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山山水水]그래, 꼭 법정법인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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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이야기 - 국가와 개인, 그리고 국기원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장 폴 샤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의 합장묘가 있다.20세기 프랑스의 지성으로 불린 샤르트르와 ‘제2의 성’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보봐르는 부부였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특별했다. 1929년 둘은 그 유명한 계약결혼을 했고, 이후 51년간 이를 유지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고,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했고, 이를 철저히 지켰다. 둘의 계약결혼은 우리네 시각으로 보면 엽기적이기에 충분했다. 샤르트르는 보봐르의 동성애 상대인 여성을 유혹하고, 보봐르는 샤르트르의 제자와 밀회를 즐겼고 심지어 이를 편지로 샤르트르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샤르트르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세기의 지성’ 보봐르, 솔직히 둘의 독특한 사랑에는 큰 관심이 없다. 주목할 만한 것은 요즘 유럽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계약 결혼(혹은 연애)’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요즘 유럽에서는 결혼을 하는 3쌍 중 한 쌍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 개인의 문제를 국가권력에 ‘보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불필요한 국가의 간섭이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간통죄’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아랍국가들을 제외한 문명화된 나라 중 간통죄가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국가가 침실문제까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MB정부의 기본철학도 ‘민간의 자율을 중시한다’이다.
이런 ‘국가와 개인이라는 관점(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대학 논술시험에도 자주 등장하는 논제이기도 하다)’에서 최근 국기원 문제를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현재 국기원은 법정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 2007년 12월21일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하 태권도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2008년 2월29일 일부개정), 2008년 6월12일 이 법률에 따른 시행령(대통령령 제20810호)과 시행규칙(문화체육관광부령 제5호)이 발효되면서 국기원은 36년만에 뿌리를 교체하는 대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법정법인이 아닌 특수법인

일단 용어부터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자꾸 ‘법정법인’ 운운하는데 이는 관련법규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고, 법률용어로도 정확성이 떨어진다. 원래 국기원은 민법상의 재단법인이다.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법인을 말한다. 이것이 특별법이 정하는 특수법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특수법인이 올바른 말이고, 굳이 표현하자면 ‘특별법정법인’(특별법이 정한 법인이라는 뜻)이다. 즉 현재 국기원은 기존 민법 상의 재단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민사법원 판사의 자문에 따르면 법정법인은 한국법원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고, 일부 학자들이 사용한다고 함. 특수법인은 대법원 판례에도 자주 나온다).
용어가 좀 어려워서 그렇지 여기서 ‘재단법인의 특수법인화’는 간단히 말해 국가(혹은 정부)가 특별한 법을 통해 국기원의 키를 쥐게 된다는 뜻이다. 태권도특별법 제19조에 따르면 새로운 국기원은 가장 기본이 되는 정관을 문화관광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설립 자체부터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업과 활동도 이 법률에 의해 정해졌다. 수익사업인 경우에는 장관이 인정하는 것만 가능하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사권도 ‘완벽하게’ 정부로 넘어간다. 이사장과 감사는 장관이 마음대로 임면하고, 이사조차도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이사장이 임면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국기원 최고임원들을 마음대로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대로 갖다 바쳤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갖다 바친 정도가 아니라 그 뿌리까지 새롭게 해 광까지 낸 후에 선물로 드렸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특수법인 국기원이 설립되면 그와 동시에 이전 민법상의 재단법인 국기원은 자동 해산되기 때문이다.
국기원을 정부에 통째로 헌납하는 특별법
이런 어마어마한 일, 즉 국기원의 정부기구화를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추진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 장단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기원이 준정부기관으로 변신하면 절대 망할 리없고, 소속 직원들의 신분이 안정되고, 철저한 감사를 받게 돼 운영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각종 사업 등에 있어 국가 차원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국기원 측 설명).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이런 장점은 허울에 불과하다. 태권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국기원은 망하지 않고, 무능하면 공무원도 퇴출시키는 세상에 안정된 신분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국가의 지원도 국기원이 기본적으로 외부에 의존할 정도로 돈이 없는 곳이 아니고(2008년 예산 약 87억원), 필요하면 민간단체로도 얼마든 공적 지원을 받을 방법이 있다(이를 위해 태권도 진흥법을 만들고, 태권도진흥재단이 있는 것이다). 조직 효율성과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꼭 조직전체를 국가에 헌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장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 정말 특수법인으로 꼭 바꿔야하겠구나’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동의가 나올 정도는 분명 아니다.
