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11] 프로모팅의 개혁이 절실하다 Ⅰ

현 국내 프로복싱 흥행의 구조적 모순


프로스포츠 흥행의 수익 창출은 입장료와 방송 중계료 수입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타이틀 스폰서 등을 포함한 각종 스폰서를 영입하여 수익을 극대화시킨다. 경기를 개최하는 주최측에서 거액을 책정하여 홍보하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관중들을 최대한 끌어 모으고, 팬들의 관심을 유발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팬들이 관심을 가지면 매스컴에서도 이를 조명하고, 홍보가 필요한 기업체 등에서도 후원을 받기가 용이해진다.

87년 3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유명우 대 무릴료의 WBA Jr.플라이급 타이틀매치


그러나 국내 프로복싱의 흥행은 이상한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프로경기를 주최하면서 가장 큰 수입원은 스폰서의 지원이다. 일단 관중수입은 포기한 상태에서 방송중계를 따낸 후 후원해줄 스폰서를 연결시켜 대회를 주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스폰서가 잡히지 않을 경우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기가 없으니 관중수입은 기대할 수 없고, 중계권료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프로모터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복싱이 인기가 없고 선수들의 지명도가 떨어지면서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 방송을 섭외하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스포츠채널들이 활성화되어 과거보다는 중계의 폭이 넓어지긴 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은 복싱은 케이블 채널에서도 반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송국에 제작비를 지원해야 중계가 가능할 정도다. 관중과 입장수익은 아예 포기하고 대회를 개최하다보니 무료로 경기장을 개방해도 관중석이 텅 빌 때가 많다. 관중들을 위한 서비스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대회를 개최하는 프로모션은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체에서 후원을 받은 금액으로 선수들의 대전료, 경기장 대여료, 링 설치비용, 심판 수당 등이 포함된 인정료와 방송제작비까지 내야 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프로복싱에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해줘 대회를 치르기도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적인 일회성 흥행일 뿐이다.

한국타이틀매치나 국내 선수 간의 라이벌전을 메인이벤트로 대회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기 내용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방송사는 물론 스폰서의 지원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로 인해 최근 여자 세계타이틀매치가 자주 메인경기로 개최되고 있다. '세계타이틀'이라는 용어의 메리트 때문에 후원을 받기가 그나마 덜 어렵고, 여자 선수들은 개런티도 적어서 수입과 지출을 적절하게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외국의 OPBF(동양태평양) 챔피언을 불러들여 동양타이틀매치를 국내에서 개최할 경우 5천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최소 2만불 이상의 챔피언 대전료, OPBF 인정료, 외국인 심판 2명, 외국 선수단 3명의 항공료 및 체재비 등 현행 흥행방식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동양타이틀매치가 이 정도인데 세계타이틀매치 개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가장 최근에 국내에서 개최된 세계타이틀매치는 2006년 12월 17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지인진과 로돌포 루디 로페스(멕시코) 간에 벌어진 WBC 페더급 타이틀전으로 만 3년이나 지났다. 지금 같은 흥행 방식으로는 유망주가 탄생해도 국내에서 세계타이틀에 도전시키기는 어렵다.

흥행의 1차 조건은 유료 관중v


지난 3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35회 전국신인왕전 결승전


프로복싱은 한국권투위원회(KBC)에서 라이센스를 교부 받은 프로모터가 경기를 주최하고 KBC에서 이를 인정 및 주관한다. 반면 격투기 단체에서는 직접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자체적으로 홍보를 하고 대회를 주최, 주관한다. 단체가 직접 프로모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진행한다. 특히 매스컴들을 상대로 한 이들의 홍보 노력은 권투계도 본받아야 한다. 외국에서는 UFC를 제외하고 별반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격투기가 국내에서 흥행이 되는 이상 현상은 이 같은 주최 측의 홍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격투기계에서는 끝없는 홍보로 선수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후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화려하게 포장된 무대를 만들어 준다. 이런 홍보와 투자, 마케팅은 팬들로 하여금 비싼 입장료를 예매하여 경기장을 찾게 만든다. 반면 복싱경기장은 몇몇 대회를 제외하고는 썰렁한 경기장에서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복싱관계자들은 스타가 나오면 복싱의 인기는 금방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스타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망주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하여 상품가치를 높여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돈과 명예, 둘 중 하나라도 보장이 된다면 선수들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스폰서를 통하여 얻는 한정적인 수입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현행 프로모팅 시스템에서는 선수들이 돈을 벌기도 어렵고 명예를 얻기도 힘들다.

70,80년대에 복싱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구름관중을 우리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관중이 없고 시청자가 없는 프로스포츠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회를 주최하는 프로모션에서는 우선 관중을 모으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든 유료관중들로 객석을 채워 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KBC에서도 이를 도와 적극적으로 프로복싱 홍보에 앞장서야 한다. 프로모션과 KBC가 같이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매스컴의 관심을 끌어낼 수 없다. 이에 필요한 금전적인 투자 역시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 받는 경우는 그 지역민들을 위하여 경기장을 무료로 개방해야겠지만 그 외에는 유료관중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 무료로 개방해도 관중이 없는데 유료화할 경우 누가 오겠느냐는 자조 섞인 한탄은 피땀 흘린 선수들에 대한 모독이다. 값비싼 상품이 먹음직스러운 것처럼 주최 측에서는 먹음직스런 밥상을 차리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 이는 선수들에 대한 홍보와 관심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주인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경기장에 유료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또한 입장수입을 포기한 기형적인 흥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선수층이 얇은 국내 격투기와 비교했을 때 복싱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생활체육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체육관이 많아지고 복싱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도 고무적이다. 생활체육으로서의 복싱마저도 시들해진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5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한 일본 역시 한 때 심각한 흥행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1970년대의 복싱강국 위상을 되찾았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 프로복싱의 흥행 구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