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칼럼] 태권도경기문화, 그 빛과 그림자
태권도대회 명칭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WTF(세계태권도연맹)에서 주최하고 있는 두 개의 태권도 대회가 있는 데 하나는 겨루기 종목이고 다른 하나는 품새 종목이다. 앞의 것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라 칭하고 뒤의 것은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라 일컫는다.경기 종목으로서 겨루기가 먼저였고 뒤늦게 품새 종목이 경기화 되다보니 명칭이 그렇게 된 탓일 듯하다. 태권도 인(人)들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갈 성질이 아니다. 다음의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듯싶다.
지난 2008년 12월 20일 조선일보 스포츠 면에 “한국 세계품새선수권 우승” 제하 “한국이 19일(한국시각) 터키 앙카라에서 막을 내린 제3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금 8개, 은 1개, 동 1개를 획득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이하 생략).”라는 기사를 보고 국민들이 ‘품새’대회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먼저 WTF는 처음에 품새 종목의 대회 명칭을 두고 고심했던 듯하다. 즉 ‘품새태권도’와 ‘태권도품새’를 놓고 결국 뒤의 명칭을 택한 듯하다. 하지만 ‘태권도대회’와 ‘태권도품새대회’라는 명칭은 바른 이름이 될 수 없다. 겨루기 종목을 지칭하는 태권도대회는 겨루기라는 태권도의 한 종목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펜싱 레슬링 등의 스포츠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펜싱 종목은 크게 에페, 플뢰레, 사브르로 구분되고 검의 찌르기와 베기. 공격 범위 등이 다르다. 레슬링 종목의 경우는 그레고로만형과 자유형으로 구분되고 있다. 어디에도 태권도 명칭을 닮고 있지 않다.
태권도 종목은 현재 겨루기와 품새로 구분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바른 인식을 위해 분류에 따른 올바른 대회명칭으로 고쳐져야 하고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사안이다. 대회 명칭의 경우, 제x회 세계태권도(겨루기)선수권대회 또는 제x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로 호칭하는 것이 올바르다.
대회 명칭이 대외적이라면 대내적 상황은 어떨까. 우선은 선수의 기본이랄 수 있는 준비서기에 대한 자세(이하 겨룸새)가 규정돼 있지 않다. 경기 진행의 절차에서 주심의 “준비”, “시작”에 따라 경기를 개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작 “준비”자세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겨룸새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더 나아가 경기규칙 가운데 경기장에 관한 규칙도 문제가 좀 있다. 경기장 위치 표시가 그것이다. 그 중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주심과 선수 위치의 표시다. 2008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도 그랬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태권도경기 모습
경기규칙에서 주심위치의 경우, 경기장 중심으로부터 제3한계선으로 향해 후방으로 1.5m 떨어진 곳에 정한다. 선수위치는 경기장 중심점에서 좌, 우 각 1m 떨어진 곳에 제1한계선으로부터 5m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된다. 그 위치 표시가 매트의 색깔을 달리하며 선이 아닌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일차적 책임은 기술대표(TD: Technical Delegate)에게 있다. 경기규정을 엄수(嚴守)하지 않고 TD마저 사전에 감독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그 경기문화의 수준은 단번에 덜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대표자회의 시 특히 중요한 규칙들이 반드시 공지돼야 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경기규칙 엄수는 필수적이다. 특히 태권도경기는 득점에 영향 미치는 타격 강도(强度)에 아직도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강하게(Powerfully)' 라는 규정적 의미는 일반호구 사용 시 “상대가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때”라는 것이다.
득점 기준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네 부심 중 세 부심이 동시 인정 시 득점인정제도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경험한 바 있다. 경기가 중단되고 판정에 불복, 소청 제기는 당연하다 할 것이나 규칙을 어겨가며 판정번복을 했으니, 더 이상 선수에게 페어플레이정신을 강요한다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심판으로 눈을 돌려보자. WTF 국제심판의 현황은 적어도 3천 명에 이를 듯하다. 지난 2008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심판은 모두 29명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의 경우 많아야 60명 내외 정도가 선임된다. 엘리트 심판은 어느 정도의 숫자를 함의하는 것일까. 심판교육에서부터 관리, 보수교육을 통한 도덕적인, 양질의 심판선정은 요원한 것일까.
지그문트 롤랜드 교수(노르웨이대학)는 스포츠의 도덕적 가치와 목적은 ‘결과의 불확실성에 대한 달콤한 긴장’이라고 한다. 불확실성과 긴장은 스포츠정신에 따른 페어플레이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확실성을 지향하는 정정당당한 승부만이 환희와 감동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스포츠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태권도는 심판폭행이라는 올림픽 초유의 사태로 한 차례 쓴 맛을 본적이 있다.
태권도경기문화가 성숙해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심판의 일관성 있는 판정 즉, 경기규칙의 적용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말할 것도 없다. 더 공격적인 경기가 되면서 선수의 안전이 배려돼야 하고, 심판의 경기운영 수준과 판정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들이 추구하는 재미있는 태권도경기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선결의 최우선은 경기규칙의 합리성과 과학화된 기준 마련이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교육은 한시적이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 못지않게 교육커리큘럼도 세계 수준급이어야 하고 교육의 목표는 심판에게 ‘전문성’과 특히 ‘도덕적 품성’을 함양할 수 있게 좁혀져야 한다.
[담당자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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