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山山水水]Y교수와 프로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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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번째 이야기 - '환골탈퇴'라고 쓰는 태권도 교수님
Y교수님, 요즘 후회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좀 더 젊었을 때, 석사나 박사 과정의 공부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워낙 독서를 좋아하고, 또 사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 큰 흥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뭐 말할 것도 없이 제 개인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 학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언론계에서 직업을 구하기 전 한 대학선배로부터 ‘한국사회에서 가장 썩은 분야가 언론계와 학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학부를 마칠 당시 첫 목표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기자’가 되는 것이었으니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주제넘게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학력 인플레이션’이 우리 태권도계는 더 심한 것 같아 한마디 하고픈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합니다. 예컨대 대학진학률이 무려 80%에 달하죠. 윗세대에서 학사모는 곧 지식인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평균치’가 아닐까요. 여기에 석사와 박사도 넘쳐납니다. 이렇다보니 석사, 박사 타이틀에 대한 존경심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체육학과와 무도학과를 넘어 ‘태권도학과’를 별도로 갖고 있는 태권도계에서도 꼭 대학교수가 아니더라도 석박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대학강단을 넘어 태권도미디어나 각종 학회와 세미나에서 근사한 명함을 갖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분들 중 솔직히 자질이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의 한 유명 대학교수님은 ‘환골탈태’를 ‘환골탈퇴’라고 쓰셨더군요. 이건 단순한 오타가 아닙니다. 중학교 수준의 사자성어를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 내용 자체가 깊이가 없고, 일선지도자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한 번 더 보게 만들고, 심지어 읽는 이가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 태권도계의 유력 지도자가 외국에서 받은 박사논문이 문제가 돼 대학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으니 말 다했죠. 더 나쁜 것은 이런 자신들의 과오를 잘 모르는 ‘교수님’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학자, Y교수님에 대한 불만-하나

한 대학의 강의 모습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출처 = 다음카페)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는 김윤식 교수(국어국문학)에 대해 한때 석박사 과정에 있는 후학들이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답니다. “한국말의 '읽다'와 ‘쓰다’라는 단어에 주어가 있다. 바로 김윤식이다”라고요.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읽고 쓰셨으면 젊은 학생들이 이런 농담을 했을까요.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태권도계에 정말 큰 학자가 나왔으면 합니다. 후학들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죠.
Y교수님은 태권도계에서 정말 유능한 교수라고 생각합니다. 학문 영역에 대한 평가는 제가 감히 입에 올릴 처지가 못 됩니다. 단 그런 평판을 많이 들었고 또 개인적으로 관련 책과 논문을 읽어본 적이 있어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Y교수님은 2003년부터는 태권도 행정가로 더 유명하십니다. 그 유명한 2001년 용인대와 경희대가 중심이 된 개혁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끄셨고, 그 힘으로 현재 한국태권도계를 이끄는 자리에 오르셨으니까요. 저는 태권도를 떠나 유능한 학자가 행정부 등 현실로 뛰어들어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에 대해 조금도 반대하지 않습니다(지난 대통령선거 이후로 ‘폴리페서’라는 말이 정치지향적 대학교수들에게 조롱적인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저는 오히려 유능한 학자가 현실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좋은 선례를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Y교수님에게 따지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왜 자리에 연연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입니다. 교수님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3명의 회장을 차례로 모셨습니다. 뭐 대단한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 분은 정치적으로도 각기 정당이 다른 분이었습니다. 당연히 정치철학이 달랐고, 태권도에 대한 철학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도 Y교수님은 계속 실세로 남아있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지난 해 전임회장이 관두고 3번째 ‘주군’을 모시는 과정에서 Y교수님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정반대편의 사람이 새 회장으로 왔는데 Y교수님은 사표를 먼저 내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표를 먼저 냈는데 새 회장이 ‘당신 꼭 필요하니 수리하지 않겠다’라고 했다면 그나마 모양이라도 좋았겠죠.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Y교수님이 스스로 사석에서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얘기한 것처럼 잘못된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그런 건 먹고 살기 바쁜 범인(凡人)들이나 하는 것이지 Y교수님처럼 존경받는 학자가 할 일은 못 됩니다.
