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격도란 무엇인가

권격도는 내공 위주의 동양무술과 외공 위주의 서양무술의 장점을 살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신체적 조건에 알맞게 과학적으로 재구성한 심신수련으로서 건전한 정신에 인격수양을 함양하고 예술성과 생명력에 유연한 리듬을 가미한 종합무예다.
종합무예인 권격도의 경기는 보호구를 착용하게 해 선수들의 안전을 기함과 동시에 최대의 슬기를 발휘하게 하는 호구식(아마추어 경기)과 관전적 레크레이션의 가치가 큰 전문식(프로 경기)으로 나뉜다.
현재 36개국이 가맹된 한국 소재의 세계 본부는 그동안 7회의 세계챔피언타이틀전, 120여회의 한국챔피언타이틀매치 등 전문경기를 개최해 권격도 선수와 지도자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역사적 고증
1. 태고의 원형과 고대올림픽: 오늘날의 스포츠와 고대의 스포츠와의 동일점은 어느 것이나 인간투쟁본능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에 인류가 나타남과 동시에 삶을 위한 투쟁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연히 투쟁에 이기기 위한 방법과 수단을 익히기 위해 이런 삶을 위한 투쟁은 경기형식으로 행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이런 경기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경기가 서기 2600년전(B.C. 632년)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 종목으로 판크라티움(PANCRATIUN)의 유명한 경기자로 로도스의 도리에우스(DORIEUS)와 데이아고라스(DEIAGOERAS) 등이 전해지고 있다. 5만명 이상이 관람할 수 있는 고대의 경기장 시설과 판크라티움의 형태는 권격도의 원형으로 관객에게 보일 수 있는 형태도 권격도와 같은 것이 있다.
2. 우리 나라의 사적(史蹟): 백두산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우리의 선조는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농경생활을 했다. 이후 우리의 선조는 전투능력의 배양을 위해 달리기, 던지기, 격투, 수영 등 자발적으로 무예를 닦았으며 이런 무예가 파생되어 오늘날의 스포츠가 된 것이 많이 있다.
삼국이 서로 대치하며 세력다툼을 벌였던 교전시대인 삼국시대의 정세는 민족통일의 기운(氣運)을 조성했고 한편으로는 무예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이 시대에는 신체의 단련만이 전투력을 증강하는 방법이어서 고도의 무예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古墳壁畵)에 그려진 풍속도(風俗圖)와 무용총(舞踊塚)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의 생활표현에 두 사람이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을 그려 놓은 것이 최고(最古)의 실증이며 신라 화랑도 기본정신의 5계로 보아 무예를 수련하여 학문을 닦았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무술경기대회 전렵(田獵)이란 것을 열고 임금 스스로 임석하였다하니 심신단련을 위한 훈련에 그친 것이 아니라 권격도와 같은 경기로서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사적의 삼국사기, 고려사, 무예도보통지 등에는 수박, 축국, 추천, 수벽타, 수박희, 수백, 권법, 권술, 격봉, 격양, 격검, 격구 등을 기록했다. 특히 고려사에서 수박희는 무술로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경기로서도 제 삼자가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조왕조 실록에서는 수박희가 얼마나 많은 일반대중에게 보급되었는가를 찾아볼 수 있다. 정조 14년(1790년경) 왕명에 의해 이덕무가 만든 무예도보통지에는 권법이 무예의 한 정식종목으로 포함되어 수록되었다. 이것은 그만큼 권법에 대한 무예로서의 비중이 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조 말엽부터 문인 숭상과 사색 당파싸움으로 인한 무인의 학대와 탄압으로 무인은 은둔생활 과 도피생활을 하였다. 또한 일본의 침략으로 한일합방이 된 일제시대에는 우리 문화의 핍박으로 인해 우리 문화의 연맥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해방 후 6·25전쟁 발발과 50년대 말까지 어수선한 사회혼란 등으로 장기간 동안 우리 문화와 함께 고유의 무예는 전통승계가 없다시피 되었으며 그 행적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해방 후 일본, 중국 등으로부터 입국한 몇몇 분들에 의해 당수·공수 등으로부터 심신수련과 호신무술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62년도 태수도가 발족하여 64년도 태권도로 개칭되었으며 합기도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3. 권격도의 정립: 태고의 원형에서 고대올림픽과 우리 나라의 사적에 나타난 것과 같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투쟁본능을 갖고 있어서인지 이 지구상에는 투기종목의 운동과 그 인구 또한 세계 곳곳에 무수히 많다.
