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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병영일기 (6)


군에 오기 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쫄병생활이라는게 이렇게까지 고될줄은 자대배치 받고난 다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봉지라면의 추억

자대는 신병교육대보단 부식 보급이 원활한 편이지만 한달을 기준으로 보급 수요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간식거리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더욱이 철책선에 근접해 있는 원인과 낙후된 부대환경 탓에 그 흔한 px(영내매점)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아 그 갈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그래서 모처럼만에 건빵과 맛스타(군인공제회에서 생산하는 군대쥬스)의 보급이 있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뜨곤 했었다. 그 누가 알겠는가, 그 누가 경험해봤으랴? 취침나팔 고요 속에 울려퍼지고 귀뚜라미 울음소리 은은한 군대의 깊은 밤, 내무반의 정적을 깨는 모포 속의 군인쥐들이 내는 건빵 갉아먹는 소리들을.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한숨 섞인 웃음만 나올 뿐이다. 후에 중대원들이 간곡한 소원 수리의 결과로 그나마 간이 px가 생기긴 했지만 한창 나이의 혈기왕성한 120여 중대원들을 만족시켜줄 만큼 수량은 그리 충분치가 못했다.

그래도 우리를 감동시키고 즐겁게 해주는건 휴가복귀자가 사들고 오는 라면박스이다. 보통 사온 사람과 고참들은 서너개씩 챙기고 짠밥이 안되는 후임병들은 딸랑 한개가 그들의 몫이 된다.

딸랑 한개라도 금이야 옥이야 해대며 애지중지하게 관물대 깊숙한 곳에 짱박아 둔다(하도 깊이 숨겨놔 잊고 지내다 자기도 모르게 라면 한개를 발견하곤 그렇게 기뻐할수가 없다).

어쩌다 짱박아둔 라면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은면 비참함과 허탈함이 교차하고 그 분노와 설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라면들을 보았지만 군대에서의 짜파게티의 인기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필자는 짜파게티 하나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를 겪기도 했다. 언제였던가, 나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복귀해서 아끼느라 먹지도 않고 간직해 오던 짜파게티를 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취사장으로 향했다.

먼저와서 봉지라면을 만들어 놓고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고참들이 나의 손에 쥐어진 짜파게티를 본다면 그 부러움의 눈길을 외면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바로 그때 아니나 다를까 갈굼의 황제, 갈굼박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는 고참 한명이 나에게 두마디도 아니다, 딱 한마디만으로도 나를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바꿔 먹자"란 말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올 지는 꿈엔들 누가 알았겠는가!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야 겠다는 생각만 앞설뿐 할말을 잃고 저기, 저만을 연신 반복하며 멍하니 서서 짜파게티만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후 침묵이 가시고 그 고참의 두 마디도 아닌 딱 한마디 "됐어" 한마디로 엽기 그 자체였다. 생각해 보면 별말도 아닌데 군대에선 이렇게까지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쳐박아 놀수 있을 만큼 의미심장한 말이다.

후에 내가 실수를 한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때는 이미늦어 버렸다. 나는 이제부터 환상적인 갈굼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 고참은 지금 생각해봐도 성격이 아주 재래식 변소와 쓰레기 매립장 같아서 군대의 특성중 희귀함을 실감할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취사장을 빠져 나오기까지 갈굼박의 갈굼은 끊이질 않았다. "혼자 먹으니까 xx맛있겄다, 다 쳐먹고 뒈져라", 개념이 어쩌고 저쩌고 고참이 뻘이고 뭐고 하도 떠들어 대는 탓에 라면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채 익지도 않은 짜파게티를 먹느라 죽을 고생을 다했다.

짜파게티를 다 먹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취사장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나는 취사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감당해야할 갈굼들을 생각하며 내무반으로 향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짜파게티를 먹었다는 사실에 흐믓해 하며 아까 먹은 짜파게티의 맛을 뒤늦게 음미하면서 피곤한 몸을 침낭 속에 내맡겼다.

