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9] 서초동 해동검도 도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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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의 지원, 서초동 도장 개관에 숨은 뒷 이야기

서초동 도장에서 수련 중인 김정호 총재의 모습
(사)세계해동검도연맹(WHGF)의 김정호 총재는 1982년 3월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에 친구인 심검도의 나한일씨와 기천의 박대양씨를 서로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1983년,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무도 도장을 오픈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방송계에서 일을 하며 양택조씨 등과 친분을 갖고 있던 나한일씨는 양택조씨로부터 당시 현진 영화사의 김원두 사장을 소개받았습니다. 김원두 사장에게는 조카가 있었는데 이 조카는 몸이 허약해 집안의 큰 걱정거리였고 이를 알게 된 나한일씨가 이 조카를 기(氣) 치료를 통해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김원두 사장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치료를 위한 장소가 꼭 필요하며 그 장소만 마련해 준다면 조카의 치료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게 된 것입니다. 장소가 정해지자 기 치료는 박대양씨가 맡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현진 영화사에서는 서울 강남구 서초동 63-3번지 신영빌딩 3층에 기 치료를 위한 도장을 얻어주었습니다. 1982년 10월 25일, 보증금 1,800만원에 시설비 200만원이 투입된 도장이 개관한 것입니다. 이곳에 나한일씨와 박대양씨 그리고 기 치료를 위한 김원두 사장의 조카가 모였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천의 박대양씨가 “내가 치료를 하니, 건물 임대 계약자를 내 이름으로 하고 간판을 기천문으로 달겠다”는 주장을 편 것입니다. 나한일씨는 당연히 이를 반대했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결국 박대양씨가 떠났습니다.
박대양씨가 떠나자 나한일씨는 도장 간판을 ‘심검도’로 걸고 도장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조카의 치료에 신경써야 했고, 나한일씨 본인이 방송국 성우 활동으로 인해, 개관된 심검도 도장은 지도할 관장, 사범이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회원모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한일씨는 조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후 조카의 몸 상태가 매우 좋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조카의 몸 상태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약 두 달간 치료를 받았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다시 미국의 집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나한일씨는 심검도 도장 경영이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자신의 친구인 해동검도 김정호 총재에게 도장 운영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양에서 최복만 사범과 해동검도 도장을 운영 중이던 김정호 총재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도장을 최복만 사범에게 맡기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후 서초동 도장의 권리를 현진 영화사와 나한일씨로부터 인수받고 해동검도를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나한일씨는 방송국 일에만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최태민 목사의 등장

고 최태민 목사님의 수련 모습
김 총재가 서초동 도장을 운영하던 1983년 2월 말,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하시고 풍채가 좋은 어르신 한 분이 도장에 왔습니다. 그는 운동을 배워 보고 싶다며 김 총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김 총재는 성실히 답했습니다. 말이 오고 가며 김 총재는 그 분의 언변과 박학다식함에 놀라게 됐습니다. 이내 그 어르신은 도장의 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훗날 김 총재와 해동검도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신 故 최태민 목사입니다.
한편 서초동 도장의 운영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앞서 말한 현진 영화사의 김원두 사장 조카의 치료가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건물의 보증금 2천 만원을 회수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는 도장을 운영하는 김 총재에게 통보 되었습니다. 이때가 1983년 3월이었습니다.
보증금을 빼줄 방법이 없던 김 총재는 할 수 없이 도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회원들 한명, 한명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이제 막 발전 궤도에 오른 도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을 한 것이죠. 당시 서초 도장의 회원이었던 최태민 목사에게도 이 같은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최 목사는 잠시 김 총재를 바라보더니 “보증금이 얼마입니까? 제가 도움을 주겠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최 목사가 바라는 것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도장의 문을 닫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운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해동검도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해동검도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는 서초동 도장의 문을 닫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총재는 최 목사의 이 말에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 총재는 최 목사에게 이런 말을 하나 했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도장에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운동은 ‘해동검도’입니다. 심검도가 아닙니다”라고 말이죠. 김 총재는 이번 기회에 도장의 명칭을 ‘해동검도 도장’으로 바로 잡고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보급에 나서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입니다. 최 목사 역시 ‘해동검도’ 라는 명칭이 지금 자신이 수련하는 운동과 잘 맞아 떨어 진다며, 흔쾌히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3년 4월, 서울 서초동에 제2의 해동검도 도장이 탄생했습니다. 안양 도장에 이어 해동검도에게는 기념비적인 순간인 것이죠.
<海東劍道 이야기> 10편 : 해동검도 최초 서적 <해동검법개론>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지난 12일(일) 예정이던 [해동검도 이야기]가 필자의 사정으로 연기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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