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금메달’ 이란의 태권영웅 하디 사이

6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및 무주 일대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청소년캠프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방문했다.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4번의 우승을 차지한 신화의 주인공 정국현 교수(한국체대)와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황즈슝(대만),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경선(고양시청), 임수정(수원시청), 우징위(중국) 등이 참석했다. 이런 가운데 등장만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이란의 태권영웅 하디 사이(33, Hadi Saei)였다.

8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청소년태권도캠프를 찾은 이란의 하디 사이
하디의 세계대회 입상 경력은 화려하다. 1999년 에드몬튼, 2005 마드리드 세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의 기록은 태권도계에서 경이적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린 시절의 하디는 태권도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이란은 조금씩 태권도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하디와 함께하던 12명의 친구들은 모두 태권도를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 결국 하디도 친구들 중 가장 늦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스타가 그렇듯 하디는 태권도를 ‘사랑’하게 됐다. 힘들다던 친구들의 불만과 불평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후 12명의 친구 중에서 태권도를 수련하는 것은 하디가 유일했다.
하디의 열정적인 사랑은 1998년 첫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당시 하디는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우승에도 불구하고 슬펐다. 우승과 함께 아버지의 별세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나에게 많은 후원과 응원의 말들을 해준 분이다. 내가 힘든 훈련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꼭 아버지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하디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고통의 열매는 달다. 이후 하디는 많은 세계대회를 휩쓸었다. 이런 까닭에 하디는 이란에서 ‘국민영웅’으로 부상했다. 하디길(Hadi road), 하디병원, 하디스포츠센터, 하디학교 등이 설립됐다. 두개의 실업팀 감독도 역임하게 됐다. 이뿐만 아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는 시의원에 당선됐으며, UN 평화사절단 대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2004년 하디에게 명예를 가져다 준 금메달들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2003년 12월 이란 남동부 케르만 주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2천년의 유적 아르게 밤(Arg-e Bam)이 붕괴되어 폐허로 변했다. 사상자만 5만여 명에 육박했다. 이를 돕기 위해 메달을 경매에 붙인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모금한 금액으로 케르만 주에 우유공장을 지었고, 학교, 스포츠센터 등을 건립해 그들을 도왔다. 댓가로 평생을 바친 메달은 모두 잃었다. 사랑은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후 메달을 구입한 사람들이 하디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메달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그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았다.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어주는 것에 만족했다. 하디는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고, 그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말고 태권도를 통해서 인성을 배워라.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 금메달을 목에 건 하디 사이가 태권도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전북 무주 =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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