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①‘미운 오리새끼’의 도장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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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년, 새벽에 신문 돌리며 동방무술 도장에서 숙식해결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1966년 12월 18일, 파주에서 태어나 새어머니와 위로 두 명의 형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당시에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홀연단신 미국 마이애미로 떠났습니다.
몇 해가 흐르고, 아버지의 발길도 뜸해질 즈음, 가족 중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위에 두 명의 형이 더 있었지만, 결국 저에게는 키의 절반만한 신문꾸러미가 안겨졌죠. 어떻게 해야 할지, 학교는 어떻게 다녀야 할지, “아무리 나만 어머니가 틀리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 가족의 구타에 차라리 내가 신문이라도 돌려서 돈을 벌어오면 나아질꺼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새벽 3시에 일어나 거리에 나왔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신문이라도 돌리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 졌습니다. 발에 물집이 생겨 고름이 터질 때까지 일했지만, 더 이상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죠. 미국의 아버지와도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겠다고 말이죠.
그날로 다니던 신문사 사무실에 찾아가 얘기했습니다. “잠을 잘 곳이 없습니다…” 신문사에서는 어린 나이에 갈 곳 없어 하는 저를 딱히 여기고 사무실에서 자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새벽에 일하고 낮에는 학교를 가고, 그러기를 몇 달이 지났습니다.

중학교 시절 다니던 무술도장에서 수련생들과 강상구 관장(뒷 줄 맨 오른쪽)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공기를 맞으며 여기저기에 신문을 넣고 있는데, 무언가 저의 걸음을 잡았습니다. 그간 몇 달을 지나다닌 길인데 왜, 이걸 이제서야 봤을까.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의 붉은색 건물 2층의 유리창에는 ‘동방무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소룡과 성룡의 광팬이었던 터라, 제 가슴을 뛰게 하기 충분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무술 = 이소룡’, 분명 나도 여기에 있으면 이렇게 될 수 있어”라고. 물론 “신문사 사무실보다는 이곳이 더 따뜻하겠다”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죠. 또 부딪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관장님을 직접 찾아가기로 한 것이죠.
“도장에 있게만 해주십시오. 모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처음 관장님은 저를 보고 기막혀 하셨습니다. 너무 어렸고,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해 수척해진 저를 거의 ‘거지’로 보셨던 것이죠. 그래도 매달렸습니다. “이제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습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저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관장님이 허락해 주셨죠.
지금의 태권도와는 분명 명칭은 틀렸지만, 강상구라는 남자를 무술의 길에 들어서게 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신문을 돌리고 들어와 새벽 5시에 도장 문을 열고 첫 수련생을 맞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사범님과 운동복을 겹겹이 입고 서로 꼭 안고 자야했지만, 마음만은 편했습니다. 수련생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합기도와 비슷한 술기를 가르치던 곳이라, 발차기와 낙법 등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일 불편한 잠자리에 몸은 피곤했지만,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때 기억나는 건 관장님께서 “(강)상구 너는 운동신경이 정말 좋다. 다리 힘도 좋아서 축구선수 해도 되겠다”는 말이었죠. 여하튼 도장 내에서 성인 수련생들하고 겨룰 정도였으니까요. 어릴 적 이런 고생이 지금의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아버지께서 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먼 미국 땅에서 내 자식이 거리에 나와 부모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신 겁니다. 아버지는 곧장 친한 친구 분에게 연락을 해서 한국에서 미국 마이애미로 저의 이민 수속을 밟으셨죠. 1983년 12월 23일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뒤로하고, 미국 마이애미 인터내셔널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SANG'S MARTIAL ARTS & TNT 도장을 7개씩이나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죠.
*[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는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이번주는 편집부의 사정으로 목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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