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②기차를 세운 어린 소년, 스승을 만나다
![[海東劍道 이야기]②기차를 세운 어린 소년, 스승을 만나다](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hrgjshg.jpg)
해동검도 발상지, 경기도 관악산 천인암

해동검도의 발상지라 불리는 천인암, 그 안에 위치한 대웅전의 모습
세계해동검도연맹(국내, 대한해동검도협회) 김정호 총재의 고향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입니다. 어릴적 김 총재의 부친은 광산업을 크게 하셨습니다. 이는 김총재 조부가 운영하는 광산업을 이어받은 것이었죠. 당시 조부께서는 중곡동에 60만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광산업을 통해 전국의 산야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때문에 전국의 유명산, 무명산 가릴 것 없이 속속들이 꿰고 있었죠. 왜, 뜬금없이 김정호 총재의 어린 시절 얘기들을 끄집어내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러한 옛 기억이 곧 있을 김정호 총재와 장백산 스승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져다줬기 때문입니다.
1961년 김정호 총재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때에, 집안에서는 중차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김정호 총재를 안양으로 유학 보내기로 한 것이다. 지금으로선 서울에서 안양으로의 유학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중곡동은 서울의 변두리, 논밭이 즐비한 서울의 시골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죠. 또한 안양에는 김총재의 외가가 있어 당시 중고생, 대학생이었던 사촌 형들이 어린 사촌 동생의 공부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해외 유학, 사교육 등의 대한민국 교육열풍도 불지 않은 시대적 상황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을 부모의 품에서 떠나보내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 보겠습니다. 김 총재가 3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김총재의 집은 서울 휘경동이었습니다. 휘경동의 철길 옆 일본식건물 2층 집에 대문 밖에는 철길이 나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린 김 총재가 집을 나와 철길로 기어가 아무도 없는 선로에 앉아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이런 위험천만한 순간에 끔찍한 상황이 찾아 왔습니다. 기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김 총재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기차의 경적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때마침 아이의 행방을 찾던 가족들과 동네 주민들도 그제서야 아이의 행방을 멀리서 확인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기차는 아이를 집어 삼키려는 듯 수십여 미터 앞까지 온 상태였죠.
하지만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굉음을 내며 수십여 미터까지 달려오던 기차가 어린아이 바로 앞에서 멈춰 선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철길에서의 사고가 비일비재 했고, 시간에 쫓기는 기관사가 철로 위의 사람을 인지하고 급정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어린아이를 발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죠.
이 일로 인해 집안에서는 이런 ‘기적의 아이’라며 상당한 관심을 쏟게 됐습니다. 이는 결국 부모에 대한 자식의 교육 열의로 이어지게 되었죠.
이후 1961년, 김 총재는 안양으로 유학을 와 안양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에게 부모와 떨어져 있다는 고통은 또 그리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을 붙잡고 어린 김 총재가 대성통곡을 할 정도였죠. 방학이 끝나고 안양으로 돌아가야 할 때는 아버지의 허리춤을 붙잡고 때를 쓰기를 수차례. 이런 김 총재 때문에 아버지는 안양으로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을 달래기 위해 인근 관악산 천인암으로 김 총재를 데려 가게 된 것이죠.
해동검도 발상지가 된 경기도 관악산 천인암(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194번지 ).
이곳의 주지스님으로 계셨던 분은 김 총재 아버지와는 사촌지간이었습니다. 천인암은 이후로도 대를 이어 내려와 현재에도 아드님이신 정덕흥씨(김총재의 육촌 형님)가 주지스님으로 천인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 김 총재가 처음 암자의 법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음산해 보이는 분위기와 역겹게 느껴지는 향냄새로 인해 비위가 상해 구토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본 주지스님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 주인에게 인사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하지 않니? 이곳도 마찬가지란다’ 며 김 총재를 타이르기도 했죠.
천인암에서의 절제되고 자연친화적인 생활이 하나둘씩 적응되어 갔습니다. 이때부터 김 총재는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각별한 이해와 개방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죠. 이러한 사고는 후일 김 총재를 세계를 향해 달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 총재는 천인암에서 지금의 해동검도를 있게 해준 장백산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김 총재는 첫 만남이었는데도 장백산 스승에게서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함을 느꼈습니다. 훗날 알게 됐지만, 장백산 스승과 광산업으로 전국의 산을 누비던 김 총재 조부와는 친구 사이였었습니다.
‘아가야, 우리 공부할까’. 장백산 스승은 첫 만남에서부터 공부(功夫)를 통해 김 총재를 지도하기 원했습니다. 공부는 무(武)의 명칭으로 가르침의 주된 내용은 검법(劍法:검을 쓰는 술기, 그 시절 장백산 스승은 금법, 금술이라고 가르쳤다), 권법 (拳法:맨손 술기), 선법(禪法:호흡법)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민족과 무예에 관한 이야기와 역사까지도 배우게 됐습니다. 특히, 광활한 우리 고구려의 역사와 중국대륙을 누비던 무사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어린 김 총재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곤 했습니다.
예고:<海東劍道 이야기> 3편 : 고구려 사무랑, 달빛을 베다.
드디어 장백산 스승을 만난 김정호 총재, 그들의 해동검도 전수과정과 산중수련 그리고 제자가 기억하는 스승의 말씀과 모습이 다음 편에 자세히 그려집니다.
<*외부 기고문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