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바의 전설을 향한 투쟁

격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레이시유술과 힉슨 그레이시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한때 객관적인 평가에서 세계최강의 격투기, 체중차를 극복하는 격투기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그레이시 유술.
그레이시유술 7단이며 450전 전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가진 현대 격투계의 전설 힉슨 그레이시. 제왕 힉슨 그레이시가 이끄는 그레이시 일족의 투쟁은 이미 세계 격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1999년 11월 21일은 일본 격투계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1951년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가 엘리오 그레이시의 팔을 부러뜨린 후 48년간 지속된 대 그레이시전 연패의 수모 그 수모를 1999년 11월 21일 일본의 메이저급 이종격투전 프라이드(PRIDE) 제8전에서 일본 프로레슬링의 구세주라는 사쿠라바 카즈시가 호일러 그레이시를 제압함으로써 48년 수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쿠라바를 가리켜 그레이시 헌터(The Gracie Hunter)라고 부른다. 1999년 호일러 그레이시전을 시작으로 2000년 호이스 그레이시전, 헨조 그레이시전, 하이언 그레이시전을 연거푸 승리 대 그레이시전 4연승의 업적을 이룩하며 얻은 닉네임이다.
일본격투계 48년만의 비원 성취라는 평을 들었던 호일러 그레이시전. 그리고 경기가 아닌 투쟁이라고 표현되는 호이스 그레이시전. 특히 프라이드(PRIDE) 9전에서 벌어졌던 호이스 그레이시전은 말 그대로 투쟁이었다.
무제한 라운드의 녹다운전으로 시작된 호이스 그레이시전. 6라운드.. 무려 한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호이스측의 타올투입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각본없이 치뤄진 한시간의 대접전. 승자도 패자도 모두 위대해 보이는 경기였다.

대 그레이시전 4연승을 이룩한 사쿠라바는 현재 제왕 힉슨 그레이시에게 도전장을 던진 상태이다. 그레이시 헌팅의 4번째 제물이었던 하이언 그레이시가 재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세계 격투계는 모두 힉슨 대 사쿠라바 전의 성사에 주목하고 있다.
사쿠라바 카즈시. 1969년생. 학창시절 농구와 아마레슬링을 배웠고 1993년 프로레슬링에 데뷔. 후에 일본의 메이저급 이종격투전 프라이드(PRIDE)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대 그레이시전 4연승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만약 사쿠라바가 일본인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그레이시에게 집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인 마에다 미쯔요에게 유술을 배운 카를로스 그레이시와 그의 형제들에 의해 시작된 그레이시유술. 그러한 그레이시유술에게 48년간 단 한번의 승리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일본 격투계와 일본 격투가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동기를 가진 상황하에서 전 국민이 격투기에 열광하는 일본의 격투문화는 사쿠라바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쪽 끝 오키나와에서부터 북쪽 끝 호카이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날아온 열성팬들. 격투가들을 진짜 영웅으로 대접해 주는 일본의 격투문화. 선수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일본 격투계의 풍토. 이러한 것들이 맞물려 사쿠라바와 같은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2001년 세계 격투계의 최대 관심사는 힉슨 대 사쿠라바 전의 성사여부다. 그 어떠한 사건도 전설을 향한 투쟁을 막아설 순 없을 것이다. 마크 커도 이골 보브채틴도 나름대로 최강이라 불리는 파이터들도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최강이라 불리는 파이터들이 탄생하고 승리하고 패배하고 사라져가는 세계격투계. 그러한 가운데 홀로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힉슨 그레이시. 과연 힉슨의 신화가 계속 될 것인가 아니면 사쿠라바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릴 것인가.
안이한 국내의 사정에서 벗어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세계의 격투계가 얼마나 강해져 있으며 세계의 격투가들이 얼마나 진화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 과연 세계 격투계에 우뚝 설 한국의 격투가가 나오는 날은 언제쯤이 될까.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