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시 유술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혼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가 성행하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가장 최소의 규칙만으로 실전을 추구하는 근대 무술(武術)인 그레이시 유술이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말 그대로 유술(柔術)이기에 보통 유도(柔道)가 금기시하는 모든 기술을 다 활용하고 있다. 물론 아직 유도에서도 호신술의 한 방편으로 급소찌르기와 같은 것을 교본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유술(Jiu-Jitsu)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격투기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 뿌리도 어떤 하나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사기에 씨름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일본서기에 원시적 형태의 스모 혹은 유술에 관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각저라 하여 3~5세기 경부터 현재의 씨름과 유사한 형태의 유술이 존재했었다.
그레이시 유술은 그레이시 가문(家門)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 태두를 카를로스 그레이시(Carlos Gracie)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독자적으로 창조한 것은 아니며 일본인 유술가인 미쯔이 마에다 코마에게 사사받은 것이었다.
마에다는 전세계를 돌면서 나름의 유술을 확장시켰는데 이후 브라질의 일본인 정착촌에 거주하며 카를로스 그레이시에게 유술을 가르쳤다. 이후 카를로스는 거리의 싸움(street fighting)을 통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기술을 단련시켰으며 상대의 키, 체중, 격투스타일은 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135 파운드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 한번도 지지 않아 브라질 유술의 전설이 되었다. 물론 노룰(no rules)을 지향하는 이러한 전통은 그의 스승(미쯔이 마에다 코마)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그레이시 유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카를로스 그레이시는 그의 4명의 동생(Oswaldo, Gast, Jorge, 그리고 Helio) 과 아들들(Carlson and Carley등)에게 유술을 가르쳤으며 그들은 그의 형제와 아들들에게 가르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카를로스에게는 21명의 자식이 있었으며 헬리오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현재의 그레이시 가문이라는 일가(一家)의 선조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그레이시 유술을 확장시켜 나갔다.
현대의 그레이시 유술가로는 호이시와 힉슨 그레이시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UFC, PRIDE, 발리투드 등 각종 혼합 격투기 시합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그레이시 유술의 위상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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