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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약속 (1)


여는 글


2000년 5월 하와이 세미나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스미스(SMITH)사범의 편지를 읽었다. 내가 가는 길을 그도 갈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가는 길, 그 길을 돌이켜 보면 운명같은 섬뜩함이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지나고 보면 정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애제자인 김병희 선수가 2000년 하와이 US오픈 국제태권도대회에서 우승하는 인연으로 하와이에 관광겸 자매결연차 가고자 했는데 태권도 강의를 요청 받고 깊이 생각한 후에 나는 도복과 한복 한벌만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종주국이지만 그 것을 꽃피우고 있는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이다. 그 중 미국은 대표적인 나라이다. 우리나라 태권도인들은 기술, 정신에서 우위에 서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태권도를 생활화 시키는데 애써서 태권도라는 큰 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영원한 종주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루지 못한 약속은 첫사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수련에 임하는 가운데 진리를 깨달아 가는 평범한 태권도인의 이야기이다.

제 1 부 첫사랑의 약속

1. 어려운 도대표 선발전

1979년 10월 16일! 어둠속 죽음을 위한 나의 용기는 밤하늘의 구름 사이로 수많은 별들을 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 그래, 정거장마다 섰다가 출발하는 밤차처럼 나도 다시 출발 하는거야!" 하고 스스로 다짐하며 연화봉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은메달을 목에 걸어 가슴 깊이 넣고 소백산을 향했다.

무덥고 기나긴 여름속의 방황이였다. 1977년 고등학교 3학년이였던 나는 마지막 기회인 전국체전 충북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경기는 이기고 판정에 지는 부당함에 실망하여 충북으로 다시는 안뛴다며 쉬고 있는데 영월 박실광 사범님께서 영월대표로 강원도민체전겸 전국체전 대표선발전에 나가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주소를 영월 쌍용으로 옮기고 1978년 강원도민체전에 출전하여 우승하였으나 전국체전에는 출전치 못하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1979년 7월 신흥고교 실내체육관에서 전국체전 일반부 대표선발전을 앞두고 있었다. 나의 첫 상대는 3월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한 지민규 선수였다. 그를 응원하는 청주시 선수단의 함성 속에 1회전이 시작되었다.

기합을 멋드러지게 넣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헛동작으로 오른발을 한걸음 내디뎠다. 상대가 물러난다. 이어진 나의 왼발 빗차기에 이어 뒷차기를 보고 상대는 일보 빠졌다가 오른발 몸통빗차기로 공격하는 찰라 나는 뒷차기를 평소 보다 한걸음 더 깊게 차는 순간 기분좋은 감촉이 발끝에 전해졌다.

바라보니 받아 차려던 지선수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을 깬 것은 나의 기합소리였다. 함성이 들려 오기에 바라보니 제천의 선후배들이였다.

이어진 준결승, 결승전에서는 상대들의 주눅이 든 나약함에 나는 쉽게 우승을 하며 도대표로 선발이 되었다. 체육관 밖으로 나와 7월의 싱그런 바람을 맞으며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2. 첫 만남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1977년 8월 강원도 사북에서 개최된 국회의원배 중부영동지구 태권도대회에서였다. 아마도 나의 태권도 선수 생활중에서 최악의 환경 조건 속에 치러진 대회로 기억된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 디뎌본 사북은 온통 까맣게 채색된 탄광촌이였다. 절망 속에 찾아온 사람,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로 도시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사북초등학교 운동장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고는 백회 가루로 라인 치고 맨땅에서 경기를 하는데 말이 맨땅이지 이건 숫제 연탄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준결승에서 상대의 얼굴을 들어 찍기로 가격하고 나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상대의 오른쪽 눈주위가 온통 까맣게 나의 발바닥 자욱이 나 버렸기 때문이였다. 막 웃으니 심판이 " 야 웃지마! " 하면서 심판도 덩달아 " 하하하하" 하며 웃자 관중도 따라 웃느라 웃음 바다가 되어 버렸다.