빗나간 애정

자대배치 받고 나서 처음으로 받는 태권도 교육이었다. 하지만 무단자 위주로만 교육하기 때문에 이미 멋있는 유단자가 되어버린 나는 실질적으로 교육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군대에선 아무리 열외가 장땡이라지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태권도도 못하는데 열 열외가 부럽겠는가?! 나도 진정 짠밥의 의미를 알게된 것일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열외자는 따로 모아서 밀린 작업을 시키는 것이었다. 짜증의 강도는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어느샌가 나의 입은 불만섞인 투정을 마구 중얼대고 있었다. 심지어는 숫자로된 욕까지도 나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 나오고 있어 나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태권도를 좋아한다지만 이토록 과격할만치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 자신의 태권도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단하고 하고는 싶었지만 애써 아쉬운 마음을 접기로 했다.

말이 태권도 교육이지 군 태권도는 얼차려 반 태권도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운 겨울날 도복 한장과 맨발로 연병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위병소 선착순에,정권단련 등 혹한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간혹 사제(사회)단증을 병사들간에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무단으로 입대한 병사들이 군에서 나름대로 힘들게 취득했다고 생각해 부리는 다소 이기적인 횡포로 일종의 보상심리 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사회에서 단증을 취득하고 가는 것이 신상에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불타오르는 욕구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작업병들중 최고참격인 한 상병이 나에게 품새와 발차기 등 이것저것을 시켜보았다.

또 한차례 태권도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태권도 특유의 거침없고 날렵한 기본발차기와 화려하고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공중발차기 등을 선보였다.

전투화를 신어 맨발로 찰 때와는 다르게 민첩성과 날렵함이 감소해 다소 둔감해 보였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 다음 고려품새를 청해왔다(군에서 느낀거지만 군인들은 고려품새를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좋아한다. 아니면 고려품새밖에 모른다던가^^).

나는 태극1장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고려품새를 군 태권도의 특성을 살려 멋드러지게 해보였다. 시연을 마친 후 고참들은 매우 흡족해 하며 나에게 마루치란 애칭을 선물했다.

난 개인적으로 태권V란 애칭이 마음에 들었지만 태권V는 이미 중대 태권도 조교의 애칭이 되어 있었다. 아직은 군대란 곳과 군 태권도 전부를 알수는 없지만 군 태권도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태권도는 나의 군생활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내 또 하나의 전우이다.

댓글 8

아아 2001.01.18
고생했네요...... 저도,, 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이 주마등처럼 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특히,, 갈굼의 왕,,, 그런 놈들은 꼭 하나씩은 있나봅니다. 그럼,,이만,, 좋은 글 부탁드려요
상하 2001.01.21
모홀홀홀 ~~ 잼있네염. ㅋㅋㅋ 난 아직 군대에 가진 않았지만... 에잇 봉지 라면이나 해먹어야 겠당
새리 2001.01.23
정말 재밌어염 앞으로도 계속 봐야쥐~어빠 나 왔었당
아루치 2001.01.24
짜파게티 한상자 배달해 드릴께요
류한 2001.01.30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 부산 유성체육관 다니는 수련생인데요.. 태권도가 넘 좋아요..... 님은 언제부터 태권도 하셨어여?
정상교 2001.02.05
다음회가 다소 늦어 지는군요,... 되도록이면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병영일기 1회~5회까지는 좌측 기자클럽에 들어가 보시면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합니다...
백곰 2001.02.21
아직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어자피 가게되는 상황에서 군대...정상교님의 글을 읽으니...왠지 군대 가면 엄청나게 얻어 맞을꺼 같은 생각이 팍팍팍! 옵니다...ㅡㅡ;; 읽으면서 지금은 웃고있지만 언젠가 내가 처할 상황 푸핫핫핫! 난 할수 있소! 정상교님 화이팅!! 빠샤! 빠샤!(공력으로 기를 불어 넣고있음)
홍성호 2001.09.11
과연 군대는 어떤곳일까!!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