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⑦해동검도 도복 탄생, 40명의 첫 수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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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형진 회장, 배우 양택조 회원 등록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처음 안양에 해동검도 도장을 개관할 때,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원들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물, 검(목검)과 도복이었습니다. 해동검도 초급자, 유급자 수련과정에서는 목검을 쓰게 된다. 때문에 인근 공방에 목검 도면을 보내 하나하나 직접 깎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 도장에서 쓰는 목검에 비하면 투박하기 이를 때 없지만,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도복. 당시 태권도(당수도), 쿵후, 유도, 합기도, 심검도, 기천, 켄도(대한검도) 등과 관련한 도복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이 도복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해동검도 처럼 같은 ‘검’을 쓰고 있는 켄도와 심검도의 복장이 우선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켄도는 모두 알다시피 일본의 검도 스포츠로 수련복은 일본식 하까마를 입습니다. 타법 위주의 기술을 구사하다 보니 검의 움직임도 전면에서 주로 이뤄집니다. 또 상대의 타격에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거운 재질의 소매가 길게 내려와 있습니다. 검자루가 소매에 걸려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같은 검도라곤 하지만 해동검도와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허리의 요대는 해동검도의 경쾌하면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세계해동검도연맹의 도복
다음은 심검도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심검도는 불교 무술입니다. 도복의 색상이 승려복을 연상케 하는 회색에 주황색 줄무늬를 하고 있습니다. 바지와 소매는 긴 상의를 착용해야하는 까닭에, ‘찌르는’ 기술을 위주로 하는 심검도에 적격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많은 무술을 두루 경험한 김정호 총재는 이 수련복을 직접 입어 보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가장 한국적이며, 실용적인 해동검도 도복을 구상했습니다. 고민 끝에 해동검도 도복이 갖추어야할 세 가지 요소를 결정했습니다. 하나는 소매는 팔꿈치 위까지 올라가는 짧은 팔에 앞이 오픈 되고 옷고름을 매는 가벼운 상의를 만들자였고, 두 번째는 발의 모양과 움직임을 감추고 가볍고 편한 보법을 쓸 수 있도록 만든 통이 큰 하의여야 한다, 세 번째는 이러한 모습이 조화를 이뤄 그 옛날 무사들의 당당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해동검도 도복의 철학적 뼈대가 완성됐고, 도복의 디자인 스케치가 나왔습니다. 김 총재는 이를 들고 직접 양장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서울, 경기 인근의 양복점, 한복점, 수선집 등을 모조리 찾아 다녔지만 선뜻 만들어 보겠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김 총재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님께 직접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의 수정 작업을 더 거쳤고, 마침내 해동검도 도복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해동검도만의 도복이 탄생한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해동검도 도복은 훗날 해동검도 해외 보급에 큰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우여곡절 해동검도를 도앙에서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안양 도장에 나가 어머님이 지어주신 해동검도 도복을 입고 회원들을 기다렸습니다. 남은 건 이제 회원들만 구름때 처럼 밀려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원은 고사하고 도장이 있는 4층까지 다른 볼일을 보러 올라오는 사람 조차도 없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혹시 누구라도 올 때면, 어떻게든 회원으로 만들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이나 혼자 시범을 보였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해동검도 술기를 보여주고, 진심을 보여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도장을 계속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수 없었습니다. 단 한명이 내 앞에 있더라도 더 열심히 시범 보이고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순간, 순간, 한명, 한명에게 모든 걸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건장한 사내가 찾아왔습니다. 눈매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시범을 보여줘요”라고 말했습니다. 검을 들고 몇 가지 시범을 보여줬습니다. 이어 그는 “힘을 한 번 겨루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면 항상 난감했습니다. 차라리 ‘도장을 깨러 왔다’, ‘대결을 하러 왔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의 의지는 완강했습니다.
점잖게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마주 않아 서로 주먹 밀기를 했습니다. 다소 재밌는 상황이 아니냐고들 할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진지했습니다. 김 총재의 주먹에 상대가 뒤로 밀려났습니다. 그래도 상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대를 단단히 버티고 서게 한 다음 그 상대를 상박(오른쪽 팔꿈치 아래)으로 가볍게 툭 밀어 쳤습니다. 순간 상대가 붕 떠서 날아가 떨어졌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대화체로 그대로 전해봅니다.
“(상대)난 체중이 85kg인데, 댁은 얼마나 됩니까?”
“(김정호)60kg이 조금 안 됩니다”
“(상대)그럼 25kg 넘게 차이가 나는데, 이게 가능한 겁니까?””
“(김정호)과학의 원리로 다 설명할 수 없고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무도입니다.”
바로 다음날 그 사내는 40여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도장을 쳐부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장에 입관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죠. 사내의 정체는 해동검도 도장이 위치한 인근 시장의 조합장이었고, 나머지 사내들은 조합원이었다. 일순간 40여명의 회원이 생겨났습니다. 이때부터 텅 비었던 도장이 비로서 사람들이 운동하는 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김 총재 역시 또 다른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이즈음 안양의 해동검도 도장을 찾은 다른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故김형진 회장(전 대한해동검도협회 회장)과 영화배우 양택조(대한해동검도협회 감사) 였습니다.
<海東劍道 이야기> 8편 : 해동검도의 든든한 버팀목 김형진 회장과 양택조 감사 – 김정호총재와 이들의 인연의 시작, 이후 이들이 평생 해동검도인으로 살게된 배경이 공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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