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칼럼]품새 속 기합의 비밀
기합, 얼차려의 의미
기합(氣合)이란 글자 그대로 기운을 의미하는 ‘氣’자와, 하나로 집합하여 모이게 한다는 뜻을 가진 ‘合’자로 자신의 기운, 즉 능력을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의미다. “발성(소리)을 통해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흐트러진 얼(기)을 바로 잡아 주는 일련의 행동” 을 말한다. 또한 기합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정신과 힘의 집중. 우리말로는 ‘얼차려’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중 기합술은 무예에서, 힘과 정신을 온몸에 모아 소리를 지르면서 보통 이상의 힘을 내는 술법을 뜻한다(우리말 사전,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2008).기합과 근력의 관계는 에너지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에너지 동원속도에도 영향을 끼친다(공성진, 1992). 기합은 에너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온몸의 수축을 유도해 내는 것이 기합의 목적이다. 특히 격파 시 기합과 함께하는 이유가 있다. 격파물에 충돌하는 순간에 온 몸이 긴장하고 그 순간 힘의 집중에 의해 발생되는 타격력의 결과이다.
기합의 효과와 가치에 대한 설명 요약을 요약해 보자. 먼저 △기합을 통해 순간적으로 근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점과 △호흡의 연속성을 통해 호흡조절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단전호흡의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기합을 통해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잡는 효과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가치로서 자아에게는 자신감 배양이라는 효과가 있다.
기합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훈련 시 해이해진 정신을 재무장하는 방법으로 동원되는데 ‘얼차려’라는 우리말이 이럴 경우일 듯하다. 겨루기 시 전술적으로 상대의 기를 꺾기 위한, 틈새를 노리는 목적으로 쓰인다. 맞춰 겨루기 시 넣게 되는 기합도 공방자 상호간에 질문하는 형식으로 볼 수 있는데, 그때 기합의 의미는 묻고 답하는 방편으로 기합이 교류되는 것이다.
품새에서 기합이 가는 철학적 원리

지난 WTF 제3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 경기모습
기합이 철학적 의미로 풀이되는 것은 바로 품새의 경우이다. 품새에서 기합의 수는 모두 27번이다. 품새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데 태극 1~8장, 곧 8개의 유급자용과 고려~일여에 이르는 9가지의 유단자용 품새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27번의 횟수에서 당연히 적용되는 원리가 있다. 유급자용 태극 품새에서는 주로 1번, 유단자 품새에서는 2번이다. 이 가운데 예외적인 현상은 태극 8장, 유단자 품새에서 십진, 천권에서 기합의 수가 다르게 드러난다.
태극 8장은 기합이 두 번(2)이고 십진은 세 번(3), 그리고 천권은 단 한 번(1) 기합을 넣도록 돼 있다. 기합의 동작 위치는 주로 지르기(10), 치기(9), 차기(4), 찌르기(2), 막기(2)에서 나타난다. 품새에서 기합은 품새의 율동(rhythm) 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합 시 동작은 아주 역동적이다.
품새에서 기합의 횟수가 1~3번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분명 어떠한 철학적 원리를 쫓는 듯하다. 필자는 오랜 궁리(窮理 사리를 깊이 연구함) 끝에 깨닫게 되었는 바, 그것은 『도덕경』제42장에 보이는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으니, 셋이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라는 도가적 우주론(cosmology)에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1)은 하늘을, 이(2)는 땅을, 삼(3)은 만물을 상징한다. 인간은 만물 가운데 하나로서 으뜸의 위치에 있다. 기합의 수가 하늘, 땅, 사람을 표상하는 수, 즉 1, 2. 3수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과 일치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천지인사상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급자 ‘태극’ 품새와 고려~일여 유단자 즉 (‘태극인’ - 필자)품새에서 기합의 횟수는 1과 2가 주를 이루는 것은 태극 품새는 형이상적 개념이며 그것의 수는 하늘수로서 1이고 유단자 품새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형이하적 개념으로서 그것의 수는 2이다. 여기서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기합의 수에서 태극 8장은 곤(坤)/땅을 나타내기에 땅의 수로서 2이고 유단자 품새 중 천권은 하늘의 수로서 1이다. 그리고 십진 품새는 만물을 상징하는 수, 즉 음(2)과 양(1)의 합수로서 3이다(이경명, 2007).
『태권도교본』(국기원, 2006)에서 태극 8장은 “팔괘의 곤을 의미하며 그것은 음과 땅을 나타내는데”, 두(2)번의 기합 수는 그 의미에 상응하고 천권은 “만물의 근본이며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한 하늘(양)이 가진 대(大)능력을 의미하는데”, 단 한(1) 번 기합을 넣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동양사상에 따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1은 양(陽)수이고 근본으로서 하늘인데 반해 2는 음(陰)수이고 땅인데 이 둘은 하나에서 분화된 수라는 원리를 좇고 있다.
품새 이름의 상징이 품새선, 그 선상(線上)에서 동작의 흐름은 품새명(名)의 사상을 표상하고 있다. 그와 함께 기합의 횟수도 심오한 동양적 사유의 원리에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품새 방향에서 나타나는 ‘방향의 순서’와 ‘나’ 위치의 철학적 의미도 깊다. ‘나’는 수련자 자신을 일깨우는 자아(自我)를 함의한다. 품새의 가치는 수련자로 하여금 그것을 통해 인성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에 있다.
기합은 정신집중으로 모아지는 기(氣)가 이(理)를 타고 ‘얏’하는 힘찬 소리로 폭발하는 기운이 수련의 도를 향상시켜 줄뿐만 아니라 그 행위자체가 바로 철학함이다. 품새에서 기합과 함께하는 동작은 전체 흐름의 고지로서 밖으로 무적 기성(武的 氣性)을 찰나에 드러내고 내면으로는 ‘깨침’을 얻어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위한 점진적 닦음이 이어지도록 하는 수양(修養)의 방편이 되고 있다.
[담당자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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