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11] ‘해동검법개론’ 왜, 나한일 편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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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 감독의 검도영화 관심 시작

1차 집필 당시(왼쪽), 2차 집필 당시
1970년대 초, 당시 쿵후 사범이었던 이소룡은 쿵후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당시 무술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는 연일 흥행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두용 감독(1982년 영화 ‘피막’으로 칸느영화제 수상 / 1984년 영화 ‘물레야 물레야’로 칸느영화제 수상)이 한용철(미국 태권도 사범)을 주연으로 많은 액션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 검술 영화를 기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감독은 ‘싸울아비’, ‘달빛자르기(월광무)’, ‘신크마리’ 등의 영화를 준비하며 검을 잘 쓰는 주인공을 물색 중에 있었습니다.
영화계에서 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던 찰나,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 대한해동검도협회)가 해동검도 교본발간을 준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한일씨는 김 총재를 매일 같이 찾아오게 됩니다. 자신이 영화 주인공이 되면 해동검도가 알려지고 사범들도 영화에 출연하여 경제적인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요. 자신을 저자에 포함시켜 달라는 부탁도 같이 말이죠.
이에 김 총재는 ‘해동검도를 모르는데 어떻게 책의 저자가 되어 영화 주인공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한일씨는 자신은 심검도를 했기 때문에 이두용 감독한테는 심검도를 보여주고 영화촬영이 시작되면 김 총재가 무술 감독을 맡아 자신을 가르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해동검법개론’에 자신의 이름이 저자로 실려야 한다며 사정을 했다고 합니다. 나한일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김 총재는 김동주씨와 함께 공저자로 끼워주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한일씨는 김총재를 다급히 찾아와 대한검도회(Kendo)에서 서초동 해동검도 체육관을 무허가라며 고발하고, ‘검도’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소송 조치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실제로 정도술의 안일력 총재, 심검도의 김창식 총재 등이 검도 명칭을 사용하다가 대한검도회(Kendo)로부터 고초를 겪은 것을 알고 있는 김 총재는 실제 그로부터 며칠 후 대한검도회(Kendo)로부터 우려했던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대한검도회 Kendo에서의 전화, 공문발송 등의 압력 행사는 이후에도 계속되며 이 같은 내용은 본 연재를 통해 자세히 밝혀집니다.)
이때, 나한일씨가 이러한 상황에서 해동검도 책이 출간되면 모든 화가 책 출간에 도움을 준 최태민 목사에게 미칠 수 있으며 자칫하면 도장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을 야기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책 저자를 자신 단독으로 해 주면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합니다.
김 총재는 친구의 이 같은 제안을 고맙게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김동주씨, 최태민 목사, 김형진 회장, 양택조 감사 등과 상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책의 저자를 바꾸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모두 반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습니다. 책의 출간일이 다가왔습니다. 미룰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나아지거나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나한일씨를 책의 저자가 아닌 편저자로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책 제목도 ‘해동검도개론’에서 검도를 수정한 ‘해동검법개론’으로 바꾸어 출간하기로 했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아직은 해동검도 책자가 완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차후 2편이 출간되고 그 다음 1편과 2편을 합쳐 더욱 많은 내용을 보충하여 완결된 교본 책자가 나오면 그때 저자를 바로 잡아도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영화에 출연하여 해동검도를 알리고 책의 출간으로 자칫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친구 나한일씨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1984년 4월 15일 김정호, 김동주 공저의 ‘해동검도개론’이 아닌 500쪽의 나한일 편저 ‘해동검법개론’이 나오게 됐습니다.
그렇게도 책의 저자를 소망했던 나한일씨는 결국 이 책을 갖고 이두용 감독을 만나 설득을 했고 이 감독도 영화제작 과정에서 후원을 ‘해동검도협회’라고 명시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김 총재는 1984년 5월 15일 경향신문에 ‘이두용 극영화 무술연구회 회원 모집’ 광고를 내고 지도자 모집을 시작했다.
최근 김 총재는 ‘해동검법개론’을 전국 유명도서관과 대학교에 보냈습니다. 회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고 지금도 50여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잊을 수 없는 사건은 훗날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거쳐 어렵게, 어렵게 명맥을 이어와 장백산 스승으로부터 김정호 총재에게 전해진 우리나라의 전통무예이자 검술인 해동검도를 한낱 개인이 만들어낸 창작무술로 매도하려는 개인과 소수집단의 일부 허울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습니다. 해동검도인을 비롯한 모든 무도인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이러한 오류와 폐단은 바로 잡혀지고 있으며 <海東劍道 이야기>에서는 사실자료에 근거한 정확한 내용들이 앞으로 계속 연재될 것입니다. 해동검도의 진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海東劍道 이야기> 12편 : 해동검도 1기 사범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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