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WTF 총재 만나 태권도 통합 추진 용의

세계 스포츠사에 태권도 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소개한 국제태권도연맹(ITF) 최홍희(崔泓熙.82)총재.
1972년 1월 캐나다로 망명한 뒤 잦은 방북으로 친북 인사로 알려진 崔총재에게 남북 태권도 교류 등에 대해 들어봤다.
- 4차 남북 장관급회담(12월 12~16일)에서 북한이 남북 태권도 교류를 제의, 세계태권도연맹(WTF.총재 金雲龍)과의 통합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나의 평생 지론이 태권도가 하나면 우리나라도 하나가 된다 는 것이다. 지난 10월 방북 때 남북 태권도 교류를 제안했는데 그대로 된 것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물론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태권도 통합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제서야 그 얘기가 나온 것이다."
- 내년 봄 제주도에서 열리는 WTF 주최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참가할 것인가.
"거기서 ITF 태권도의 시범을 보여주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기를 하려면 그전에 규정이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
- 崔총재가 생각하는 두 기구의 통합 방법은.
"먼저 통합을 추진한다는 선언을 한 후 두 기구가 동수(同數)로 교섭위원회를 구성하고 주기적으로 만나 사안들을 하나씩 논의해야 한다."
- 통합은 양보를 전제로 하는데 ITF가 WTF에 무엇을 양보할 수 있나.
"아직 협상이 시작되지 않았다. ITF가 무엇을 양보할지는 그 진전과정을 보면서 얘기하겠다. 한가지, 내가 태권도를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태권도가 잘되든 못되든 내게 책임이 돌아온다. 죽기 전에 꼭 통합을 이뤘으면 한다."
- 김운용 WTF 총재와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용의는 있는가.
"84년부터 金총재에게 만나자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둘이 제3국에서 만나 통합을 논의, 올림픽에 함께 들어가자고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아직 회답이 없다."
- 金총재와의 극비 회동설이 심심찮게 나돌았는데 사실인가.
"98년 박보희(朴普熙)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통해 예비접촉은 있었지만 유야무야됐다."
-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는데.
"시드니 올림픽 결과만으로는 아직 모른다.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잘 될지 두고봐야 한다. 가라테 는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기 위해 90년 통합을 이뤘다. 그 결과 2004년 올림픽 시범종목이 됐고 쿵푸도 2008년에 시범종목에 채택될 전망이다."
- 현 정부 출범 후인 98년 방한을 추진한 적이 있지 않았나.
"우선 WTF와 ITF 양 기구 태권도의 차이점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직접 가서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 60년대 자유진영에 대한 태권도 보급과 망명 후 구(舊)공산권의 태권도 보급도 재평가를 받고 싶었다."
- 55년 지어진 태권도 라는 명칭은 우리 고유 무도인 택견 과 연관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인가.
"그 당시 명칭 제정위원들 머리 속에는 공수 당수 밖에는 없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 신라시대에 택견이라는 운동이 있지 않았느냐. 그러니 태권도로 하자 고 제안했다. 하지만 알아보니 택견이 신라시대에 없었다."
- 이승만(李承晩) 당시 대통령이 택견 을 고집했다던데.
"명칭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국가의 무도(武道) 명칭을 정했으니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李대통령은 한글로 택견 으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李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기생집으로 데려가 며칠을 보내니까 태권도 를 재가했다.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날은 너무 기뻐 술을 진탕 먹은 기억이 난다."
- 40년대 일본 유학 중 가라테를 배웠다는데 사실인가.
"고향 선배의 소개로 주오(中央)대에서 가라테를 수련했다. 해방 전후만 해도 한국 사람은 가라테가 한국인이 만든 줄 알았다."
- 그렇다면 태권도 형성과정에서 가라테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겠는데.
"만약 가라테를 배우지 않았다면 태권도를 더 좋은 형태로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65년 정식 태권도 교본이 나오면서 가라테와 분리됐다. 75년까지는 태권도와 가라테가 흡사한 모습을 갖췄다. 최근에 와서야 태권도가 자유 맞서기 등이 보강되는 등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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