그들의 목적은 거의 비슷하나 각기의 고립된 체계를 고수하고 타종목과는 상호교류나 협조가 되지 않았고 그 종목을 배운 자만이 그 종목의 경기에 참가 할 수 있었으며 훌륭한 선수나 지도자도 장래가 뚜렷한 보장이 없었다.
겨우 학생시절에 입시의 특혜나 소수의 장학특혜만이 있었을 뿐이었으며 졸업 후에는 지도자의 길 외에 별로 희망이 없었음이 사실이었다. 권격도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세계적인 전문 권격도 스타로 경제적, 사회적 대우를 받게 하고 지도자는 선수육성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 권격도창시자 정도모(1952년부터 중국인으로부터 手를 전수 받고 당수 등을 수련함)씨가 부산에서 1969년 12월 16일 화랑권격회를 조직한 것이 권격도의 시발이 되었다.
1971년 5월 1일 발족된 대한권격협회는 세계 각국의 투기종목인 킥펀치·타이복싱(무애타이)·풀·콘택트·킥복싱·격투기·가라데등과 교류를 해오다 지난 1980년 7월 1일 당시 문교부 체육국에 사회단체등록을 필한 후 도(道)로서의 관념을 갖기 위해 그 해 11월 7일 대한권격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권격도란 명칭은 우리 사적(史蹟)의 권법권술(拳法拳術)등의 권(拳) 자와 격봉(擊棒)·격양(擊壤) 등의 격(擊) 자를 따서 만들어진 순수한 우리의 이름이다.
경기 규칙
1. 마샬 알트룰: 2분 경기, 1분 휴식(데뷔전 3R, 랭킹전 5R, 한국챔피언전 7R, 세계챔피언전 9R)
2. 후리스타일룰: 3분 경기, 1분 휴식(데뷔전 3R, 랭킹전 4R, 한국챔피언전 5R, 국제전 5R)
3. 유럽룰: 3분 경기, 1분 휴식(데뷔전 3R, 한국챔피언전 5R, 국제전 5R)
득점
치고, 차고, 정확한 강타
다운시켰을 때
묘기를 발휘하여 관중을 열광시켰을 때
반칙
각 라운드마다(중단이상) 7회 이상 발공격을 안 했을 때(마샬아트룰에 한함)
팔굽치기(후리스탕리 예회)
무릎치기(후리스탕리 예회, 유럽룰 경우 얼굴금지, 몸통은 허용)
음부(낭심)를 공격하는 행위
넘어진 상대를 치거나 차는 행위
시작 전 공격하는 행위
경기 중단 시 공격하는 행위
소리지르는 행위
머리로 박치기하는 행위
로프를 잡고 공격하는 행위
심판명령에 불복종하는 행위
권격도 연혁
1969년 12월16일 화랑권격회발족
1971년 5월 1일 대한권격협회 발족
1980년 8월22일 문교부 체육국 사회단체등록 허가필
1987년 11월 7일 대한권격도협회로 개칭(문교부허가)
1991년 5월10일 국제권격도연맹 체육청소년부(사단법인 허가)
세계참피언타이틀 7회, 국제경기교류 해외원정 250여회(한국선수 760여명 참가), 한국챔피언타이틀매치 120여회, 신인선발 및 자체랭킹전 150여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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