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태권도팀 '타깃 세워라' '3점 공략' '앞 발' 특명

타깃을 세워라! 몸통 1점 내주고, 얼굴 3점 뺏는다

훈련 중이던 박혜미, 임수정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다.(사진 : 이석제 기자)
호구를 벗어던지자 32명의 목덜미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반팔 면 티셔츠 위에 땀복까지 겹겹이 껴입은 선수들의 파랗고 하얗고 검은 상의가 땀으로 흥건해졌다. 오는 10월 14일부터 닷새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9회(여자 1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16명의 태극전사와 훈련 파트너 16명의 구슬땀 현장이다. 지난달 26일 강원도 태백에서 고지대 훈련을 마치고, 태릉선수촌에서 금빛 사냥을 위한 혹독한 담금질에 들어간 16인의 태권 전사들은 종합우승에 대한 의지로 타올랐다.
사상 처음 전자호구(라저스트)의 세계선수권 도입이 확정된 가운데,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지난해 전국체육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내외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전자호구의 실전 감각을 키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코칭스태프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22일 찾은 태릉선수촌 태권도훈련장은 막판 출격 준비로 전운이 감돌았다.
타깃을 세워라
라저스트(Lajust) 전자호구의 특성상 몸통부위 센서와 발등 부위 센서가 정확하게 맞부딪혀야 득점이 가능하다. 물론 경기 시작 전에 남녀, 체급별로 기입된 강도 이상이 되야 득점으로 인정된다. 이런 전자호구의 특성으로 인해 선수들의 훈련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로 허리의 틀어 줌과, 이에 따른 상대 호구와 공격자의 발등 마찰 면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맞춤형 훈련법’이 탄생한 것이다.
우선 코칭스태프는 상당수 선수들의 ‘걷어 올리기식 돌려차기’습관에 제동을 걸었다. 상당수의 대표급 선수들도 손쉬운 몸통 득점을 위한 빗겨 돌려차기, 소위 말해 ‘밑 뽕(선수들 사이에서의 속어)’을 습관적으로 차왔던 것이 현실. 김용수 여자팀 코치는 “앞차기 형식으로 몸통 득점에 성공해 왔던 선수들은 전자호구를 입고서는 점수를 내기 힘들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득점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는 타깃 발차기 연습을 할 때, 목표물을 곧게 세워 허리의 틀어줌과 발등의 면적을 넓히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몸통 1점 내주고, 얼굴 3점 뺏는다
또 하나는 ‘안 되면 얼굴’이다. 몸통센서에 발등센서를 완벽하게 붙이지 못하겠다면, 아니 전자호구만 입으면 몸통 득점에 무력해지는 선수들이라면 애당초 얼굴로 밀어 붙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차도 나오지 않는 몸통공격이라면 1점 줄 생각으로 3점을 향해 차라는 것이다. 박종만 남자부 코치는 “초반에는 몸통 공격을 많이 시켰지만 방향을 바꾸었다. 이제는 얼굴로 결정을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공식에 가까운 얼굴공격 훈련을 주문하고 나섰다. “뒷발 돌려차기 들어오면 그대로 찍어(앞, 뒤발 내려찍기)”, “깊게 안으로 들어오면 후려(뒤후리기)”, “몸통 오면 얼굴(돌려차기) 때려” 등은 화,수,목,금요일 ‘전문 기술훈련’ 시간에 코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앞 발, 앞 발! 아시아선수권 전자호구의 악몽

-49kg급 최유진(왼쪽)이 -46kg급의 박효지를 상대로 상단 공격 연습을 하고있다
몸통 앞발, 앞발!
유독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제자리 앞발 몸통 돌려차기’다. 사각미트에 호구를 둘러맨 화요일 '전문 기술훈련'에서 선수들은 세부 전술의 일환으로 ‘앞발 호구 맞추기’를 시작했다. 앞서 돌려차고 돌개차고 내려찍기, 또 뒷발 돌려차고 뒤차기 등의 연결 발차기로 열이 오른 선수들의 훈련 곡선을 ‘쿨 다운’ 시키는 연습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전자호구 대비 훈련이었다. 뒷발 몸통, 뒤차기, 얼굴 공격 등에서 유효타가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승리 보험’인 셈이다. 위력은 없고 빠르기만 있는 이 ‘앞 발 몸통 돌려차기’는 솔직히 일반호구 경기에서는 아주 드물게 사용되는 'D급 기술' 중 하나이다.
2008 아시아선수권의 악몽, 그리고 전자호구
아무리 봐도 한국 대표팀의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다. 지난해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 정저우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4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주최국 중국은 남녀 8개의 전 체급에 출전해 남자 1, 여자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위는 남자부에서만 금메달 4개(여자 금메달 1개)를 따낸 이란이, 이어 대만은 3위를 차지했다. 태권도의 기량 평준화로 이해할 수도 있는 기쁜 날이었지만, 종주국 메이저급 선수들이 출전했던 만큼 한국의 충격은 깊었다. 이는 한국 대표팀의 첫 번째 전자호구 국제경기 데뷔전이었다. 대한민국의 ‘전자호구 징크스가 시작되는가?’라는 얘기도 이때부터 공공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선례 때문에 코칭스태프는 이번 선수권에서의 종합우승을 쉽게 예단하지 못한다. 세계선수권에서 만큼은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 남녀 모두가 한 번도 종합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전자호구의 등장으로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겉은 밝지만, 속은 어두운 상황이다. 김영철 여자부 감독은 “종합우승을 목표로 대회에 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자호구 사용으로 인해 정확한 메달의 개수를 가늠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도 바탕이 있는 선수들이라 이들의 선전을 기대해 볼 따름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태릉선수촌을 떠나기 전 취재진은 김용수 코치로부터 쓴 소리를 하나 전해 들었다. “전자호구를 떠나 한국의 메달 독식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해외 각국은 한 체급에 잘하는 선수를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을 고수한다. 이들은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토대로 상당수가 종주국 선수들보다 월등한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큰 틀에서 선수 양성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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