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국가대표]남윤배의 자극제 '문대성과 차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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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성을 보며 그린 올림픽의 꿈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한국의 문대성이 화끈한 뒤후리기 한 방으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자신보다 무려 8cm나 큰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를 상대로 KO승을 이뤄냈습니다. 아테네 팔리로스포츠센터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태권도 경기를 중계하는 장내 아나운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4년 8월 30일, 문대성이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남윤배
문대성이 뒤후리기로 금메달을 따는 순간 TV를 보던 남윤배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남윤배는 분명 문대성과는 같은 +80kg급이었다. 같은 체급인 문대성이 올림픽 결승에서 KO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보는 순간, 이제 막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우쭐했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결심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태극마크는 내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 될 것이다. 문대성 선수의 뒤를 잇는 차세대 주자는 나다.”초등학교 시절 280cm의 큰 발을 이용해 수영을 하던 남윤배는 스포츠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맨 중학교 형의 모습에 반해 태권도를 시작했다. 이후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태권도를 하던 그는 그때부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올림픽, 오직 올림픽금메달을 위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1년 지나지 못해 바로 꼬리를 내린다. 부푼 꿈을 안고 진학한 한국체육대학교는 자신이 그리던 캠퍼스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오히려 고등학교보다 더 엉망이었다.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여자들과 걸으며 얘기를 나누는 등 TV에서 보는 낭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더라도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싫었고, 답답했다. 하지만 비겁하게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감독 교수님께 “2주 만 시간을 달라”며 당당하게 학교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휴식을 취하는 2주 동안 문대성의 뒤후리기 '한 방'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2주를 참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복귀해 운동을 시작했고,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금메달은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아쉬움을 잊게 해줬다. 이후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월드컵대회를 석권하며 문대성의 전처를 밟아나갔다.
다시 써내려가는 4년의 목표

지난 5월 국가대표선수선발전에서 남윤배(오른쪽)가 상단 공격을 하고 있다
2007년, 남윤배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된다. 앞서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기록한 그는 첫 세계선수권이었지만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자신감은 금새 자만심으로 변했다. 결국 준결승에서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를 상대로 만난 그는 평소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210cm, 자신보다 20cm이상이 컸다. 지나친 자신감에 체격조건이 큰 외국상대에 대한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4라운드 서든데스에서 패했다. 국제대회에서 연일 금메달을 획득하던 남윤배의 생애 첫 동메달이었다.
악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내대표선발전 준결승전에서 윤희성(용인대)에게 패하며 베이징올림픽의 꿈을 접어야 했다. 결승전도 아닌 4강에서 그것도 신예 윤희성에게 패한터라 충격은 더했다. 4년 동안 고이 접어놓았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날아가 버린 순간이다. 이후 남윤배는 가스공사에 입단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조화일까. 동 체급 라이벌이자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차동민 또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지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칫 게을러질 수 있었던 쇄락의 시기에 경쟁상대 차동민의 존재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2년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차동민 선수는 친구지만 꼭 넘어야 하는 산이었습니다. 같은 팀으로 활동하다보니 운동시간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경쟁을 하게 되더라고요. 환경이 바뀌면서 적응을 못해 게을러질 수도 있었는데 동민이는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남윤배는 지난 5월 전북 김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09 국가대표선수선발최종대회에서 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소감을 묻자, 그는 “먼저 감사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스공사에 입단하기까지 저를 지도한 모든 감독님과 코치님께 감사해요. 그리고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올해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여자 친구까지…(웃음).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얘기를 못하겠습니다. 2007년, 2008년에 겪은 설움을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날려버리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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