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칼럼] 도(道)에 대해서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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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좌(靜坐)에서 묵상(默想)까지
공권유술 도관에 입문(入門)하게 되면 제일 먼저 공권유술의 철학과 여러 가지 기술의 원리를 숙지하고 도장의 수련실 내부의 안내와 기본적인 소양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기전에 “호신!(護身)”이라는 구호와 함께하는 인사법과 이번 장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묵상(黙想)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다.이 묵상이라는 것을 하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좌(靜坐)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보기보다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것을 하고 있으면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단정하게 느껴지며 품위와 기품이 엿보이게 할 수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바르게 하기에는 최고의 자세인 것이다.
공권유술도관에서 수련을 하기전과 하고난 후에는 대부분 정좌를 하고 묵상을 하게 된다.
물론 필자도 같이 묵상을 하는데 몇 분이 지나서 실눈을 뜨고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면,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수 없다. 우선 다리가 저리니까 엉덩이를 들썩들썩 움직이고 어떤 이는 마치 똥 누는 자세 마냥 매우 불편하게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허벅지가 두꺼운 뚱뚱한 체형의 사람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보인다.
보편적인 현상은 자주 머리를 극적이거나 온몸의 이곳저곳을 쑤시고 매만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던 행동을 꼭! 정좌하고 눈감고 묵상을 하라고만 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련을 처음 하는 날부터 약 3개월 사이에 일어난다. 3개월이 지나면 적응이 되어 오히려 정좌가 훨씬 편하고 자신의 바른자세가 된다. 또한 깊은 생각을 하기에도 좋다. 하긴.... 일반 보통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것이 몇 번이나 될런가?
예전 같으면 어르신들이 “얘, 길동아~ 일루와 앉아라!” 라고 말이 떨어지면 쏜살같이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지금은 어떤가? “왜?” 또는“왜요?” 라는 말로 반격을 하기 일쑤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좌의 교육이 사라졌다. 이것은 예절교육의 기반을 흔들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들의 방에 들어가도 어찌된 것이 방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기만 한다. 어른이 오시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하며 어른이 먼저 앉게 되면 그 후에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무술에서의 정좌와 묵상은 예절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모든 예절의 근간은 정좌(靜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무술을 수련하는 한 과정이라면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일단 정좌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어로는 ‘메디테이션(Meditation)’ 라고 부르거나 혹은 ‘시팅 콰이어트(Sitting-Quiet)’라고 불리우는 이 술어는 중국말로는 ‘징쭈오‘ 한국말로는 ‘정좌’ 일본말로는 ‘세이자‘라고 읽는 한자 정좌(靜坐)의 번역이다.
오오니시 세이류우(대서청륙)에 의하면 정좌의 뜻은 다음과 같다. ‘고요히 앉아서 심신을 가라앉히는 것을 가르키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국어사전적의미도 이와 비슷하다.
정좌(靜坐)[명사][마음을가라앉히고몸을바르게하여단정히 앉음] 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때 묵상과 정좌는 서로 땔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상식한마디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출생. 이천백(伊川伯)에 봉하여졌으므로 이천 선생이라 존칭된다. 형 정호(程顥:程明道)와 함께 주돈이(周敦頤:周濂溪)에게 배웠고, 형과 아울러 ‘이정자(二程子)’라 불리며 정주학(程朱學)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정좌는 아마도 불가의 좌선을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되나, 일반적으로는 좌선입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배척하고 일상생활에서 흐트러지고 동요하기 쉬운 의식을 조용히 하여 집중통일하고, 지향을 정하여 존양성찰의 한 도움이 되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선불교에서는 이 술어를 잘 안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그 발음까지도 ‘세이자’라 하지 않고 ‘죠오자’라고 하며, 그들은 유학적 의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한자까지도 정좌(正坐)대신에 정좌(靜坐)를 사용한다.
당조가 중국을 통일하였을 때는, 수도에 있던 유학관료들과 일반적인 유학지성인들은 새로 일어나는 불교의 종교적 세력과 정면충돌을 하였고 그들 온 주위에 참을 수 없는 외래사상의 무거운 압력을 느꼈다.
이러한 형세에 처하여, 참선에 의한 불도의 묘리해탈을 얻기 위하여 저들의 부모처자를 버리고 입산하여, 인륜에서 벗어나는 불도들에 반대하기 위하여, 유학자들은 집에 있어 인간의 도리를 다해가면서 인간 수양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냥 무릎 꿇고 앉으면 되는 것이지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리들 호들갑을 떨며 의미를 부여할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리고 자주들은 바 있는 수도(修道)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명 도(道)라는 것을 닦는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말인데, 쉽게 설명하면 수도(修道)란 도가(道家)의 정좌법(靜坐法)을 말한다.
그러니까 산속에 들어가서 돌맹이만 ‘박박’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릎을 ‘팍’하고 꿇는 것 자체가 수도(修道)요, 도(道)를 닦는다는 말이다. 이 별것 아닌 정좌하나만을 가지고 도가 튼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좌법은 단전호흡(丹田呼吸)과 기(氣)의 단련으로 심신을 수양하는 것인데 대개의 무사들이 이를 중요시하였다고 전해진다.
무예에 조예가 깊다는 것은 일찍이 그 무술이 도(道)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공권유술도(空拳柔術道) 또한 이것을 중시여겨 정좌법에 매진한다.
정좌법 외에 무예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중국 선종(禪宗)의 좌선(坐禪)이다. 달마조사(達磨祖師)가 저술한 역근경(易筋經)은 그러한 내공(內功)을 통한 심신단련법을 설명한 책이다.
너무 복잡하게 설명하고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정좌에도 나름대로는 심오한 뜻이 있다고 독자여러분이 해석해주시길 바란다. 각설하고, 어쨌든 간에 지금부터 올바른 정좌법과 정좌의 요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강의를 할 계획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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