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객관적 역사를 알고 싶다면...
시중에 나온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책 중에서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한 눈에 띄는 책이 두권 있어 소개 하고자 한다.
태권도 현대사(강원식. 이경명 공저 1999년, 보경문화사)와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김용옥 저 1990년, 통나무)가 그것이다.
태권도 현대사는 해방 후 태권도의 성립배경과 발전과정 중의 알력등, 매우 세부적인 항목에 대한 내용까지 담고 있어 저자의 완전한 태권도사가 되지는 못한다는 걱정을 상쇄할만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현재 태권도계의 주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들 정도이기는 하다(현재 수박도의 황기관장 과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이 현재의 주류의 시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태권도 성립배경에 대한 시각이 현재 태권도 정통성논의에 대한 나름의 분별력을 심어줄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창무관, 송무관등, 당시 공수도를 가르쳤던 5대 기간도장들이 어떻게 통합되고 대한공수도협회에서 대한태수도협회 그리고 대한태권도협회로 바꾸어 나가게 되었는지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군사 쿠데타 이후의 국가 재건 최고회의의 포고령 제6호 사회단체 재등록에 의한 군부의 유사단체 통합 명령에 의한 통합).
그리고 현재 세계 태권도연맹의 총재인 김운용씨의 등장배경(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보좌관)에 대한 약간의 설명도 있어 당시 군사정부와의 밀착성을 새겨 볼만하다고 생각된다.
또 태권도의 경기규칙과 보호장비의 발전과정 등 우리가 상세히 알지 못했던 경기태권도의 발전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했다.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를 쓴 김용옥 씨는 우리가 현재 TV에서 보고 있는 도올 김용옥 씨이다. 도올이라는 호가 순우리말인 석(石)의 장음이라는 설명에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포스트모던적인 글 쓰기에 더 당황하기도 했다.
그의 대중적인 글 쓰기와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았느니라."라는 그의 서문에 이미 책의 전반적 성격이 드러난다고 보아도 좋을듯하다.
"해방 이전에는 태권도라는 말이 없었으며 태권도는 가라데의 변형, 발전이다"라는 단정과 함께 "가라데가 우리민족의 독특한 전통적 몸쓰기와 결부되어 현재의 태권도가 성립되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그의 논문은 현재 태권도학계의 소장파 학자들과의 학술적 논의 끝에 이루어진 글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그는 국수주의적 배타성도 원치 않으며 기원론적인 논쟁 또한 원치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그의 실용주의적 역사관과 연결되지만 현재의 태권도의 우월성에 대한 자심감의 발로이다.
말 그대로 태권도는 가라데를 초월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미 태권도는 완전히 한국화 되어 가라데와의 연관성은 역사책에서나 찾아봐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그의 무도철학은 근대 이전의 지배적인 폭력성보다는 근대적 개념인 비폭력 자기방어술과 개방성, 유희성, 심미적 측면이 태권도에는 강조되어 있으며 이것을 더욱발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근대무술 용어를 태권도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경기태권도와 그 의미가 일맥상통 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태권도계에서 그를 배척한 이유가 흔히 금강 역사상이나 무용총에서의 겨루기 자세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그의 논리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논문 역사성은 조선, 고려, 고구려로 올라가지 않으며, 바로 일본에서 오키나와로 넘어간다. 즉 태권도 역사의 허구성을 논파하는 것이다. 위의 두책은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양심적인 성과인 동시에 태권도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 자신감의 발로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권도가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큰 자긍심을 주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 없이 왜곡으로 점철된 현재의 태권도사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진다면 김용옥씨의 말처럼 더 큰 왜곡과 망신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기자 자신도 걱정된다.


댓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