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하디'를 키우자!

황경선, 손태진이 위험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김경훈, 이선희, 정재은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0kg급에 출전한 김경훈은 금메달 획득이후, 2004년 10월 전국체육대회까지 4년간 선수생활을 지속했다. 이선희도 2004년 7월 대통령기전국단체대항대회 1위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재은 역시 2004년 10월 전국체육대회가 자신의 은퇴경기(밴텀급 1위)였다. 세 선수 모두 2004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 출전했지만, 2위에 머무르며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문대성, 장지원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재밌는 것은 이 두 선수 모두 올림픽을 끝으로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것이다. 문대성은 3년이 지나 2007년 8월 협회장기대회에 출전했지만, 2008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 나가기 위함이었다. 장지원은 올림픽 메달 획득 이후 두 달 뒤인 10월 전국체전 3위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2000년, 2004년 금메달리스트 모두가 올림픽 2연패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상황이 어찌됐건 대부분의 메달리스트들이 올림픽 메달 획득 이후 길어야 4년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레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수정, 황경선, 손태진, 차동민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올림픽 직후 열린 이번 2009 국가대표 선수선발 최종대회(최종전) 결과는 이들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잣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태권도계에서는 시쳇말로 ‘떨어지면 은퇴해야지’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다.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하디(이란)의 모습
19일 최종전이 끝나자, 네 선수의 명암은 엇갈렸다. 임수정은 -62kg급에서 1위를 차지했고 차동민은 +87kg급에서 2위를 했다. 임수정은 오는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확정지었고, 차동민은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동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 반면 손태진과 황경선은 예선에서 패배한 뒤, 패자부활전에서까지 패하며 탈락했다. 차동민까지는 어느 정도 메달리스트의 체면치레로 봐줄 수 있지만, 손태진과 황경선에게는 이번 최종전 성적표가 채찍이 아닌 ‘폭탄’으로 다가왔다.
황경선과 손태진이 위험하다. 최종전 이후 이 두 선수는 선수 생명을 건 최악의 사투를 자신과 벌이고 있다. 선수 생활에 있어 가장 큰 적이 바로 자신감인데, 이들의 자신감은 최종전 이후 현재 바닥까지 떨어졌다. 탈락이 확정된 직후 한 메달리스트는 “요즘은 이대로 은퇴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엄청나게 훈련했는데…”라며 착잡한 심정을 전했다. 황경선은 경기 직후 한참 동안이나 울먹이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거절한 채 괴로워했다.
이제 태권도계 여론은 물론이고, 소속팀의 관계자들 모두가 이들에게 관심을 쏟아야한다. 여론은 항상 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의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지도자들도 올림픽 메달 획득 직후 혹시 있을지 모를 목표의식 결여를 예방하기 위해 또 다른 동기부여에 포커스를 맞춰야한다.
선수층이 두꺼운 종주국 한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세대교체’하기에는 이들이 너무 젊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에 이들의 국내,외 대회 독식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태권도의 ‘스타플레이어’ 양성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말로 태권도계에서 “쓸만하면 은퇴한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문대성의 ‘금빛 뒤후려차기’를 뒤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대활약을 위한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한국의 하디를 키우자. 올림픽 2연패에 빛나는 이란의 태권도 영웅 하디(32, Hadi Saei Bonehkohal)는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1999년 에드몬튼, 2005 마드리드 세계선수권 우승,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 하디의 주요 선수 경력이다. 이란의 태권도 선수층이 한국과 비교해 전혀 뒤떨어 지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하디가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던 배경은 소속팀과 자국 내 여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황경선과 손태진에 더욱 각별한 애정을 쏟자.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싶어 할 정도로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인 두 선수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자. 2012년, 2016년 올림픽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박수를 아끼지 말자.
[무카스미디어 =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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