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09국가대표]‘도망자’ 염효섭의 뒤 늦은 봄날

[2009국가대표]‘도망자’ 염효섭의 뒤 늦은 봄날

실업팀 주요 감독 올해 최고의 기대주 입 모아


“최근 가장 돋보이는 선수다. 앞으로 더욱 성장을 할 선수임에 틀림없다.”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
“밴텀급에서는 상무의 염효섭 선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 한국가스공사 박종만 감독


염효섭

2009 국가대표선수선발최종대회를 앞둔 지난 5월 두 실업팀 감독이 염효섭(23,국군체육부대)을 두고 한 말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염효섭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 2007년 12월 최종전에서 2위를 기록하며 2008국가대표 2진을 지냈지만, 이후 열린 대회에서 단 한 번의 금메달, 아니 은메달조차 목에 걸지 못했다. 당시에는 자기관리에 실패해 계체탈락이라는 수모까지 겪는 ‘막장 선수'로 평가받았다. 또한 4학년임에도 ‘팀 이탈’이라는 신입생이나 하는 극단적인 선택도 하며 방황했다.

염효섭의 첫번째 '자유 선언(이탈)'은 초등학교 때이다. 그는 ‘호랑이’ 관장님의 권유로 태권도장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관장님에게 ‘태권도선수단’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름이 너무 멋졌다. 솔직히 거부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멋있는 이름의 효과는 딱 15일 뿐이었고, 하루하루 운동이 너무 힘들었다. 급기야 6학년에는 도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잠수’를 타기도했다. 집으로 오는 전화는 무조건 안 받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장 앞길로는 지나가지도 않았다.

조금씩 안도감에 휩싸일 때 즈음, 염효섭은 오락실에서 뒷 목을 잡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봤지만 역시나 호랑이 관장님의 큼지막한 손이었다. 이내 관장이 도장으로 염효섭을 끌고가서는 “100대 맞고 그만두던지, 아니면 다시 운동해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양자택일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후 그는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며 첫 대회에 참가했다. 효과는 있었다.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죽도록 하기 싫다며 뛰쳐나간 태권도였지만, 동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생각이 180° 바뀌어버렸다.

이후 금메달을 꿈꾸며 만수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꿈꾸던 금메달은 머릿속에서만 그려야 했다. 이후 광성고등학교 진학한 후에도 ‘금빛발차기’는 한낱 몽상일 뿐이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자 그의 인내심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처음만 어려웠을 뿐이지, 두 번째는 쉬웠다. 그런데 도망을 결심한 그날 하필 광성고는 전국대회 노메달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담당코치는 “들어가서 보자”라는 호령을 내렸다. 이 호령은 결국 15명, 단체 팀 이탈이라는 '대역죄'로 이어졌다. 일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겁쟁이’ 3학년 형들의 배신(?)으로 하루 만에 종결됐다.

운은 없어도 '인복'은 있었던 염효섭


지난 5월 열린 2009년 국가대표최종선발전에서 염효섭이 얼굴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염효섭은 도복만 봐도 지긋지긋했다. 결국 집의 허락을 득해 운동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장 친했던 임인묵(23,한국가스공사)이 친구로서 마지막 부탁을 했다. “그때 (임)인묵이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도복을 입고 있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자기랑 같이 해보자고 말한 인묵이는 매일 공설운동장에서 함께 야간 운동을 해주었습니다. 그후 5.18대회에서 2위에 올랐고, 문화관광부대회에서까지 메달을 땄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인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국가대표가 된 것도 다 인묵이 덕분입니다.” 염효섭은 당시를 회상하며 임인묵 선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후 대학 2학년, 꿈에도 그리던 첫 금메달을 딴다. 그것도 각 학교에서 1진만 출전할 수 있다던 대한태권도협회장기대회…. 그의 자신감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대학연맹에서도 1위를 기록하더니 2008년 국가대표최종전 출전 티켓까지 따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봄날'이었다. 하지만 선수생활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할 체중 조절에 실패한다. 말로만 듣던 ‘대학 왕고’가 되자, 게을러진 것이다. -62kg급에 출전해야 하지만 시합을 앞둔 당시 염효섭의 몸무게는 무려 73kg까지 나갔다.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결국 세 번째 팀 이탈을 이라는 악수를 두었지만, 이 역시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 돌아오는 헤프닝으로 끝났다. 계속되는 일탈은 '계체량 탈락'이라는 치욕을 안겨줬다. 후배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더이상 들지 않았다.

이런 시련을 버팀목 삼아, 염효섭은 상무에 입단했다. 철저한 일정, 체계적인 훈련은 그의 게으른 군살을 남김없이 제거해줬다. 또한 시간적인 여유도 생기면서, 잡념이 사라졌다.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상무에서 대학 선배인 핀급 김재봉(26,국군체육부대)을 만났고, 그는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줬다. 핀급만의 빠른 발차기로 상대역을 해줬음은 물론, 감량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뛰어줬다. 결국 염효섭은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최상의 몸을 만들었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우승을 하고 나니 부모님께 제일 감사했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출전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대회에 참석하셔서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오실 때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항상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발전에서 1등을 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데 어머니가 대기석에서 울고 계시더라고요. 가슴이 ‘찡’ 했습니다. ‘잘했다. 장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처음으로 안아드렸습니다. 한 참을 그렇게 안아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한 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는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인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상무에서의 체계적인 훈련보다 2배, 3배는 힘든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가장 높은 곳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듣고 싶습니다. 대표선발전에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릴 땐 꾹 참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2009국가대표>는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출전선수를 대상으로 한명씩 연재됩니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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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염효섭 화이팅 2009.09.17
물올랐군요. 이 분위기를 몰아서 세계선수권에서 꼭 금 사냥 성공하세요. 화이팅입니다.
염효섭 2009.09.21
염효섭선수 정말 잘해요 빠따 힘 &#52573;오! ㅋ 위에 사진 너무 웃겨요ㅋㅋㅋ 발바닥 전화기 여보세요~~
염효섭 2009.09.25
염효섭 완전 못함...염효섭 방좀치워라!!! 더러워 죽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