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⑩돌아오라! ‘챔피언’ 손정오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⑩돌아오라! ‘챔피언’ 손정오

세계챔피언에 가장 근접한 유망주


손정오가 2007년 4월 21일 한국타이틀매치 2차 방어 성공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내의 유망주들 중에서 세계 정상권에 근접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불행하게도 복싱의 현주소다. 김정범이나 박환영, 김지훈처럼 완성된 선수들은 주로 중량급에 포진되어 기회를 잡지 못했고, 무섭게 성장하는 유망주들은 아직은 세계챔피언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이 선수는 다르다. 6개월만 훈련에 전념한다면 WBA 플라이급 챔피언 덴카오센 카오비치트(태국)나 동급 WBC 챔피언 나이토 다이스케(일본) 정도는 거뜬히 무너트릴 것으로 단언하는 전문가가 많다. 작년 4월 은퇴를 선언하고 천안에서 천안비트손정오복싱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손정오 관장이다.

손정오는 1981년 5월 13일 천안에서 태어났다. 2000년 3월 18일 진주에서 국윤진을 4회 판정으로 꺾고 프로에 데뷔했다. 이듬해 1월, 한 해를 거르고 2년 만에 개최된 신인왕전에 출전하여 플라이급 우승을 거머쥐었고 4연승을 질주한다. 당시 대회 MVP는 6전 6KO승을 기록한 미들급 우승자 최광진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선이 굵은 복싱을 구사한 손정오는 강타자 나기문(전 미니멈급 한국챔피언)을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으로 누르고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경기가 잡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당시 매니저이던 김명복 관장은 그 해 11월 인도네시아로 원정을 감행한다. 상대는 애니스 로가였다. 로가는 세계타이틀에 두 차례 도전하여 1무 1패로 선전한 인도네시아의 복싱영웅이다. 불과 4전 경력의 풋내기에게 IBF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인 로가는 모든 면에서 버거운 상대였다. 그렇지만 손정오는 열심히 달려들었고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판정은 무승부였다. 인도네시아 관중들의 야유 속에 자존심 상한 로가 측에서는 재대결을 요청했다. 한 달 후 다시 원정 경기로 리턴매치를 벌였다. 이번에는 더욱 선전하고도 홈 링의 텃세로 판정패를 당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손정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감과 함께 그는 2002년 2월 13일 PABA 챔피언 유라 디마(몽골)의 세계타이틀매치 전초전 상대로 나서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에서 손정오는 예상을 뒤엎는 완승을 거둔다. 3개월 후, 아마추어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며 신인왕 MVP였던 국나남(풍산)에게 판정승, 한국 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한다. 손정오가 승리를 거둔 유라 디마는 태국, 중국,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며 제 2의 라크바로 불리던 강타자였다. 또 국나남은 PS 프로모션에서 전 WBC S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의 후계자로 육성하던 선수였다. 이처럼 신인왕 이후 손정오는 모든 경기를 언더 독 상태에서 치렀지만 결과는 예상 밖의 선전과 더불어 연승을 이어갔다.

6개월 후, 동양타이틀 도전 기회를 잡은 그는 9월 11일 오사카에서 고마쓰 노리유키(일본)에게 도전한다. 12회까지 박빙의 경기를 펼친 끝에 아쉽게 석패, 동양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13일 후인 9월 24일에는 태국 원정까지 감행, 콤리트 룩쿠옹무에콜과 PABA 타이틀을 놓고 자웅을 겨루지만 7회 TKO로 패했다. 너무 무리였다. 10월에 입대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인지라 매니저가 살인적인 일정을 잡아버린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상태에서 무더운 태국 원정은 자살행위였다.

세계챔피언 문턱에서 돌연 은퇴한 손정오


제대 직후의 손정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입대한 손정오는 제대 후 손경진에게 8회판정승으로 재기한다. 2005년 가을 서울의 한남체육관으로 이적했고, 2006년 3월 전주에서 필리핀의 강타자 페데리코 카투바이를 상대로 이적 후 첫 경기에서 판정패한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 연습에 매진했다. 지옥훈련으로 소문난 김한상 매니저의 조련을 군소리 없이 소화했고, 일본에서 원정경기 제의가 들어왔다. 동양타이틀 도전을 앞둔 요시야마 히로시(일본) 측에서 손정오를 손쉬운 상대로 여겨 불러들인 것이다. 손정오는 이 경기에서 한국복서 일본 원정 논타이틀전 10연패 사슬을 끊는 소중한 승리를 따냈다. 홈 어드밴티지를 적용해도 도저히 요시야마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손정오는 이 경기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그 해 12월 신예 신홍균을 시작으로 명재성, 정정수를 모조리 KO시키며, 한국타이틀전 3연속 KO승을 기록했다. 이후 2007년 6월 한 체급 위의 강타자 김정완(천안범진)을 흠 없는 판정으로 제압, 한국 슈퍼플라이급 타이틀마저 거머쥐었다. 3개월 후에는 대구에서 필리핀의 로델 테하레스를 6회 KO시키면서 6연승(4KO)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2008년 4월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3월로 예정되었던 경기가 연기되었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장남의 입장에서 복싱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한상 매니저는 자비를 들여 손정오의 시합을 계속 유치하고 지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이후 천안에서 체육관을 인수하여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았고, 현재 동생 손정수를 비롯해 신인 선수를 육성, 지도하고 있다.

18전 13승(4KO) 4패 1무. 전적만으로는 최고의 기대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손정오의 복싱은 계속 진화해 왔다. 순박한 외모와는 다르게 체력과 터프니스가 탁월하고 디펜스가 좋다. 유일하게 지적받았던 파워도 김한상 매니저의 훈련을 마스터하며 눈에 띄게 달라졌다. 펀치력이 없던 것이 아니라 치는 순간의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보완하면서 이제 제대로 된 파워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손정오는 고인이 된 전 WBC L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이 세계챔피언 시절 스파링 파트너로 뭇매를 맞으며 기량을 연마했다. 최요삼은 2007년 스파링 후 손정오를 확실한 내일의 세계챔피언으로 지목한 바 있다. 손정오를 상대하는 선수들이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절감하던 한계를 최요삼도 느꼈던 것이다. 기량이 만개한 상황에서 은퇴했지만 이제 만 28세. 체육관 운영으로 어느 정도 생활도 안정되었다. 김한상 매니저 역시 그의 컴백을 확신하며 세계도전을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다. 이대로 끝낸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복싱. 많은 복싱팬들도 링에 선 그의 모습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본인의 결심만 남았다. 더 늦기 전에 돌아오라, 손정오.

*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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