결승에서 나는 사북의 희망이라는 박규상 선수와 경기를 치렀다. 박 선수는 작년에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였던 선수를 꺾고 도대표로 체전에 출전하였고 올해도 강원도 대표선수로 출전을 앞두고 있는 선수였다. 모든 관계자들이 그의 우승을 예상했으나 사북의 희망이였던 박선수는 나에게 비참하게 지고 말았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소녀가 꽃 한송이를 들고 서 있는데 여름 햇살 탓인지 눈이 부셨다. 이런 탄광촌에! 하며 놀라고 있는데 "오빠 축하해요. 원래 이 꽃은 규상이 오빠 축하하려고 했었는데...." 하며 꽃을 건네 준다. 얼떨결에 꽃을 받은 나는 당황하며 "이름이 뭐지?"하고 물으니 대답 대신 살짝 미소지으며 돌아서 갔다.

멍하게 서있는 나를 보고 정열이가 " 형 뭐해요?" 한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사북의 밤하늘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북의 밤에 소녀는 나를 배웅하러 나와 주었다. 그리고 소녀는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S-K!

3. 지옥 훈련

제60회 전국체전까지 약 100여일! 지도자 없이 훈련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했다. 나는 영화 록키를 떠올렸다. 그리고 록키처럼 불굴의 투지를 키우고자 힘썼다. 새벽6시에 일어나 록키 주제곡을 들으며 계란을 세개씩 깨 유리컵에 넣고 소금을 넣은 다음 한번에 쭉 들이키고 몸을 푼 다음 신당교까지 달리기를 했다. 돌아 오는 길에 대각사에 들러 생수로 갈증을 달래고 다시 뛰어 오노라면 가창산에서 황금 빛 붉은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오전 운동은 기본기와 보법, 오후 운동은 득점발차기 및 겨루기에 중점을 두었으나 늘 아쉬운 것은 겨루기 상대가 없는 것이었다. 훈련을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자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훈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더욱 힘든 것은 나의 수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였다.

전국대회를 몇번 뛰어 보았으나 훈련 부족과 코치없이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슬럼프에 접어들 무렵 인천대에 다니는 종규가 내려와 겨루기를 하던 중 왼발 엄지 발가락이 탈골되었다. 하지만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치료를 하며 훈련을 계속 했다. 조수 같이 밀려 오는 불안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석삼재라고 했던가? 부상은 계속 이어졌다.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였던 송영기 선배가 군에서 제대후 겨루기를 하다 왼손 중지가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어진 허리부상! 그것은 나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런 가운데 매일 같이 오는 SK의 편지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죽기로 하자. 훈련하다 죽어도 좋다. 하며 더 심하게 훈련했다. 그것이 SK를 위한 길이라면.

4. 약 속

1978년 2월 놀랍게도 SK는 친구들과 나를 찾아왔다. 편지하라고 작년 8월 사북에서 전해준 나의 주소를 보고 찾아온 것이였다. 너무 기뻐 앉아 있는 SK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보니 너무 창백하다고 생각되어 "너 어디 아프니" 하고 묻자 SK는 "아니야 오빠! 안 아퍼, 그런데 나에게 전국체전 금메달 좀 선물해 줄 수 있어"하고 말하기에 나는 "전국체전 우승 그거 쉬운일이 아닌데..."하자 SK는 금방 시무룩 해진다.

옆에 있던 SK친구가 "오빠! SK가 오빠 이야기 많이 했어요. 그리고 SK가 많이 아파요."하고 말하기에 SK를 보니 SK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댄다. 그것을 본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래 약속할게! 꼭 우승해서 금메달을 선물할게!"하고 말하자 SK는 환하게 웃으며 과일을 들었다. 나는 또 한번 온세상이 밝아 지는 것을 느꼈다.

5. 아버지의 선물

1979년 9월 7일 새벽! 눈을 뜨니 부모님께서 나의 팔을 잡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 무슨 일이니 몹쓸 꿈을 꾸었니" 하신다. 온 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SK가 병원에서 하얀 까운을 덮은채 영안실로 실려가는 꿈을 꾸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SK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하며 SK가 전화를 받는다. 나는 " 휴 " 하며 수화기를 힘없이 떨어 뜨렸다. 오후에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안방으로 건너가니 "요즘 많이 힘들지!"하시며 책을 한권 주신다. 초한지 였다. 책을 읽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한신장군이 유방을 만나 병법에 관하여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 以靜制動 以動制靜 ] 오후에 부모님께 편지를 한통 써놓고 태백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태백선 열차는 언제나 만원이였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며 모두들 사연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SK는 매일 같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읽어 보면 매일 같이 내용이 달랐다. 지난 초여름 그녀의 창밖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많이 들려 잠을 못이룬다고 했다. 나는 편지를 읽으면서 그녀와 같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차를 탔다.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창밖에서 SK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중이리라. 그 마음 보았다. 잠시 바라보다 나는 마지막 열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나왔다. 조용히..... 기적을 울리며 막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SK가 뛰어왔다. "오빠"하고 부른다.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후회했다.