단점을 보자. 일단 정치권력에 대한 예속이 가장 우려된다. 가뜩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심한 한국에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국기원은 심하게 요동칠 수 있다.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는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고, 각종 사업과 활동 등에 있어서 국기원과 태권도가 크게 오염될 수 있다.
둘째 태권도의 진정한 세계화에 어긋난다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외국 태권도 수련생이 국기원에 승품단 심사비를 내는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한국정부에 귀속되거나 한국정부의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예컨대 한국과 외교관계가 껄끄러운 국가는 국기원과 태권도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세계인의 태권도’를 한국정부가 관장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뜩이나 국기원의 세계시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위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셋째, 태권도의 자율성과 창의성, 효율성이 크게 침해받는다. 각종 인허가 문제로 관청에 들락거린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필요한 인허가를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하는지를.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이나 허가로부터 자유로운 국기원의 활동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태권도인들이 주인의식은커녕, 마치 구청에 출입하는 민원인처럼 국기원을 대하고, 국기원도 태권도인들에게 까다로운 관련법규를 먼저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왜 '잘못된 법정법인'으로 가야만 하는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쓴 웃음까지 나오는 것은 이러한 국기원의 특수법인화를 먼저 추진한 쪽이 정부가 아니라 국기원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가만히 있는데 국기원이 나서서 해달라고 조르고, 그래서 문화부는 마지못해 태권도특별법 입법과정에 이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태권도계를 장악하기 위해 국기원의 특수법인화를 정치적으로 추진했다고 욕하기도 힘들다. 현 정부에게 아쉬운 것은 국기원의 특수법인화는 노무현 정권 때 추진했던 일이고(실제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 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현재 MB정부의 철학과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냥 노무현 정부 막판 특별법이 통과됐고, 이를 추진했던 기존 정권과 코드가 맞는 고위공무원들이 현재 계속 이 ‘과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국기원의 핵심임원들은 자신들이 엉터리 행정으로 국보처럼 소중한 국기원을 망가뜨리는 것은 반성하지 못한 채 태권도진흥재단의 출현에 자극받아 ‘우리도 법정법인으로 가자’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국기원을 통째로 정부에 헌납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공무원임용법이 적용된 정관에 따라 계속 주요보직을 유지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이에 일부 이사들을 비롯한 임원들은 정관을 놓고 특별법이 정한 시한(1개월)을 넘겨 정부와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제와서 입장을 바꿔 지금 필자가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취지에서 특수법인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특수법인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판단한 국기원의 실력자는 태권도인들이 ‘법정법인’의 실체는 물론, 용어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틈을 타, 반대세력 거세용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행정능력이 뛰어난 실력자도 국기원이 특수법인화되고,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기원의 특수법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특정 개인이나 세력을 위한 특수법인화가 아닌, 진정한 태권도 발전과 국기원 위상 정립을 위해 말이다. 왜 꼭 국기원이 모든 최종권한이 정부에 있는 특수법인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일부 기득권 세력이나 태권도학자들의 그럴듯한 궤변이 아니라 제발이지 태권도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태권도인 스스로는 절대 단합할 수 없으니, 슬프지만 정부의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한심한 논리는 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친한 친구끼리 싸웠는데 도저히 화해할 수 없으니 경찰서나 법원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그리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잘못된 법률은 고치면 되는 것이다. 법률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것은 태권도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는 것을 왜 국가에 신고해야 합니까?”라며 결혼마저도 국가의 간섭을 거부하는 이 시대에 가장 ‘민간 자율적’이어야할 ‘태권도의 상징’이 속절없이 국가에 예속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유병철 선임기자 /einer@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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