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③장백산 스승, 사무랑 그리고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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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스승과 김정호 총재의 수련, 1961년 여름부터 1971년 여름까지 이어져
170cm가 조금 안되는 키에 호리호리하면서도 단단하고 날렵한 체형으로 양반 수염을 기르고 있는 60세 정도의 할아버지. 이는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가 기억하는 장백산 스승의 모습입니다.
평상시 김정호 총재의 말에 따르면 말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과묵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총재가 구워드린 아지(간고등어)를 맛있게 드실 때면 영락없는 친할아버지 같았고 김총재에게 옛 무사들이 이야기, 중국대륙을 정벌했던 고구려의 광활한 역사 이야기 등을 흥미진진하게 얘기해 줄 때는 너무도 다정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장백산 스승의 이야기 중엔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구려’이야기 입니다. 옛 고구려가 중국대륙을 누비며 한반도, 한민족 역사 중 최강의 국력과 최대의 영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력(武力) 때문이었습니다. 고구려 시대는 무예가 바탕이 되었으며 무예실력을 갖춘 무사들이 많이 양성되고 또한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장백산(백두산)을 중심으로 많은 무예 수련터가 있었습니다. 청장년들이 무예 연마에 매진하였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주저 없이 나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고 이들 중 혁혁한 공을 세운 무사들을 사무랑(士武郞)이라 부르며 칭송하였습니다.

천인암에서 한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 수련을 하고 있는 김정호 총재
해동검도는 이러한 고구려의 장백산 삼지연의 수련터에서 설봉선인이 청장년들에게 무예를 가르친 것이 효시가 되어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면면히 전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을 담은 무예인 것입니다.
1961년 여름부터 1971년 여름까지, 장백산 스승과 김정호 총재와의 무예 수련은 계속되었습니다. 수련은 방학기간에 주로 밤에 이뤄졌습니다. 장백산 스승은 수련 중 기초체력을 매우 강조했다고 합니다. 김총재도 이때부터 체력을 키웠습니다. 암자의 땔감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나무를 도끼질 했고, 무협영화에서 보듯이 물을 담은 호리병을 옮기며 손가락 힘을 길렀습니다. 달이 뜬 밤에는 밤을 세워 검을 수련하며 공력을 끼우며 기술을 익혀 나갔습니다.
이따금 천인암의 신자들이 불공을 드리거나 공양을 위해 음식 등을 가져오게 되면 김 총재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김 총재가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장백산 스승의 독특한 훈련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인암은 작은 암자지만 신도들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천인암의 터가 큰 기운을 갖고 있어 강한 기가 흐르는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바로 장백산 스승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재밌는 일을 하나 전하겠습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대처승과 비구니의 분쟁이 있었고 이는 종종 실력행사로 이어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천인암에도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게 됐습니다. 어느 날에는 한밤중에 10여명의 불량배들이 암자를 급습했고 마침 절에 머물고 있던 장백산 스승이 이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고 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이 광경을 목격한 신도들이 장백산 스승의 실력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통에 천인암이 유명세를 탔다고 합니다. 이런 탓에 많은 신도들이 많은 짐을 들고 천인암을 찾았고,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짐을 김 총재가 나르게 된 것입니다.
수련은 주로 방학 때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어도 천인암에서의 장백산 스승과의 수련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이때에 김 총재는 검의 원리, 권의 원리, 호흡의 원리를 익히고 터득하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원리를 완벽하게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10년의 수련으로 강철 같은 몸을 갖게 되었고, 어느 누구도 제압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 옛날 고구려 사무랑들의 영혼이 들어와 스스로가 사무랑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고 김 총재는 당시를 회상합니다. 매일을 중국대륙을 정벌하던 그들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해동검도 1호 사범이었던 최복만 사범(1982~1883년 해동검도 안양도장 근무)도 산중수련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1968년, 당시 서울 신림동에 살던 최 사범은 관악산에 자주 오르며 천인암을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 김총재와 장백산 스승의 수련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82년 경기도 안양에 첫 해동검도 도장을 열 때 김 총재의 경력과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최사범이 기꺼이 합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연예인 나한일씨(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도 김 총재와는 절친한 고교동창으로 그 또한 장백산 스승과 김 총재의 산중 수련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천인암에 올라 장백산 스승을 보지는 못했지만 김 총재를 통해 수련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해동검도의 역사와 무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구려 사무랑에 관한 이야기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후일 각종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와 해동검도 관련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자랑거리로 내세우기 했습니다.
예고 - <海東劍道 이야기> 4편 : 무림픽(Mulympic)을 염원하며 검을 뽑다.
장백산 스승과의 만남, 수련, 이별. 그리고 남겨주신 말씀들…… 후일 이것들이 거짓말 같이 하나씩 실현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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