하지만 나는 " 다시 올께 금메달을 가지고....."

이내 기차는 어둠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6. 제60회 전국체전

대전시내는 온통 꽃밭이었다. 선배들이 긴장도 풀겸 영화구경을 가자고 했다. 영화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대진표가 나와 있었다. 첫 경기는 부전승이였고 두번째 경기는 14일이였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릴 때 잠자리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나는 늘 불안해 했다. 땅이 빙 돌다가 반쪽이 나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 해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꼭 그렇다.

10월 13일! 나의 상대가 될 부산대표와 경북대표의 경기를 보았다. 모두 키가 컸고 오른발을 잘 쓰는 경북대표가 월등하게 이겼다. 10월14일 경기가 가끔 중단 되었다. 판정에 대한 시비로 시도에서 심한 어필을 하다 못해 난동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였다. 나는 경북대표와의 준결승 진출을 놓고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 다행이도 부상당한 곳이 아프지 않았다.

2회 상대의 아랫 배에 헛점을 보고 빠르게 찬 나의 왼발 몸통 앞돌려차기가 보기 좋게 성공하였다. 그렇게 나는 첫경기를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저녁에 정익진 부회장님과 정만순 교수님, 김윤환 부회장님께서 기분 좋아 하셨다. 충북선수단은 마상현 한재구 이동준 등 많은 선수가 입상권에 진출하여 상위권입상이 기대 되기때문이였다.

10월 15일 아침 계체하니 몸무게가 55.4kg이 나갔다. 재일동포를 1회 KO로 이기고 올라온 경기도 대표는 54kg이 나갔다. 영광을 향한 선수들의 집념은 건강마저도 해칠 정도로 강했다. 어떤 헤비급 선수는 큰 주전자를 입에 물고 물먹는 하마처럼 꺾꺾거리며 마시고 있고 경량급의 어떤 선수는 땀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는 모습도 보였으며 체중을 통과한 어떤 선수는 저울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토하여 계체하는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도 드는 계체 광경이다.

1회전! 상대와 마주서니 쇄골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는 10cm이상 키가 차이가 났다. 주심의 구령과 함께 1회전이 시작되었다. 때론 황소처럼 무지막지한 공격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렇게 키가 큰 선수들에겐.

1회전 중반, 바람 가르는 소리에 급히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 찰라 상대의 발이 나의 턱을 강타하며 지나갔다. 주심의 카운트 속에 일어나 자세를 잡으니 상대가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뒤차기를 시도했다. 들어오던 상대는 아랫배를 맞고 보기좋게 뒤로 밀려났다. 이어진 나의 360도 회전 앞돌려차기가 그의 옆구리에 꽂혔다. 상대가 코치석까지 밀려가기에 쫓아 가며 차려는데 주심이 "갈려"하고 선언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있었다.

주심의 "계속"하는 구령과 함께 오른발 왼발 주먹 되는대로 마구잡이로 밀어 부치기 시작했다. 그 때 "승동아 침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급할수록 돌아 가야 한다고 했다. 천천히 침착하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1회가 끝나고 코치석으로 가니 "너의 몸이 반박자 더 빠르니 모션을 주고 차라"고 말했다.

2회! 자신만만하게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상대를 보았다. 모션을 주니 상대가 왼발로 빠르게 뛰어 앞돌려차기를 시도한다. 나는 오른 팔로 막는 동시에 왼주먹으로 가슴을 지르며 앞에 있는 왼발을 재빠르게 바꿔 상대의 오늘 옆구리를 찼다. 빵 하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순간 턱밑에 섬뜻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뒤로 젖혔으나.......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시간들.......... 나전을 떠나 제천으로 온 나는 의림지를 지나 용두산에 올랐다. 소나무 아래에서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턱 밑을 스쳐갈 때 나는 소나무를 향해 발을 뻗었다. 한번 두번 세번.......

