생이었습니다. 마당에 권고대를 세워놓고 장막이 쳐져 있었죠. 최용술 씨의 수도부위는 권고를 얼마나 쳤던지 달걀 하나가 더 있는 것처럼 두꺼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편집 =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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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감동 2010.01.29
너무 좋은 기사입니다. 무카스 감동입니다.
사범 2010.01.29
위 내용에 착오가 있는것 같아서 .. 본문중에 1. 육사는 1954년에 4년제로 바뀐것으로 2..1954년에 태권도란 과목이 개설 된것으로 하지만 육군사관하고 홈피 연혁에 보면 1951년 10월31 경남진해에서 4년재 정규사관학교로 재개교했고 , 1955년 10월1일사관학교 설치법이 통과되어 이학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군에서 태권도란 단어를 사용한것은 오도관 최홍희1955년 이후 전군에 보급된것으로 되어잇고 1954년도에는 육군사관학교 당수부와 유도부가 있었습니다.
무인 2010.01.29
군에서 태권도란 단어를 사용한것은 오도관 최홍희1955년 이후 전군에 보급된것으로 되어잇고 1954년도에는 육군사관학교 당수부와 유도부가 있었는데, 그 당수부를 박선생이 태권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권도와 당수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파사권법에 수록된 평안형을 비롯한 철기, 발색, 관공 등의 형들이 모두 현재 일본 공수도의 기본형들입니다.
아무개 2014.05.20
박사범님 제자로서 만수무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