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13편] 해동검도 1기 사범들 이야기(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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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사범들의 첫 번째 취직, 새마음병원

김정호 총재(사진 왼쪽)와 이종구 부총재
이종구 사범 (현 세계해동연맹 부총재) 은 전북 군산 출신이다. 군 제대 이후에는 고향에 있는 태권도 도장의 사범으로 취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나한일씨의 큰 형을 통해 해동검도를 접하게 됐다. 서울에 가면 해동검도라는 놀랄만한 무술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총재는 당장 서울로 올라와 서초동 해동검도 도장에서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 대한해동검도협회)와 면담 후 해동검도에 입문하게 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 이두용 감독, 양택조씨, 김총재 네 사람이 의기투합해 운동할 수 있는 배우와 해동검도 사범 양성을 위한 사범 연수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던 당시의 상황이었다. 따라서 도장에는 항상 많은 인원들이 상주했고, 해동검도 수련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 프로젝트의 후원처인 현진영화사는 당시 영화 ET의 수입과 배급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현진영화사는 다시 이 자금을 영화제작과 배우 양성을 위해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송정 푸른 솔’ 등의 영화가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거둬, 영화사에서는 경제적으로 더 이상 배우양성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도장에 상주하는 10명~20명의 생활을 김 총재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쌀 한말이 하루면 동이 나는 절박했던 상황이 오게됐다. 힘든 운동에 게다가 늘 배고픈 젊은이들을 먹여 살리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인원을 줄여야 했다. 운동의 강도는 가혹하리만큼 세졌다. 도장 생활에서의 작은 실수 하나 용납되지 않았다. 실수가 있으면 목검을 거꾸로 잡고 엉덩이를 후려쳤다. 하지만 힘들어지면 힘들어질수록 사범들 또한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생활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 쌀로 밥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국수로 끼니를 때웠다. 동네 음식점 아주머니들이 길가에 나와 김치거리 등을 다듬고 있으면 슬쩍 끼어들어 일을 도와주고 찬거리를 얻어왔다.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다방, 레스토랑 등에서 술 손님이 행패를 부리면 달려나가 도와주는 일도 자처했다. 답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도 어려운 상황을 아는지 반찬 등 먹을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급기야는 사범들이 손수 ‘포마싸롱’이라는 포장마차를 만들고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김정호 총재 새마은병원 명함
하루는 대학생이었던 이종구 사범의 동생(이승구 전국해동검도협회 이사, 현대건설 부장)이 형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형을 찾아간 곳은 서초동의 도장, 허름한 도장에 많은 청년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먹을 것도 변변히 없고 숙소는 조립식 앵글을 3층으로 짜 맞추어 합판하나 덜렁 깔아 논 것이 전부였다. 형이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가 되자 형이 밖으로 나가더니 물이 흥건한 걸레를 갖고 들어와 그걸 머리맡에 놔 준다. 뭐냐고 물으니 도장이 건조하니 이렇게 해야 목이 안 아프다고왔다. 순간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당장 집으로 내려가자.”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이종구 사범은 이렇게 회상한다.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어 차라리 해동검도 도장이 망했으면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 발로 도장을 나온다는 것은 자존심이 너무도 상하는 일이었구요. 무엇보다도 총재님을 져버리고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이종구 사범의 김 총재에 대한 믿음은 이 후 세월을 거치며 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더욱 강해졌다. 지금을 김 총재의 이상과 포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제자이자 세계연맹의 부총재로 함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이 사범의 무력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서초도장 시절 회식자리였다. 장소는 천호동, 김 총재를 비롯해 사범들이 모두 함께 자리 했다. 자리가 파해 밖으로 나오자 그 무렵 동네 건달쯤으로 보이는 10여명의 패거리가 시비를 걸어 왔다. 사범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자신만만하게 달려 나갔다. 너무 방심한 탓에 순간적으로 다리걸기에 걸려 대자로 뻗었다고 한다. 기선을 제압 당한 위기의 순간, 누군가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바로 이종구 부총재였다. 여덟 명의 상대가 순식간에 이사범을 둘러 쌌다. 준비 땅! 한방에 하나씩, 이 사범이 손발을 교대로 몇 번 움직이고 나자 여덟 명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여기까지 힘들었지만 당시의 상황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를 전해봤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최태민 목사가 김 총재를 위해 다시 한번 나서줬다. 김 총재를 비롯한 사범들과 나한일씨를 자신이 임원으로 있던 새마음병원(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취직시켜 준 것이다. 김 총재는 관리부장, 사범들은 경비 요원이라는 직책이었다. 이때부터 김 총재와 사범들의 생활과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사범들의 안정적인 생활이 시작됐고, 해동검도 도장 운영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海東劍道 이야기> 14편 :해동검도의 영화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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