어느 순간에 나의 발등에 감각이 없었다. 발등을 보니 온통 새빨간 피가 갓 떠오른 붉은 태양빛 햇살에 반사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아기똥풀이라는 약초를 뜯어 노란 액을 발등에 발랐다.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그러나 이 약초를 바르면 아무리 지독한 상처도 삼사일이면 낫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심이 나의 팔을 잡았다. 어느 순간 나의 팔이 올라갔다. 상대를 바라보니 그의 팔도 올라갔다. 무승부. 체중으로 승패를 갈라야 했다. 자신만만하게 저울에 올라가는 상대를 보았다. 하긴 뭐 아침 계체시에 나보다 1kg이상 덜 나갔으니.충남여고 실내체육관 계단에 앉아 장내 아나운서의 계체결과 발표를 들었다. 충청북도 박승동 선수의 계체승입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앉아 있는데 경기도 대표가 올라왔다. 나는 일어서며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더 좋은 승부를 바랍니다." 하며 손을 내밀자 상대는 "축하합니다" 하면서 악수를 하고 말없이 돌아서 간다. 바라보니 저 만치서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10월16일! 결승전! 패자에게 변명은 어울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아쉬웠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 어둠의 세계에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을지도 몰라. 그녀와의 지키지 못한 약속도 저 어둠의 세계에서는 괜찮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빠-앙!

밤차의 레일 위로 바퀴 굴러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금 나는 잠깐 멈춘 것 뿐이야! 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밤차처럼 오늘의 패배를 내일의 승리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거야.

제1부 첫사랑의 약속 [끝]

약속은 지킬 때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약속은
서산에 검붉은 구름이 수 놓은 노을처럼 되돌아 갈 수 없는 처절한 아름
다움을 머금고 있다. 그것은 고독이 스며드는 진한 그리움이다.

댓글 14

김인수 2001.03.09
정말 태권도를 한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복싱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 록키였는데..태권도에도 이런 멋이 있을 줄이야....
정선희 2001.05.05
글을 읽기가 태권라인 보담은 조아여 참 태권라인에서는 3부도 오늘 올라 왔던데.....
김대성 2005.03.03
글을 읽다 가슴이 설레어 도복을 꺼내 입어보고....다시 글을 읽다 운동을 하고 싶어지 는 .....그러면서 가슴이 설레어 잠을 못잤습니다. 궁금한 점은 박승동선수는 어디에 사시는 분인가요?
선수가 아니라.. 2005.03.05
지금은 박승동 관장님이시고 충북 제천에서 태권도장 하십니다
김대성 2005.03.14
혹시 연락처나 홈페이지 있으면 ....알려 주세요
김향미 2007.07.24
글로 표현 못하겠음. 그냥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프고 힘이 솟고....
다시보아도 2008.01.04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글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흑 흑.... 2008.02.05
박승동선수님....그리고 sk님! 가슴 아리게 아리게 울다가 갑니다. 내내 행복하소서! 영아올림
양대승 2008.04.24
자랑스럽습니다. 태권도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2008.06.03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지....그리고 슬픔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자운님의 글을 통해 다시 깨닫아 봅니다. 자운 박승동교수님!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서울롯데호텔에서 자랑스러운 태권도인으로 선정되셔서 수상하실 때.....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받은 것보다 더.....건강하시고요.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설희올림
다희 2009.07.14
살아오는 세월 속에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예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한편의 주옥 같은 영화로 만들어 졌으면 ,,,,,,,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하셔요.
실화인가요? 2009.08.06
실화가 정말 아니길......너무 슬퍼....
천일엽 2009.09.25
태권도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자운 박승동관장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김명환 2011.10.24
우연히 검색하다 발견한 보물 중의 보물! 1부서부터 사범의 길을 걷고 계시며 깨닫음을 말씀하여주신 사범님! 위대함이 있다면 이런 것이 위대함이 아닐까 느껴집니다. 태권도인중에 이런 분도 계셨다니.... 정말....자부심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