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10]해동검도 최초 서적 ‘해동검법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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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부분 김정호 이론 부분은 고 김동주씨가 맡아 진행

고 김동주씨가 무예도보통지를 해석하는 과정들이 잘 나타난 사진
우여곡절 끝에 故 최태민 목사의 도움으로 서울 서초동의 해동검도 도장을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는 체계적인 해동검도의 수련내용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담은 해동검도 서적인 해동검도 교본의 출판을 준비한다. 사실 스페인을 다녀오기 전, ‘해동검도’ 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검도 명칭을 정하고, 수련과정을 체계화시킬 때부터 필요성을 느끼고 마음먹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책을 출판하겠다는 결심이 서자,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비용’이었다. 정말 미안했지만, 또 다시 최태민 목사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다. 무작정 찾아갔다. 책을 출판하려는 이유와 당위성을 설명했고, 최 목사는 두말없이 후원 비용을 내주었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10년 동안 관악산 천인암에서 장백산 스승으로부터 해동검도의 실기와 이론을 전수 받았고 나름대로 수련을 체계화 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다시 교본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무예도보통지와 해동검도의 술기의 일치를 설명하고,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해동검도를 찾고 이를 규명하는 역사적인 작업은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김 총재는 한 학에 조예가 깊은 이모부 김동주씨를 찾아 갔다. 일전에 무예도보통지를 들고 찾아간 후, 수 차례 자문을 구한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책의 출판을 위해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허락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신은 해동검도를 모르고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김 총재는 고심 끝에 제안을 하나 했다. “전문가의 견해와 실기가 필요한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 역사적 배경을 비롯한 무예도보통지와 장백산 스승으로부터 자신이 전수받은 실기 내용의 일치를 논리적으로 규명해야하는 중요한 부분을 도와 달라.” 김총재의 이 같은 설득이 수 차례이어졌고, 마침내 김동주씨는 교본의 공동 집필을 허락했다.
그 당시, 김동주씨의 상황과 심경은 ‘해동검법개론’의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다.
“전문가도 아닌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젊은 검도인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열성에 고무되고 이끌리어 자료수집에 나섰다.”

해동검개론에서 실기부분을 맡은 김정호(왼쪽)
김동주씨의 도움이 결정되고 집필을 위한 행보가 시작됐다. 먼저 방대한 수련체계를 가진 해동검도의 술기를 어디까지 싣느냐를 결정해야 했다.아무리 고민해도 한번에 한권의 책에 술기와 여러 다른 내용까지 모두 담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교본을 만들기 보다는 해동검도가 무엇이다라고 소개하고 술기의 일부를 담아 첫 번째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나머지 술기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2편을 내기로 했다.
김 총재는 해동검도 술기 중 쌍수검법, 심상검법, 예도검법, 본국검법, 장백검법, 격검 등을 첫 권에 담기로 하고 이를 위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1983년 12월, 서초동 도장에서 도장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으로 촬영했다. 사진을 현상해 보니 조명 등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마추어들이 찍은 사진이라 교본 사진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1984년 1월 전문가에게 의뢰해 스튜디오에서 재촬영을 했다.
해동검도 초창기, 해동검도의 술기를 정확히 시연할 수 있는 사범이나 회원이 없던 때라 김 총재가 모든 술기를 직접 시연했다. 두 명의 시연자가 필요한 격검 부분은 김 총재와 당시 유단자였던 영화배우 김병옥씨(‘올드보이’- 유지태 보디가드역/ ‘친절한 금자씨’- 목사역 등에 출연)가 시연자가 되어 촬영을 했다.
검법 실기 부분 중 쌍수도, 예도, 본국검이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있어 그 안에 실린 한문 설명을 발췌하여 교본에 시연사진과 병기하였고 그 외의 심상검법, 장백검법은 무예도보통지에 없으므로 시연사진과 동작에 대한 설명을 실었다. 이 과정 중 김동주씨는 어려운 한문 고어로 기록된 무예도보통지의 번역에 어려움을 느끼고 중국 학교에 자문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식 한문이 아닌 조선식 한문 표기라 하여 거절당했다. 결국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해석에 성공했다.
또한, 안국동 고서점가와 국립도서관 등을 뒤져 한국, 중국, 일본의 각종 역사서와 검도 교본, 무예도보통지와 무비지, 조선무사영웅전, 일본검도사 등을 참고 문헌으로 활용하여 한국의 고대 검도사와 해동검도의 흔적들을 규명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김정호, 김동주 공저의 ‘해동검도개론’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1984년 4월 15일 책이 출판되었을 때 책표지에는 어찌된 일인지 ‘해동검도’가 아닌 ‘해동검법’이 ‘김정호, 김동주 공저’가 아닌 ‘나한일 편저’가 쓰여져 있었다.
이 사건은 훗날 ‘해동검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海東劍道 이야기> 11편 : <해동검법개론> 왜 나한일 편저인가?
해동검도가 해동검법으로 김정호 김동주 공저가 나한일 편저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기막힌 이유가 다음주에 공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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