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山山水水]태권도판 영어완전정복
![[유병철의山山水水]태권도판 영어완전정복](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englishhh.jpg)
열일곱 번째 이야기 -이 남자가 사는 법
먼저 이번 산산수수는 아주 순수한 취지임을 밝히고 싶다. 14년째 스포츠글쟁이로 살아왔지만 요즘 태권도만큼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종목도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냉정히 따지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정말이지 정치판과 흡사하다. 그래서 아주 당연한 얘기를 쓰면서도 이렇게 어색하게 ‘탈(脫) 정치’를 운운하는 것이다.이유는 이렇다. 한 태권도인(대학생)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이 친구는 최근 김운용 전 IOC위원의 강연을 들었다. 뭐 ‘세계를 향한 도전’이라는 김 전위원의 강연 내용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실속에 민감한 신세대답게 자신은 김 전위원의 어학실력이 가장 궁금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영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그 비결 말이다.
사실 이 질문은 최근 ‘학자’와 ‘강사’로 변신(?)한 김운용 전 위원이 가장 많이 접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김 전 위원은 4월에만 3개 대학에서 특강을 했는데 질의응답 시간이면 빠짐없이 ‘어학실력의 비결’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답변이 한결같다는 사실이다.
답변은 처음 다소 동문서답식으로 시작한다. 영어를 잘하는 비결을 물었는데 일단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품 교양 학식과 같은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방면의 교양을 충실히 쌓아야 한다. 영어만 잘한다고 스포츠외교나 스포츠행정가로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영어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본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어학은 확실히 습관이다. 평소 생활에서 꾸준히 영어를 익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콘사이스(옛날분들은 특정 사전의 상호인 이것을 사전이라는 의미로 말한다)만 달달 외워서는 안 되고 살아있는 언어를 익혀야 한다. 외국사람을 만나 실전에서 자꾸 해보는 것이 좋다”는 해법이 나온다. 참 간단하다. 하지만 감동은 없다. 핵심만 따지면 학창시절 줄곧 들었던 ‘영어에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산산수수에 특별히 부탁을 한 대학생의 의도는 이렇게 간단한 것 말고 자신이 뭔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김운용만의 특별한 영어 학습법’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 산산수수는 이 부탁을 외면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이미 김운용이라는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 됐고, 또 지난해 복권과 함께 그 이름 석 자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래저래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말이 필요없는 어학의 ‘대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좋은 얘기만 많이 나올 것이기에 낯간지러운 글을 굳이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학생 친구의 설득에 넘어갔다. “기자님, 자세하게 김운용의 어학실력을 취재해 기사화하면 후학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겁니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닙니까?” 젊은 친구가 이렇게 따지는데 더 잴 것이 없었다. 나름 직접 확인한 것과 추가 취재를 통해 ‘이 남자의 영어공부’를 다루기로 했다.
김운용의 영어실력

기자 생활을 오래하면 못된 버릇이 하나 생긴다. 자꾸 의심하고, 확인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습관이다. 그래서 일단 김운용 전 위원의 영어실력을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평가라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해야하는데 산산수수가 그 자격이 없다. 개인적으로 김운용 총재가 영어로 연설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등 많은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내용을 알아듣기도 바쁜 까닭에 그 실력을 평가할 수는 없었다.
단 지난 2월 미국에서 있었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무카스미디어>의 미국기자는 이민 1.5세대로 미국 서부의 최고명문대학 중 하나인 USC를 졸업했다(얼마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가 하면 자기 차 번호판에 USC동문이라고 새기고 다닌다. 한국에서 서울대졸업생이 이 짓거리하고 다니면 욕먹기 딱 좋은데). 이 USC 출신 기자가 우연히 김운용 전 총재와 샌버나디노 시장 일행의 만찬자리에 참석했다. 샌버나디노 시장도 스탠퍼드 대학을 나온 판사 출신으로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묻지도 않았는데 이 USC친구가 약간 흥분한 투로 떠들어댔다. “편집장님, 저 분(김운용을 가리킴) 정말 대단해요. 솔직히 이름만 들었지만 잘 몰랐는데 정말 엄청나네요. 어휘, 발음, 화법 등 영어 자체가 미국사람들보다 훨씬 나아요.” 이 녀석이 왜 ‘오버’를 하지,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며칠 뒤 샌버나디노 시장이 김운용 전 위원과 미팅을 한 후 “닥터 김은 99% 미국사람”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이 시장 참 재미있다. 김 전위원한테 스포츠와 태권도만 물은 것이 아니다. 정치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질문을 해댔고, 한국전쟁과 북한핵문제까지 물어봤다).
영어 외에도 일본어와 불어를 하는 모습도 산산수수가 인상깊게 들은 적이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현지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김운용 당시 IOC위원이 시드니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남북동시 입장 등 이슈가 많아 공항으로 나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런데 한국기자 뿐 아니라 외국기자들도 많이 모여있었다. 김운용 위원은 처음에 영어로 인터뷰했고, 그리고 일본기자들이 따로 질문하자 이번에는 일본어로, 그리고 잠깐 불어로도 뭔가를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해 한국기자들과 얘기를 나눴다(참고로 당시 시드니 현지 신문은 연일 세계 유명인사의 호주입국을 기사화했는데 한국사람은 딱 두 명이 소개됐다. 김운용과 이건희 삼성회장이었다). 예전에 크게 화제가 됐지만 김운용 전 위원은 일본 NHK의 스모 중계방송 때 특별해설을 하기도 했다.
김운용 어학의 비결
참 쉽죠~잉(1) - 적극성과 암기력
"원래 중학교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꿈도 외교관이었다. 영어는 일단 학교에서 배운 것에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외국사람이 보이면 달려가서 대화를 시도하곤 했다." 김운용 전위원은 ‘적극성’을 강조했다. 지금보다 여건이 훨씬 나빴던 해방전후의 시기였지만 노력 하나로 학창시절부터 일찌감치 영어는 전교 1등이었다.
