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④200명에서 40명 ‘몽둥이’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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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지 않는 생나무 송판격파, 사랑의 매는 2년도 못가

강상구 관장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비치 콜린스 에버뉴 71가 ‘Sang's taekwondo’. 1991년 5월 개관한 제 인생의 첫 번째 도장입니다. 23살, 저의 이름을 걸고 당당히 도장을 개관했습니다.명색이 관장이었지만, 도장 월세를 내기 위해 밤이면 아르바이트생으로 변신했습니다. 기꺼이 저녁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마이애미 시내의 한 클럽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을 조용히 밖으로 인도하는 해결사(?)가 되었죠. 녹초가 되어 새벽 5시 30분에 집에 오면 9시에 눈을 떠 도장 문을 열었습니다. 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4번 있는 수업을 혼자 소화했습니다. 도장 환경이야 말 할 것도 없이 열악했습니다. 35도 이상을 웃도는 더위에도 에어컨 하나 없었습니다. 각 벽마다 거울을 붙인 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였죠. 그래도 구색은 갖췄습니다. 고물상에서 작은 거울을 구해다가 곳곳에 붙였습니다. 뭐, 개당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말이죠. 어쨌든 누추해도 제가 개관한 ‘1호 도장’이었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도장은 열었는데, 수련생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니야, 여기서 도복만 입고 앉아 있으면 누가 알아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인쇄소에 갔습니다. “10만장이요.” 한 끼 밥 먹기도 부족한데 도장 홍보 전단지를 10만장이나 주문했습니다.
허리춤에 전단지 더미를 끼고 무작정 거리에 나갔습니다. 점심, 저녁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손수 나누어 줬습니다. “생스 태권도장입니다! 강상구 관장입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또 이런 현실이 너무 싫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죠. 하지만 제 옆에는 저를 지켜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였죠. 오후까지 일에 지쳐 피곤할 법도 한데, 저보다 더 힘껏 “생스 태권도장”을 외치며 전단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도 효과가 있었던지, 개관하고 3개월이 지나자 수련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20명에서 25명까지 신규 입관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당수 수련생이 입관과 동시에 150달러(3개월)를 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제법 큰돈이었죠. 어느 날 출석부를 보니, ‘219명’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저는 수련생들을 더 강하게 훈련시켜 ‘운동 잘 가르치는 도장’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무도 태권도를 주장하면서 한 손에는 ‘사랑의 매’를 들었습니다. 아니 ‘몽둥이’를 준비했죠. 저의 꿈은 야무졌습니다. “강한 도장, 강한 수련생을 키운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태권도는 무도, 무도는 엄격해야한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수련생들이 조금이라도 게을러질라 치면 매질을 했습니다. 그것이 사범이 수련생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면서요.

생스 태권도장 시절, 심사를 보고 있다.
정기 심사 때는 이 무도 태권도 정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도장 근처 목재소에서 직접 재료를 가져다 톱으로 잘라 세로 30cm, 가로 20cm의 격파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제야 말하는데 솔직히 제가 격파를 하더라도 아픔을 느낄 정도로 딱딱하고 거친 야생의 목재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10살도 채 안된 아이들이 주먹과 발에 피를 흘리고 엉엉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한술 더 떴습니다. 수련생들에게 “다시! 다시! 이거 못 깨면 검은 띠 탈락”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지금도 제자들이 ‘눈물 젖은 송판’이라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하지만 ‘몽둥이’ 사범님의 약효는 채 2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200여명까지 올라갔던 수련생이 어느 날 보니, 40명으로 확 줄어 있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160명의 수련생을 집으로 보내버리다니. 망했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태권도타임즈, 블랙벨트매거진 등 태권도 또는 도장과 관련된 잡지들을 죄다 가져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광고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엄청나게 뚱뚱한 한 미국인 사범이 낸 ‘400명 수련생 모으는 법’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 머리 속에 잠자고 있던 ‘비즈니스 마인드’가 꿈틀 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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