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국기원, 서태협, 문체부 그리고 엄운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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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원과 서태협의 충돌사태를 바라보며
“흉물스러운 태권도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 말미에 한 중앙방송사 기자가 공개적으로 뱉은 말이다. 국기원이 방송을 탔다. 제대로 탔다. 국기원은 19일 오전 11시 제2강의실에서 ‘국기원 정상화를 위한 성명서 발표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시태권도협회(이하 서태협)와 시작 전부터 과격하게 충돌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정도가 심했다. 이날 서태협은 작정하고 덤벼들었다. 이를 국기원 임직원이 참지 못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선후배도 없었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크다.
각 방송사와 신문사는 이 장면을 고스란히 보도했다. 그리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 국기원이 등장했다. ‘아수라장, 국기원 기자회견’이란 제목으로 말이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태권도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국기원과 서태협뿐 아니라 전체 태권도인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선 지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태권도인들을 보고 과연 어떤 학부모가 내 자식을 믿고 맡기겠는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한쪽으로만 몰고 갈수는 없다. 하지만 ‘막가파’ 서태협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났다. 이날 물 만난 고기처럼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서태협의 한 관계자는 “국기원 때문에 도장이 죽고 있다. 도장이 없으면 국기원도 없다”며 핏대를 세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서태협의 행동이 과연 일선 도장을 살리기 위한 행동인지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우리 사람을 원장으로 앉히고 싶어서 그런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해라도 한다. 기자회견장 뒤쪽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야, 우리 차례는 언제 오냐. 관장님이 신호하면 덤벼들까”라는 말이 들렸다. 씁쓸했다. 언제까지 이들의 행동을 태권도인들이 용납할지 궁금할 뿐이다.

19일 국기원 기자회견에서 이승완 상임이사가 예정에 없던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국기원의 기자회견 강행도 이해가 안된다. 엄운규 원장의 복귀 요청을 위해서였지만, 이는 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게다가 국기원 내부적으로도 전체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한 직원이 강행돌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기원 한 직원은 “그동안 (서태협에)최대한 대응을 자제해 왔던 것은 국기원과 태권도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기원을 무슨 동네북처럼 생각하는 그들의 행동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엄운규 원장이 국기원에 있을 때 보여주어야 했다. 지금은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밥그릇’ 지키기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태도는 얄밉기까지 하다. 정관개정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국기원이 문체부 소속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다. 그렇다면 문체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 상황을 중재해야 한다. 하지만 불난 집 불구경 하듯 뒷짐만 지고 있다. 괜히 나서서 불똥이 튀어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국기원의 특수법인 추진은 태권도진흥재단에게 자신들의 영역을 뺏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덩달아 진행한 것이다. 문체부 입장에서는 앉아서 태권도 최고의 수익단체를 거저먹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국기원과 서태협이 국기원 원장(혹은 이사장)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두고 싸우는 동안 문체부는 조용히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때 가서 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엄운규 원장의 우유부단함도 이번 사태를 키우는데 한 몫 했다. 엄 원장은 도가 지나친 서태협의 행동과 국기원 직원들의 무성의한 태도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후 보여준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여전히 국기원 원장으로서 업무와 권리를 행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엄 원장은 “차기 이사장과 원장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일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장 임기(2009년 9월 21일까지)가 남은 상황에서 좀더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공식적으로 말이다. 엄운규 원장은 기자회견 직후 가진 전화통화에서 “복귀를 바라는 것은 국기원 입장이지 내 입장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기원 임직원, 서태협 관계자, 문체부 관계자 그리고 엄운규 원장이 모두 나서야 한다. 무식한 짓은 그만하자. 원탁에 앉아 대화로 해결하자. 그리고 진짜로 국기원과 태권도를 위하고 일선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결론을 내리자. 고집불통으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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