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뒷담화] ‘늦깎이 대학생’ 권오민, 감독에서 교수까지
![[무카스뒷담화]‘늦깎이 대학생’ 권오민, 감독에서 교수까지](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h123112.jpg)
선수들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코트위의 의리파
“축하합니다. 9월 1일부로 상명대학교 체육학부 국제태권도전공 교수로 임용이 확정됐습니다.” 11일 오전 9시, 이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권오민 현 상명대 태권도부 감독(50)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30년간 교수가 되기 위해 달려온 그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978년 11월 최우수선수선발전 페더급 4강전. 당시 이 시합은 권 감독에게 대학 진학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권 감독은 배를 움켜 잡고 코트위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복막염이었다. 맹장이 뒤틀리며 급히 응급실로 후송됐다. 상황은 심각했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어요." 권 감독은 이후 또 한 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70여일을 입원하고 나서야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성동상업고등학교(현 송곡고)의 주목받던 페더급 선수가 ‘고등학교 졸업’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모든 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버지(권영우氏)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 사범으로 취직했다. 그래도 핏줄인지라 못난 자식 밥은 먹고 살 수 있게 하려는 부친의 배려였다. 1990년까지 서울 금천구 시흥동 소재의 호암태권도장 관장은 권 감독의 공식 직함이었다.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정체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권 감독은 20년 뒤의 꿈을 하얀 도화지 위에 다시 그려봤다. 그리고 ‘교수’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내세울 만한 학벌도, 경력도 없던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것 뿐 이었다. “필드에서 경험을 쌓자.” 권 감독은 결심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상임심판원으로 활동하며, 선수들과 호흡하고 코트 감각을 키워나갔다.

2005 스페인 세계선수권에서 권오민 감독(왼쪽)이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와 기뻐하고 있다.
그의 계획은 하나씩 이루어졌다. 1991년, 경성여자실업여자고등학교(현 홍익문화디자인고) 태권도 코치로 임용되며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선수시절 내세울 거라고는 최우수선수선발전 동메달에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본 그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결과는 훌륭했다. 강혜은, 김윤경 등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을 포함해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지원(시드니)까지 배출해 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런 와중에 1998년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입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0년, 상명대학교 태권도부 감독으로 새 둥지를 텄다. 이후 그의 지도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재식 현 베트남 국가대표팀 코치, 박태열 하계 U대회 우승자를 비롯해 이문규, 김용민 등의 무수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배출하며 치적을 쌓았다.
그래도 어딜 가든 그는 아웃사이더로 통했다. 지금의 억척스러움 역시 이런 설움을 이겨내기 위한 권 감독의 다짐이었다. “무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살아남으려면 강해 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현재의 상명대를 5대 태권도 메이저대학에 진입시키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부당한 판정에 항의하며 태권도 경기장에서 '얄미운 지도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얼굴을 붉히며 KTA 임원들과의 마찰을 주저하지 않고, 혹여 자기 선수들이 부당한 처우라도 받게 되면 멱살잡이까지 했다.
이런 권 감독의 강한 성격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아픔은 1996년 필리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한국대표팀 코치로 내정 된 때에 찾아왔다. 직전 전국체전에서 소속 선수의 부당함을 강하게 항의하다 코칭스테프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이후 2005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코치로 파견되기까지 딱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불합리한 판정에 싸우는 대신 정작 본인은 대표팀 코치로 국제대회에 나가 훈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보낸 것이다. 권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저에게 체육 훈장이라는 공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려 교수의 꿈에 차질을 빚었다고들 얘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선수들이 우선이니까요.”
약 한 시간여 동안의 만남을 마무리 할 즈음, 권 감독에게 “이제 태권도 경기장에서 권오민 카리스마를 다시 볼 수 없는 건가요?”라고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현장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해야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켜냈던 후배들이 이제 저의 역할을 대신해야겠죠.”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