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이야기]인고의 세월, 2002년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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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12년만에, 해동검도는 13년' 만에 이뤄낸 쾌거

2002년 7월에 강원도 용평에서 열린 제1회 해동검도 세계대회
2002년 7월 24일, 1986년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린 바로 이 장소,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용평돔 경기장은 8,000명 인파들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열기와 탄성이 넘쳐나는 사이, 저만치 본부석 한 켠에서 움켜쥔 주먹을 펴지 못하고 수 시간 동안을 미동도 없이 눈시울을 붉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김정호 현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대한해동검도협회)다. ‘종주국’ 태권도가 1961년 대한태권도협회 창설 12년 만에 첫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1973년)를 개최했다면, 대한민국의 해동검도는 1989년 대한해동검도협회 창설 이후 13년 만인 2002년 ‘제1회 해동검도세계대회’를 해낸 역사적인 순간이다.
기억의 편린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982년 7월 24일, 경기도 안양에 첫 해동검도 도장을 개관. 그리고 정확히 20년 후인 2002년 해동검도 탄생 ‘20주년’에 이렇게 전 세계 해동검도인과 함께 모여 글로벌 축제를 빚어냈다. “세계화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창하던 김 총재의 꿈을 현실화하는 순간이다.
1996년 세계해동검도연맹 창립과 동시에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의 국가들을 방문했다. ‘한국의 검’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 값싼 항공료에 따른 비행기 시간의 엇갈림으로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며 밤을 지세기도 다반사였고, 햄버거, 핫도그로 끼니를 때우며 10시간이 넘게 기우뚱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차량 전복사고로 도장 대신 응급실로 향한 적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한 '해동검도 세계화'였다. 그래서 가슴은 더 뜨거웠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것이 있었다. ‘헐값에 해동검도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도인으로서의 본분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끊고 맺음을 정확히 했다. 해동검도의 명예를 팔지 않겠다는 나름의 소신이기도 했다. 대신 해동검도의 가치를 알고 이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대회 개막식의 열기가 무르익을 때 즈음, 세계의 해동검도 제자들이 존경과 정성을 담은 헌정패 수여식을 마련했다. 세계 각지의 제자들이 해동검도 유일의 전수자이자 보급자의 노고에 마음을 담은 패를 증정하는 자리였다. 해동인을 대표해 수석제자인 이종구 세계해동검도연맹 부총재가 김정호 총재에게 반짝이는 ‘패’를 증정했다.
어제,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꺼내어 본 헌정패의 글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귀하께서는 대한민국 전통무예인 해동검도 유일의 전수자로써 1982년 해동검도 초기보급을 시작으로 지난 20년간을 해동검도 세계화에 앞장서 왔습니다. 전 세계 해동검도인들의 마음을 모아 이 패를 전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헌정패의 문구와 함께, 그리고 그 옛날 관악산 천인암에서 첫 만남과 함께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시던 장백산 스승의 말들이 어우러져 귓가에 들려온다. “아가야, 우리 공부 할까?”
다음 주 토요일 <海東劍道 이야기> 2편 예고 : '기차를 세운 어린 소년 스승을 만나다', 김정호 총재가 해동검도를 전수받기까지의 처음 과정들이 낱낱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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