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국가대표]페더급 이인규, 골절도 참아낸 ‘군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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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전 8강서 손등 뼈 골절당하고도 ‘이빨 꽉’
“8강전에서 상대의 돌려차기를 왼손으로 막는 순간 골절인걸 알았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만 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준결승에 나섰고, 결승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결승에서 상대 선수가 경기 도중 기권을 했습니다. 국가대표가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에서 고통이 찢어질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아픔보다 기쁨이 더 컸습니다.” 지난 5월 전북 김제체육관에서 열린 2009 국가대표선수선발최종대회(이하 최종전) 페더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인규(23,국군체육부대)의 말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직후의 이인규, 왼손에 감은 붕대가 눈에 띈다
2009년 페더급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인규는 최종전에서 손등 뼈 골절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예전 부상의 기억들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만 같았다. 결국 테이핑으로 손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경기에 나섰다. 고통은 생각보다 심했다. 경기에서는 왼발잡이 임에도 불구하고 오른 폼을 잡았다. 최대한 왼손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선택이었다. 하늘이 도왔던 걸까. 준결승에서 만난 백봉현(성남시청)은 왼발잡이였다. 때문에 굳이 왼손으로 방어를 하지 않아도 됐다. 고통을 참고 힘겹게 결승에 올랐다. 반대편에서는 '신예' 김응현(용인대)이 미리 결승에 안착해 있었다. 오른발잡이인 김응현이 발을 찰 때마다 ‘찌릿찌릿’ 고통이 머리끝까지 전해져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응현이 경기 도중 부상으로 인해 기권을 했다.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손등의 고통과 기쁨은 눈물로 바뀌었다. 힘들었던 시절의 설움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쳤다. 이인규는 한체대 시절 걸출한 스타선수들에게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차동민과 황경선, 헤비급 차세대스타 남윤배, 웰터급 박정호 등에게 기가 눌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체대 진학 당시에는 누구보다 빛나는 ‘에이스’였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태권도에 재미를 들였고, 정말 태권도에 미쳐있었다. 성동고등학교에서 주장으로 활동하며 운동이 끝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1시간 이상 보충훈련을 했다. 그래도 운동량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1시간 20분 걸리는 거리를 뛰어서 집에 가기를 밥 먹듯이 했다. 노력은 바로 결과로 나타났다.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04년 충북 단양에서 열린 전국종별선수권대회였습니다. 그 대회에서 제가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고요.”
부상! 부상! 그리고 국가대표

지난 5월 전북 김제에서 열린 국가대표최종선발전 페더급 결승 경기 장면
대학에 진학한 이인규는 부상 때문에 ‘부진의 늪’에 빠진다. 1학년 동계훈련 때였다. 운동선수에게 동계훈련은 1년 농사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오른발 근육파열로 동계훈련 기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처음으로 재활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생각보다 운동량이 적지는 않았다. 담당 물리치료사 역시 농구선수 출신으로 이인규의 운동량이 부족할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챙겨줬다. 결국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세계대학선발전에 참가하게 됐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결승전 서든데스에서 상대선수와 무릎을 부딪혀 대회 직후 또 다시 병원으로 출근해야 했다. '슬개골파열'이었다. 대학 선수권을 한 달 앞둔 상황이었지만 또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시간이 갈수록 운동량은 부족했다. 결국 세계대학에서는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는 오래갔다. 한 번 잃은 자신감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고, 스타선수들의 기에 눌려 어깨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2008년 참가한 대통령기에서 한체대 선수 중 유일하게 '노메달'을 기록하게 됐다. 수치스러웠다. 단체사진에서 상장을 들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이후 이인규는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군대를 선택했다. 실업팀은 못 가도 상무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방부장관기대회에서 죽을힘을 다해 우승을 차지했고, 상무는 이인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입대 직후 지겹게 따라다니던 부상이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장거리달리기 선수들이 자주 걸린다던 '장경인대염'이었다. 입대 이후 시합을 가지기도 전에 환자로 분류되어 한 달 간 외부치료까지 받았다.
이인규는 장경인대염이 나은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최종전 준비에 나섰다. 작은 훈련이라고 하더라도 테이핑, 아대를 필수로 가지고 다니며 부상을 방지했다. 결국 꿈에도 그리던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손등 골절로 인해 5개월간의 깁스로 또 한 번의 부상을 넘은 그는 세계선수권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천운이 따라야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매번 훈련한 만큼 결과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상 방지에 제일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요. 손태진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직후 세계선수권을 나가는 것이라 부담감은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층이 두껍다는 것을 꼭 증명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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