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격투기변천사]격투기의 모체 실전프로레슬링

[격투기변천사]격투기의 모체 실전프로레슬링

결국 프로레슬링에서 벗어나지 못해 몰락


일본 종합격투기의 시작은 프로레슬링에서 비롯됐다. 현재 활동 중인 슈토, 판크라스, 링스 그리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라이드까지 모두 프로레슬링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프로레슬링은 역도산에 의해 시작됐다. ‘외국인선수를 가라테로 물리친다’라는 단순한 발상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은 것이다. 역도산의 사망이후 프로레슬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선수들은 점점 실전을 지향했다. 결국 종합격투기가 생겼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무카스>의 기획연재 ‘격투기변천사’ 2화는 일본종합격투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실전프로레슬링의 역사다. -편집자 주-

1. 옛날로 회귀하는 격투기 - 2월13일
2. 격투기의 모체 실전프로레슬링 - 2월20일
3. 각종 격투기 대회의 등장(가제) - 2월27일 예정
4. 격투기 붐과 프라이드의 몰락(가제) - 3월6일 예정
5. 일본과 미국의 격투기 시장(가제) - 3월13일 예정

UWF관련 사진들(안토니오 이노끼와 다카다 노부히코


실전프로레슬링의 시작은 안토니오 이노키로부터 시작됐다. 이노키는 역도산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존의 프로레슬링으로는 더 이상 외국인선수를 쓰러뜨릴 수 없다’며 신일본프로레슬링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전일본프로레스의 독점체제였다. 이런 까닭에 이노키는 타 단체와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노키는 유도 금메달리스트 윌리엄 루스카, 복싱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등과 대결했다. 이색적인 대결은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런 이노키의 노력 덕에 신일본프로레스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런 와중에 이노키는 1984년에 UWF(Universal Pro-Wrestling Federation)를 창설했다. 모든 수입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방송사가 경영권까지 넘본다는 판단에서다. 일종의 보험이었다. UWF에는 프라이드의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했던 다카다 노부히코와 초대 타이거마스크이자 슈토의 창시자 사야마 사토루 등 많은 스타들이 옮겨갔다. 또 후지TV의 후원까지 약속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노키는 첫 대회개최를 앞두고 UWF에서 발을 빼버렸다. 후지TV 또한 당시 ‘최고의 스타’ 이노키가 없는 대회는 방송하지 않겠다며 돌아섰다. 결국 UWF는 신일본프로레스에 흡수되고 말았다.

두 단체의 결합으로 보이지 않는 대립이 생겨났다. 실전을 추구하는 UWF와 전통을 중시하는 신일본프로레스의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사건은 1987년에 일어났다. 경기 도중 UWF의 마에다 아키라가 신일본프로레스의 선수를 등뒤에서 발로 안면을 가격한 것이다. 이 일로 마에다는 신일본프로레스에서 해고당했다. 얼마 후 UWF선수들도 신일본프로레스의 전통성과 서열관계를 비판하며 탈퇴를 선언했다. 신일본프로레스에서 벗어난 이들은 1988년 종합격투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신UWF를 창설하게 된다.

신UWF는 프로레슬링의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로프반동, 장외난투, 태그매치, 반칙사용 등을 금지했다. 신UWF의 선수들이 실전과 가까운 프로레슬링을 지향한 까닭이었다. 일본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1988년 5월에 개최한 신UWF의 첫 대회는 10분만에 모든 표가 매진됐다. 이어 11월 도쿄에서 열린 대회는 6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또 최근에 볼 수 있는 등장 퍼포먼스와 레이져쇼 등을 최초로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전성기를 맞이한 이들의 몰락은 내부에서 일어났다. 주최사와 선수간의 금전적인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주최사는 내부사정에 항의한 한 선수를 해고해 버렸다. 이를 보고 모든 선수들이 단체로 이의를 제기했다. 주최사는 항의한 모든 선수를 해고해 버리며 신UWF는 균열이 생기며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후 해고당한 선수들은 UFC인터내셔날, 킹덤, 링스, 슈토, 판크라스, 프라이드 등 많은 격투기 단체를 창설하게 된다.

당시 UWF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전과 같은 프로레슬링을 펼쳤지만 ‘쇼’적인 요소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또한 프로레슬링의 확실한 서열관계는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잠재적인 역할을 했고, ‘발리 투토 400연승의 신화’ 힉슨 그레이시가 마침 등장했다. 일본선수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자국선수를 좋아하는 일본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었다. 결국 UWF는 1995년 기억속으로 사라졌다.

UWF 최고의 라이벌은 사쿠라바 카즈시와 타무라 키요시였다. 지난 해 K-1 다이너마이트에서는 두 선수의 경기가 성사됐고 최고의 갈채를 받았다. 이는 자국 선수의 선전을 바라는 일본팬들의 가슴에는 아직 UWF가 남아있는 듯하다.

(사진출처 : 네이버 포토야, 네이버 블로그)

[김성량 수습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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