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②역전의 돌려차기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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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살림살이, 마이애미고등학교 내에서 따돌림은 발차기로 극복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83년 12월 23일.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내렸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로 공항은 북새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제 키의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였습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한 듯 저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마이애미 시내에서 20여분 거리의 후미진 어느 작은 골목, 사람들은 제가 사는 그곳을 ‘22번가’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은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10평 남짓한 방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저, 두 명이 살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제 어디가도 당당할 수 있는 ‘가족’이란 존재가 저에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만 새벽에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과 단잠에 빠졌을 무렵 아파트 전체에 ‘반짝’ 불이 켜지는 것을 빼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살던 그 아파트는 마약, 살인 등에 관련된 범죄자들의 피신처였습니다. 한 밤중에 켜지는 불빛은 바로 경찰 헬리콥터가 불빛을 비추어 수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무서웠지만, 저에게는 가족과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기는 했지만, 학교는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1984년, 마이애미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아는 영어라고는 'Thank you'가 전부였습니다. 한국에서야 워낙에 발차기 밖에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이 발차기가 힘든 미국 생활을 180도 뒤집어 놓았습니다.
당시 동양인, 즉 황색인종에 대한 편견은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동물원의 원숭이’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도 없이 몇 개월을 혼자 지냈죠. 주변 친구들의 놀림은 계속됐고, 심지어는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약해서 맞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참지 않으면 다시 한국에 쫓겨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이애미고등학교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이름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를 놀리던 아이들 중에 로이 블랙이라는 한 흑인 친구가 그날따라 저에게 ‘동양 꼬마’라며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왔구나.” 그리고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로이! 잔디밭으로 나와!” 로이는 어이없다는 듯 저를 죽일듯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따라 나왔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여기서 내가 맞기라도 한다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잔디밭을 한번 밟아 보았습니다. “지지말자.”로이는 마이애미고등학교 레슬링부에서도 알아주는 싸움꾼이었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근육이 상당했죠. 막상 앞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한국에서 몇 번 싸움을 한 적은 있어도, 얼굴이 검은 친구를 상대로 싸워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로이가 저를 향해 무섭게 달려왔습니다.
“퍽.” 저도 모르게 오른발 돌려차기가 나왔습니다. 달려오던 로이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나중에 지켜본 친구들 말에 의하면 정확하게 로이의 왼쪽 턱에 제가 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도 잠시, 이 일로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 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려는 단지 기우일 뿐이었습니다. 저를 향한 야유의 소리도 놀림의 손가락질도 없어졌습니다. 대신 ‘발차기 왕’ ‘마이애미 이소룡’ ‘고수’로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왕따에서 학교의 전설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죠.
이 ‘한 방’은 제 인생에 또 다른 기회를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마이애미고등학교 내 풋볼 팀에서 연락을 해 온 것입니다. 제 발차기를 보고 이 정도면 풋볼 팀에서도 대활약을 할 수 있다는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제 위치는 ‘키커(Field Goal Kicker)’였습니다. 당시에는 얼마 뒤, 제가 전미 풋볼 'TOP 5'에 드는 플로리다주립대학교(FSU)에 입학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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