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올림픽] ‘무소속’ 김민재가 키워 온 말할 수 없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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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에서는 접어야 했던 국가대표, 신성대에서 날개 펼쳐

김민재가 금메달 획득 직후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유도의 최민호, 태권도의 손태진 등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야구 대표팀이 올림픽출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 행진을 이어가는 전 과정이 ‘LIVE’가 새겨진 TV 화면을 통해 방영됐다. 대한민국은 연일 올림픽 승전보로 들끓었다.
2008년 9월 6일 베이징장애인올림픽. 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미녀 사수’ 김임연과 ‘얼짱’ 수영선수 김지은, 육상의 홍석만 등이 출전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LIVE’가 없었다는 것이다. KBS가 개막식을 비롯한 주요 경기 하이라이트만을 편집해서 방송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기간 동안 세계 장애인들의 축제는 대한민국 전역에 실시간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베이징 현장에만 조용하고 진한 감동의 여운을 남기고 왔다.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이보다 앞선 2008년 4월,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2008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 한 남자 선수가 4명의 선수를 연거푸 꺾고 8강전에 진출했다. 기량도 수준급이고 다 좋은데 한 가지, 오른 팔뚝과 호구 등 뒤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할 소속팀의 흔적이 없었다. ‘무소속’의 이 선수 세컨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하다 이리저리 선수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큰 소리로 입을 여러 번 벌린 뒤 자리로 돌아갔다. 듣지 못하는 자기 선수를 위한 배려였다. 조금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비록 패배로 끝이 났지만, 이는 이 남자 생애 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2009년 9월 7일. 제21회 타이페이 농아인올림픽 태권도 경기. 유도와 태권도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가운데 김민재(21.신성대학교)가 -68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무소속의 설움을 15개월여 만에 금빛으로 날렸다. 한국 대표팀의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태극기 양 끝자락을 움켜쥐고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보였다. 21년 태권도 선수로 지내온 그간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무소속에 선천적으로 듣지 못하는 농아인 김민재는 눈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울고 난 다음에야 도복을 고쳐 입을 수 있었다.
김민재는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일반 선수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겨루어왔건만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는 아픔이 깊었다. 서러움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2008년 초, 처음 4년제 A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내 자퇴서를 제출해야만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관심이 덜 했던 것 같아요. 차별도 좀 있었던 것 같고요. 적응 문제도 있었겠지만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였겠죠.” 김민재의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가까운 지도자의 말이다.
이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신성대학 태권도학과의 한권상 교수(학과장)가 김민재의 상황을 전해 듣고, 부모를 찾아 온 것이다. “아드님을 맡겨 주십시오.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믿음’뿐입니다.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한 교수의 의지는 강했다. 한 교수는 김민재에게서 남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2009년 2월, 김민재는 신성대학에 새둥지를 틀었다. 4년제, 2년제의 구분을 넘어, 자신이 홀대받지 않고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면서.
듣지는 못하지만 김민재는 ‘구화(口話)’에 능했다. 자신의 시야에 상대의 입모양이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신성대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100% 소화해냈다. “발을 차고 난 뒤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체력 부족이었죠. 기술적인 면에서는 빠른 발놀림과 연속 발차기가 탁월했어요. 수준급이었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죠. (김)민재가 저의 모든 가르침을 일반 선수들보다 더 잘 이해하더군요.” 한 교수는 김민재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일반 선수들과의 차이점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가끔은 농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고 한다.
금메달 획득 직후 김민재는 이 기쁜 소식을 얼마나 얘기하고 싶어 했을까. 우승을 확정지은 7일 저녁, 김민재는 한권상 교수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나 보냈다. “교수님 금메달 땄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말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김민재의 야무진 꿈은 2013년 아테네농아인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으로 이어진다.
(사진제공 = 대한장애인체육회)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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