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의 2009년]상상하기 싫은 국기원의 미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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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기원의 모습

장면1.
2013년 들어 국기원이 어수선하다.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연말에 있을 18대 대통령선거 때문이다. 이전 같으면 술안주 삼아 나눌 이야기지만,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특수법인으로 전환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국기원의 수장이 바뀌고 그에 따른 인사태풍이 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정부 및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우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준 정부기관인 국기원은 대선 때마다 이런 상황을 되풀이해야 할 듯하다.
장면2.
대통령선거 캠프에 태권도 원로지도자들이 보인다. OO관의 대표는 유세장에 도복을 입고 A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태권도의 어른인 OOO사범은 B후보의 캠프로 출퇴근한 지 오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의 목적이 국기원 입성이라는 것은 태권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당연히 태권도인들도 대통령선거의 축소판처럼 이전투구가 심하다. 이제는 정권 실세의 도움 없이는 국기원 요직에 앉는 일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치력에서 떨어지는 한 태권도원로는 "앞으로 5년 동안 미리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노골적인 발언을 하기도 해 구설에 올랐다.
장면3.
이제 해외에서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는 나라는 손에 꼽는다. 대부분 자체단증을 발급한다. 이는 해외 태권도인들이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국기원을 두고 세계태권도본부가 아닌 한국정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낼 바에는 자신들의 국가에 돈을 내겠다는 것이다. 과거 국기원이 가지는 상징성과 태권도에 대한 의리 때문에 비용을 더 지불하면서도 국기원 단증을 신청했던 한인 사범들도 이제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위의 장면은 가상 시나리오다. 하지만 국기원의 특수법인 추진이 마무리돼 문체부 산하 단체가 되면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들이다.
'태권도인의 국기원'이 아닌, '정부의 국기원'

지난해 6월,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됐다. 태권도공원 건립을 위해 출범한 태권도진흥재단은 쾌재를 부르며, 특수법인으로 전환을 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운영이 힘든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기원의 특수법인 전환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재단법인 국기원은 매년 90억 가까운 예산을 자체적으로 확보해 운영하는 태권도인들의 민간단체다. 이는 재정적으로 한국정부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국기원이 기를 쓰고 문체부 밑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국기원 측은 겉으로는 “국기원이 향후 추진할 사업 등의 규모를 키우고 산업적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민간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 국기원 직원 혹은 임원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정부 밑에 들어가 사업을 해야만 규모 커지고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인가. 잘 굴러가던 민간단체를 정부에 헌납하는 이유 치고는 궁색하다. 차라리 “국기원 내부의 문제를 태권도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정부가 나서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또한 태권도인들이 누워서 침 뱉기일 뿐이다.
국기원이 특수법인을 추진한 진짜 이유는 정치적인 압박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정치권력의 의중이 담긴 ‘닥터 김 죽이기’ 즉 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을 끌어내리기를 진행한다. 김 전위원장은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은 물론 IOC 위원에서도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난다. 노무현 정부는 김운용을 끌어내리고 본격적으로 태권도계(혹은 체육계) 장악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적인 무도스포츠로 자리 잡은 태권도와 '표'와 큰 관계가 있는 체육계가 탐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노무현의 '선배' 김정길 씨는 대한태권도협회(KTA) 회장으로, 정권 실세의 낙점을 받은 조정원 씨는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로 안착(?)했다. KTA는 마침 회장 선거 부정(구천서 회장) 등의 문제가 불거져 정부의 개입이 수월했다. 국제기구였던 WTF는 다소 무리수가 있었지만, 몇몇 WTF 중역들이 당시 정권의 밀어붙이기에 동조하며 '접수'는 거뜬히 이뤄졌다.
하지만 국기원이 문제였다. 국기원을 뒤짚어놓으며 온갖 조사를 벌였지만 김운용 시절 2인자였던 엄운규 원장은 수십차례 검찰에 불려가면서도 국기원을 사수했다. 노무현 정권은 고심 끝에 추진 중인 태권도특별법을 들고 나왔다. 민법상의 재단법인인 국기원을 특별법에 의한 법인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엄운규 원장은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정권의 실세가 국기원의 특수법인 전환을 유도했다”고 증언했다. 정부가 나서 국기원을 압박한 것이다. 이렇게 국기원은 급속도로 특수법인화의 과정에 들어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정권을 향후 10년은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찼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김정길 대한태권도협회장 겸 대한체육회장은 새 정권의 으름장에 그냥 사표를 내던졌다. 이명박 정부는 사회 곳곳에서 구정권의 물을 뺐다. 하지만 국기원은 전 정권이 만들어 놓은 그대로를 계승하는 모양새다. 연 예산 90억짜리 민간단체이자 전세계 태권도인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국기원만큼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제대로 승계하는 셈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현실적으로 국기원이 문체부 산하로 들어가면 한국정부의 몫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사장과 원장은 물론이고, 감사와 이사 선임에도 문체부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 국기원 임직원들은 “문체부 소속의 다른 단체와 국기원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다. 정부가 인사 및 회계 감사, 그리고 각종 사업에 대한 전권을 쥐도록 만들어놓고,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가상의 2013년 국기원의 모습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2009년 국기원은 그래서 우울하다.
기획연재 [국기원의 2009년] 업로드 일정
1. 상상하기 싫은 국기원의 미래상- 3일
2. 구타(특수법인)유발자들 - 5일
3. 정부의 특별법이 아닌 태권도인의 특별법이 필요하다 - 6일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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