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山山水水]노무현 대통령에게 꼭 전해야할 조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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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번째 이야기 -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는 날
이런 글쯤은 태권도, 아니 체육 역사에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다. 뭐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오늘 산산수수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바로 오늘 영결식(永訣式)을 갖고 한자 그대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재임시절 정치테러에 의해 한국체육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돼 버린 김운용 전IOC위원이다.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김 전 위원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은 끔찍했다. 자칫 견원지간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럴만도 한 것이 김운용 전 위원은 ‘태권도 40년, 올림픽 30년’이라는 말이 압축하듯 태권도와 한국 스포츠 발전에 더없이 큰 공을 세웠지만 한순간에 죄인이 됐다. 모두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정치적 행위였다. 그리고 복권도 끝내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이뤄지지 않았고,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이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시켰다. 노무현 정권 막바지, 평창의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걸린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 때 당시 위정자들은 ‘김운용에게는 미안하고 그렇다고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던’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처음엔 “함께 과테말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이내 “오시지는 말고 전화로만 도와달라”는 선에서 정리된 웃지 못할 비화도 있었다.
좋아하는 정치인 노무현과 그 정권에서 당한 김운용
산산수수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386의 끄트머리 세대인 까닭에 노무현 대통령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다 좋은데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직업(스포츠라이터)과도 직접 닿아있는 스포츠를 너무 등한시한다는 것이었다. 확실히‘진보’는 체육(주로 엘리트이기는 하지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2002년 대선 직전 산산수수는 근무하던 스포츠일간지의 대표기자로 선정돼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그리고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하루 간격으로 인터뷰를 했다(각각 당사에서). 그 전에도 멀찌감치에서 그를 바라본 적은 있지만 서로 눈동자를 마주보며 제법 긴 시간 대화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첫 인사가 충격이었다. 다 좋았는데 너무나도 소탈했던 노무현 후보는 ‘스포츠신문’기자에게 “스포츠 그거 3S중 하나 아닙니까? 적당히 잘 써줘요”라고 농을 건넸다. 놀랐다. 유머였고, 아주 소탈한 분위기에서 크게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거 직전 자신을 취재하는 스포츠기자에게 스포츠비하 발언을 하면 되는가?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 멘트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은근히 산산수수 마음 속에 그래도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이 순순히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확실하게 뭉갠 김운용 전IOC위원은 대선 당시 민주당의 국회의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체육계 몫의 비례대표가 돼 있었다. 김 전위원은 당의 상임고문으로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선거운동을 도왔다. 특히 대선 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너무 낮다며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거세게 일었는데 이때 민주당의 원로그룹이 최종 반대했고, 그중 한 명이 국회의원 김운용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당사를 방문했어. 그때 다른 사람들은 그냥 쓱 스쳐갔는데 나한테는 와서 악수를 길게 하며 여러 차례 고맙다는 말을 했어.” 김운용 전 위원의 회고다.
그런데도 김운용 전IOC위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 참담하게 무너졌다. 뭐가 그리 밉보였는지는 심지어 '그래 시키는 대로 사표를 쓸게'라고 하는 노인네한테 청와대 비서관이 사표의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3번이나 고쳐쓰게 했다.
참 좋은 사람들

화무십일홍이라고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고, 정치권력은 노무현의 반대편이 쥐고 있다. 김 전IOC위원의 명예도 많이 회복됐다. IOC위원들 사이에서 강압에 의한 사퇴는 무효이기 때문에 복직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이미 UN인권위원회나 IOC가 발행한 ‘IOC 100년사’라는 책은 김운용 전 위원이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고 규정한 바 있다.
며칠전 김운용 전IOC위원을 만나 식사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정말 궁금했다. 그렇게 노무현 정권 때 그렇게 당했고, 이제 세상이 바뀌고 그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 자살을 했는데 좋아할까? 아니면 그래도 사람이 죽었으니 입에 발린 위로를 할까? 요즘 보수논객들은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대놓고 비판하는데 말이다. 취재자리가 아닌 아주 편한 사석이었고,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는 가끔 비판을 하기도 했기에 정말이지 궁금했다.
그런데 조금 후 혼자 이런 상상을 한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노 대통령 참 장점이 많은 정치인이었어. 노 대통령이 나를 죽였겠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다 보니 내가 방해가 된 거지. (노 대통령이)개인적으로 나한테는 잘했어. 그런 사람 없어.”
그런 사람 없어. 아마 인터넷을 직접 하지 않는 김 전위원은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노래가 추모곡으로 큰 인기를 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운용 전 위원이 이렇게 말을 하다니. 정말 놀랐다. 차라리 ‘자업자득’이라는 식으로 촌평을 했다면 아주 자연스러웠을 텐데. 그의 눈빛과 뉘앙스에는 그냥 입에 발린 ‘망자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팔십 인생의 묵직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김운용 전IOC위원이 조용히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주위의 시선과 불필요한 오해를 살 소지가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산산수수가 대신 이 자리를 빌어, 김운용 전IOC위원의 조문사를 전한다.
김 전위원이 편하게 얘기한 것을 함부로 기사화한다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기 전에 꼭 이 말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운용 전IOC위원께서 당신에게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라고. 그래야 이승을 내려다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치 않겠는가?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유병철 편집장 / einer@mookas.com]
*유병철의 산산수수는 이번 열여덟 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산산수수를 아껴주신 무카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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