이 대목에서 여담으로 한 말씀 더 해야겠습니다. 한 젊은 태권도 사업가가 Y교수님을 만나고 온 후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아주 쉽게 ‘말을 놓으셨다고’요. 그 회사의 더 높은 사람과 친분이 있어서 그러신 것입니까? 아니면 현재 위치가 그 정도 반말은 해도 전혀 상관없기 때문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만-둘, 프로태권도라고요?

두 번째는 바로 ‘프로태권도’에 관한 일입니다. 첫 번째 문제제기, 즉 ‘왜 자리에 연연하느냐’라고 물으면 Y교수님은 평생의 소원인 프로태권도를 임기 중에 꼭 실현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단 상식적으로 대한민국 태권도의 실무총책임자라는 자리는 개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꿈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여건이 형성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직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실세 정치인이나, 혹은 자리의 위용을 바탕으로 돈을 끌여들여 만들어낸 프로태권도는 성공할 수도 없고, 그 생명력이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제발 20억원(Y교수님이 이것만 있으면 프로태권도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금액)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20억원 돈 들여서 대회 한번 잘 치렀다고 태권도의 프로화가 성공하는 것입니까? 그게 태권도가 살 길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꼭 Y교수님의 임기 중에 실현되야 합니까? 나머지 사정이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한 경기종목의 프로화는 몇몇 사람이 잘 기획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 앞에는 고교야구 황금기가 있었고, 1983년에 닻을 올린 프로축구도 깊은 뿌리와 넓은 저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 시작한 프로농구도 농구대잔치의 폭발적인 인기를 그 발판으로 삼고 있죠. 이런 물적 토대 없이 시작한 ‘프로’는 아무리 좋은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Y교수님과 비슷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큰돈을 모아 프로대회를 한번 열었던 미국의 한 사범님은 흥행이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살까지 한 것으로 압니다. 제발이지 프로태권도를 위해 이 자리에 계속 있겠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쉽게 속을 정도로 세상 사람들이 다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저 현재 Y교수님의 자리가 막강하니까 구태여 반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냥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할 일이 남은 것 같다. 좀 더 하고 싶다’고 얘기하십시오.
가뜩이나 WTF가 멕시코에서 프로태권도대회를 연다하고 해서 말이 많은데 그럼 이건 Y교수님의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까?(자리에 연연할 이유가 사라졌군요) WTF의 프로태권도도 그 취지와 성공가능성, 그리고 현재 준비과정을 보면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태권도의 올림픽퇴출 위기가 나오는 2009년 현재 태권도의 프로화에 찬동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 정력이 있으면 보다 재미있고 공정한 경기, 그리고 잡음없는 해당단체의 운영에 더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태권도교수님이 돼 주십시오
한국전쟁 때 통역장교를 하기도 한 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은 원래 모교인 연세대 교수로 가기로 했지만 실력자인 재단이사장(박정희 대통령의 군선배인 김석원 장군)의 부탁으로 그냥 눌러앉았습니다. 그 바쁜 입시전쟁 때도 수업시작 5분여를 할애해 시험에 안 나오는 동서양의 문학을 저희에게 소개시켜줬습니다. 고교졸업 후 몇 년이 지나자 이 분이 정년퇴임을 하고 학원에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입시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줄 알았습니다. 워낙 실력이 좋으셨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불어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60대 중반의 노인이 말입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불어를 잘 하는 게 꿈이었다. 나는 내 입에서 불어발음이 나오는 것이 참 즐겁다”고 했습니다. 제가 명문대학에서 만났던 많은 교수님보다 이 분이 더 진짜 학자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카스>의 제 후배 기자들에게 공부하라고 주문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석사과정를 마쳤거나, 현재 진행중이죠. 흐뭇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방끈만 늘리지는 말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책 한권 정도는 스스로 찾아서 읽고, 신문도 많이 보고,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아주 ‘강권’을 합니다. 좋은 기자가 되는 것보다 좋은 학자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입니다. 저도 늦었지만 올해 안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부디 앞으로 Y교수님이 훌륭한 현장경험도 갖춘 태권도계 최고의 교수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유병철 편집장 /einer@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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