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⑤월 9만원을 연 900만원으로

템브로크파인서 제 2관 개관, CIT 초석 다져


'EFC(Education Funding Company)에 가입하고 나서 50명에서 400명으로 수련생이 늘었습니다.' 태권도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 백인 남성이 미국 태권도 전문지에 낸 대문짝만한 광고였습니다.

1993년 3월. 이 광고 문구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능력있는 관장인줄 알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설마,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미국 전역에 포진한 무술도장의 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였습니다. 고작 40명 수련생을 보유한 저로서는 어떻게 보면 ‘절망 속에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EFC라는 곳은 수련생 모집 방법, 도장 홍보, 수련비 계약 노하우 등을 일선 사범들을 대상으로 가르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를 예로들었을때, 초등학교 수준의 비즈니스 방법을 전수하는 곳이었죠. 어쨌든 저는 이곳을 통해 제 사업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종전 월 9만원의 회비를 받아 온 제가 조금 눈을 뜨게 되면서 수련생들로부터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목돈을 받아내는 도장 운영법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그해 여름에 마이애미 템브로크파인에 두 번째 도장을 개관했습니다. 자신있었죠. 월,수,금요일에는 마이애미비치 도장에서 수업을 하고, 화,목,토요일에는 템브로크파인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동분서주, 일주일에 6일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직접 땀흘리며 가르쳤습니다. 결과는요? 물론 대성공이었습니다. 눈이 퀭헤지고 가끔 코피를 쏟는 것 빼고는요. 2관을 개관한지 딱 1년만에 150명이 됐습니다. “내가 다 할 수 있어", “믿을 사람 없다”는 생각에 혼자서만 열심히 가르쳤죠. 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몸살이 나도 아픈 티도 못내고, 도장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방법을 찾아야했죠. “나 혼자 할 수는 없다.” 결심이 선 저는 사범을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불안한 가운데 내린 결정은 6개월이 지나자, 250명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도장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


강상구 관장이 템브로크도장에서 수련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 이거구나.” 그때 깨달았습니다. 도장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요. 이때 저는 지금의 ‘사범양성프로그램(CIT)’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수석 사범 이외에는 초등학교를 마치거나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도장의 소속감을 증대시켜 보조사범으로 육성하는 방법이었죠. 저는 두 개 도장 운영의 전반을 관장하고, 각 도장 별로 수석 사범이 책임지고 수업을 관장토록 했습니다. 보조사범들은 메인사범의 뒤에서 세부적인 교육을 담당하게만 했죠. 완벽했습니다.

뭐, 이때가지만해도 주변 도장들처럼 도장 두 개 정도 운영하는 한국에서 온 보통 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났습니다. 더 큰 도장, 더 성공한 도장을 운영해보고 싶었습니다. 태권도타임즈, 블랙벨트매거진 등에 매달 광고를 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많이들 하시는 ‘1주일 무료체험’이라는 마케팅 기법을 첨부하면서요.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달 20명 가까운 인원이 신규 입관을 하는데, 수입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다지 수련생이 급감한 것도 않았는데 말이죠. 이런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데, 어느 날 입관한지 2개월 조금 넘은 마이클(당시 7살)이 태권도를 그만두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처음 계약을 할때까지만 해도 분명 부모가 “블랙벨트까지 잘좀 부탁한다”며 열과 성의를 다할 것처럼 했는데요. 여기서 저는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수련비의 개념을 확 뜯어 고치자.”

저는 그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입관하는 수련생들에게 최소 6개월 보통 1년, 단위로 회비를 받고 대신 약 5%정도의 할인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태권도를 중도 포기하는 수련생들도 현격히 줄어들었고, 최소한 1년 이상을 수련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제 3관을 개관하게 하는 밑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또 지금의 개인레슨, 평생 회원권이라는 파격적인 수련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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