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국가대표]‘전교 1등’ 박정호의 세계를 향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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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대표다]‘전교 1등’ 박정호의 세계를 향한 도전

박정호가 할아버지(왼쪽)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백두산에 올랐으니, 이제 세계 최고의 산인 에베레스트에 도전해야죠.” 장창하(26,한국가스공사)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던 박정호(24,한국가스공사)가 2009년 태권도국가대표 1진으로 선발된 후 밝힌 각오다. 박정호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0kg급 세계 최강인 스티븐 로페즈(31,미국)의 대항마가 되겠다는 의지다.
박정호는 서울수색초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하던 우등생이었다. 누구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공부든 뭐든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소년이었다. 단 한 가지, 운동만 빼고.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태권도부가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문은 태권도부 창단으로 이어졌고, 이를 안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몸치’ 박정호의 등을 떠밀며 입단시켰다. 100%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땅콩’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몸이 왜소했고, 겨루기 실력은 선수들 사이에서 흔히들 얘기하는 ‘삐꾸’ 수준이었다. 그래도 훈련장에 베인 땀 냄새가 마냥 좋았다. 훈련장에만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번 중독되고 나니, 쉽게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돋보이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졸업과 함께 태권도부가 있는 한성중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박정호의 키는 몰라보게 자랐다. 겨루기 실력도 태권도를 좋아하고 즐긴 탓에 ‘무럭무럭’ 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태권도 선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상의 신체조건을 갖춘 박정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학생과 실업팀이 모두 참가하는 대표선발예선대회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더니, 이어 우수선수선발전에서까지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험난한 가시밭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인자의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박정호는 2003년에 2위, 2004년에 2위, 2005년에 3위, 2006년에 3위를 차지하며, 매년 대표선발 최종전에 출전할 때마다 코앞에서 태극마크를 놓쳤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덕에 2인자 자격으로 출전하게 된 첫 국제대회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내 대회로 돌아오면 또 ‘만년 2위’였다. 당시 웰터급의 장창하(26,한국가스공사)는 너무 큰 걸림돌이었다. 박정호는 중요 경기마다 장창하에게 무릎을 꿇었다. 5번의 경기에서 1승 4패, 큰 경기에서는 완패를 당했다.

한국체대 시절 박정호의 경기 장면
‘2인자’ 박정호의 갈 길이 바빴지만, 악재가 이어졌다. 무릎 부상이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2008년 한국가스공사에 입단함과 동시에 후방과 내측 십자인대가 끊어져 무릎 수술을 받게 됐다. 대학 2학년,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무릎에 큰 통증을 느꼈지만,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무심코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수술이라는 진단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포기’였다. 세계최고, 올림픽이라는 꿈은 더 이상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포기 직전 박정호를 잡은 것은 박종만(가스공사)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박정호에게 “너는 무릎만 나으면 바로 부활이다. 세계 최고자리는 너라면 충분하다. 해보자”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박정호는 박 감독의 격려를 진심으로 믿고 따라갔다. “정말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년 2위인 저를 끌어주신 박 감독님의 마음과 진심어린 격려가 태권도를 놓을 수 없게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박종만 감독님이 끌어주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감독님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지내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무릎 재활을 마친 2009년, 장창하의 그늘에 가려졌던 ‘만년 2위’ 박정호는 최종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5년에 걸친 끈질긴 도전으로 이뤄낸 감동의 결과였다.
이제 막 백두산(장창하)을 넘은 박정호는 곧 에베레스트(로페즈) 등반에 나선다. 세계선수권 5연승을 노리는 로페즈와 맞붙어 꼭 넘겠다는 것이다. “로페즈에 대해서는 (장)창하형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공격은 별 볼일 없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방어가 뛰어납니다. 득점기계로 소문난 창하형도 1점을 뽑지 못했죠. 이번 대회에서 스텝을 이용한 공격으로 방어를 할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경기에 임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끝으로 박정호는 자신을 믿어준 가스공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가 태권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가스공사에 입단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저를 내치지 않았고, 땀 냄새를 좋아하던 저를 최고로 성장시켜줬습니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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