그리고 김 전위원은 기억력이 비상하기로 유명하다. 지금도 웬만한 수치는 정확히 다 기억한다. 영어도 웬만한 것은 문장, 혹은 내용 그 자체를 외웠다고 한다. 사실 암기는 많이 하면 할수록 그 능력이 커진다. 자꾸 외우려는 습관이 중요하다.
김 전위원은 한국전쟁 발발 후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통역장교로 군에 입대했다(나중에 보병장교로 다시임관. 우리네 생각으로는 보병보다 통역이 훨씬 멋있는데, 군에서는 보병이 정통이라며 꼭 정정한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실전성’까지 더 좋아졌다. 물론 이후 두 차례 미국유학, 그리고 외교관생활로 김 전위원의 어학은 코스모폴리탄으로 손색없는 수준이 됐다.
참 쉽죠~잉(2) - 생활화된 어학학습
‘어학은 생활이다.’ 김 전위원의 소신이다. “지금도 차를 타고 이동하실 때 주로 영어라디오 방송을 많이 들으신다. 새로운 단어나 용어가 나오면 메모를 하거나, 그 자리에서 외워버린신다.” 최근 김 전위원의 기사가 소개한 내용이다. 더 놀라운 것은 “얼마전에는 갑자기 불어테이프를 갖고 와서 이동할 때 틀으라고 하시더군요. 아마 IOC 공식언어가 영어와 불어죠? 본격적으로 움직이시려는 것 아닌가요?”라는 대목이었다. 어학의 대가는 지금도 쉬지않고 어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위원은 나이 50이 넘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방한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전에는 러시아어로 대화하기 위해 잠시 러시아 회화책을 봤다고 한다.
김 전위원은 최근 인터뷰도중 한 기자가 들고온 디지털 녹음기를 보더니 비서에게 하나 구해 달라고 했다. 뭐에 쓸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고 비서가 뒤로 자빠질 뻔 했다고 한다. 지난 해 김 전위원은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는 코너를 연재했는데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래서 중앙일보 계열의 출판사가 이를 모아 곧 단행본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런데 외국의 기자와 스포츠관계자들이 영어로도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많이 해 온다고 했다. 이를 전문번역가에게 맡기려 해도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서 일일이 교정하려면 영 귀찮게 생겼다. 그래서 김 전위원은 아예 자신이 국문원고를 보면서 직접 영어로 녹취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컴퓨터세대가 아닌 까닭에 한타 및 영타를 칠 줄 모르고, 이를 직접 손으로 쓴다면 어깨가 빠질 노릇이기 때문에 ‘묘수’를 고른 것이다. 참고로 얼마전 한 기자로부터 중앙일보 연재글에 대해 “그거 김운용 총재가 직접 쓴 거 아니지? 다 기자들이 대신 써주는 거잖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의혹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산산수수가 직접 확인했다. 모두 A4용지에 직접 썼다. 오히려 지면사정 상 신문에는 1/3밖에 실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김운용 전위원의 어학실력보다 그 노력이 더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4권의 독후감

조정원 총재가 쓴 Peace in mind, Sports at Heart
끝으로 영어공부에 열심인 태권도학생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올들어 읽은 4권의 태권도관련 영어 단행본에 대한 독후감을 소개한다. 김운용 전 위원의 ‘The Greatest Olympics’과 조정원 WTF총재의 ‘Peace in mind, Sports at Heart’, 그리고 태권도사범님의 수기인 ‘Golden Bell(신재균)’과 ‘Eastern Spirit, Western Dreams(정우진)’이다. 출판된 지 가장 오래된(1999년) The Greatest Olympics(위대한 올림픽)는 88서울올림픽에 관한 내용으로 오래된 탓에 흥미도는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태권도나 스포츠 전공 학생들은 공부삼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듯싶다. 거꾸로 가장 최근에 나온 ‘Peace in mind, Sports at Heart’는 권하고 싶지 않다. 왜 이런 책을 만들었을까? 누가 이걸 돈 주고 사볼까? 화가 날 정도다. 조정원 총재가 직접 새로 썼다기보다는 그동안 영자지에 난 기사(혹은 번역기사), 연설문 등을 모아 놓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 책소개이다. 그래서 저자서문에 나오는 ‘계영배(戒盈杯)’에 대한 얘기 말고는 읽을 게 거의 없다(끝까지 읽느라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10월 총재선거를 앞두고 다분히 선거홍보용으로 제작됐다는 의심이 너무 강하게 든다. 어차피 한국사람들은 잘 읽지 않겠지만 외국사람들이 이걸 읽어볼까 좀 걱정된다. 하기야 돈봉투사건에 대한 IOC의 결정(관계자 징계,연맹 투명성 확보)을 '오히려 문제가 없는 것으로 IOC가 결정한 것'이라고 특별하게 독해하는 WTF이니 할 말이 없다.
두 권의 수기(자서전)는 개인의 일대기를 다룬 까닭에 소설적 '읽는 재미'가 있다. 청춘을 바쳐 해외로 나간 태권도를 알린 두 사범의 생생한 체험이 사실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담겨있다. 특히 Golden Bell(개나리꽃)은 아주 수작이다. 홍콩, 네팔, 부탄, 미국으로 이어지는 태권도 사범의 해외도전사가 아주 흥미롭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미국 태권도사범 초창기의 애환이 그대로 담긴 Eastern Spirit, Western Dreams(동양의 정신, 서구의 꿈)도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국문판에 비해 영문판의 분량이 확 압축된 까닭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유병철 편집장 / einer@mookas.com]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