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나를 너에게 보냄-양, --너를 받아들임--음



쓰고 보니 너에게 나를 보낸다란 영화랑 제목이 흡사해져 버렸다.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자기 정체성 부재를 대상(對象)에서 찾는 것이었다 하면, 글쎄 여기서 말할 추나 개념과는 썩 관련은 없어 보인다.

아무튼 개념 설정이 난해한 음양(陰陽)이란 단어를, 세상의 중심인 나를 기준으로, 나로부터 가까움은 음, 나로부터 멀어짐은 양이라 정의해 보자.(실지로 대부분의 음양은 이 정의에 부합한다)

당기는 무술은 레슬링이나, 유도 등으로 음적이고, 미는 무술은 가라데나 태권도 등으로 양적이다. 특히 태권도는 대부분의 동작이 미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대단히 양적인 무술이 된다.

의학적으로 음적인 무술은 음인이 하기에 유리하며, 양적인 무술은 양인이 하기에 유리함은 사실이나, 건강을 위해선 음인은 양적인 무술을 양인은 음적인 무술을 수련하는 것이 좋다.

결국 태권도는 양적인 무술이며, 태음인 소음인 같은 음인이 수련하면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동무 이제마가 쓴 격치고(格致藁)의 일절(一節)이다.

"낮을 보지 않으면 밤에 대해 알 수 없고, 여름을 보지 않으면 겨울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옳음을 보지 못하면 그름에 대해 알 수 없고, 진실을 보지 못하면 거짓에 대해 알 수 없다"

-不見其晝,卽不知其夜,不見其夏,卽不知其冬,不見其是,卽不知其非,不見其性,卽不知其僞-

모든 무술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다. 그 안에는 음양이 모두 혼재되어 있으며, 세상 규칙이 모두 녹아 있다. 음은 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양은 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거짓엔 진실이 뒤에 자리하고, 진실엔 거짓이 뒤에 자리한다. 사랑이 깊으면 증오도 깊어지듯이 음양은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을 지배한다.

세상살이가 이러할진데, 태권도도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음적인 내실을 더욱 다져야 되지 않을까 한다.


문성수 원장은 한의학 커뮤니티 사이트인 예스메디(www.yesmedi.com)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2

태권한국 2001.02.20
모든 무술을 음양의 관점에서 잘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의학을 접하다 보면 항상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체질에 관한 것인데 그 구분 방법이 너무 어렵습니다. 쉽게 나의 체질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
문성수 2001.02.20
안녕하세요. 문성수 원장입니다. 체질이란 글자뜻 그대로 몸의 유형입니다. 그 기준은 기준 설정 창시자에 따라 분류를 달리하지요. 한의학에선 대표적인것이 사상체질로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 선생님은 부동심(不動心)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만 내 자신의 감정의흐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다 생각하셨거든요. 우리들의 흔한 일상에도 투사나 전이같은 감정이입이 쉽게 관찰됩니다. 영화를 보다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던지, 남 싸움에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던지, 배신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있으면 전혀알지 못하는 배신한 넘이 죽일넘이 된다던지, 이런 감정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라 하셨지요. 세상의 중심과 잣대는 항상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이런 저런 비슷한 유형의 인간군상을 모아놓은 것이 체질이고, 통계학의 일부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내 몸을 관찰대상으로 항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접근하시면, 스스로의 체질을 파악하기란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