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정우진, 이행웅 그리고 강원식

태권도신문사 사장으로서 강원식은 두드러진 활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많은 태권도인들은 그가 태권도신문사 사장으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권도신문이 그의 이미지 덕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20년이 넘는 세월을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에 몸담았으면서 대나무같은 이미지를 지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태권도신문은 초창기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강원식 사장 체제가 갖춰지면서 현재까지 한국 태권도계의 독보적인 주간 신문으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미국 등 언론 선진국의 경우와는 달리 전문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한국에서 5년 동안 매주 거르지 않고 신문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태권도신문은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강원식은 무엇보다도 태권도신문이 태권도계의 닫혀진 언로를 트고 태권도인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는 많은 태권도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엄격한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탓에 공론화되기 어려웠던 많은 문제들이 태권도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태권도신문에서 자주 비판하고 있는 태권도학회가 바로 그가 만든 단체라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강원식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 태권도가 잇따라 채택되는 분위기 속에서 태권도의 세계화 수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연구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국기원 연수원에서 일하면서 그 필요성을 강력히 느끼고 있던 중 그는 정찬모(단국대 교수), 김경지(경희대 교수)와 함께 1987년 11월 7일 태권도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는다. 태권도학회는 창립 이듬해인 1988년과 1990년에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논문집을 발간하는등 초기에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강원식이 회장을 그만 둔 후 활동이 부진해졌다.
태권도학회는 두 번째 학술발표회를 했던 1990년 여름, 김용옥 교수 사건으로 태권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태권도학회는 당시 학술발표회 발표자로 김용옥을 내정했다가 많은 태권도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이를 철회하는 곤욕을 치렀다. 이유는 김용옥이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라는 논문을 발표하려다가 그 내용 때문에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태권도 관련 저서치고는 일반인들에 꽤 많이 읽힌 이 논문에서 김용옥은 태권도와 가라데의 관계에 대해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태권도인들이 알면서 쉬쉬하던 것들을 김용옥은 이 논문에서 사정없이 드러냈다.이 논문에서 김용옥은 우리나라엔 태권도가 없었다는 장을 통해 "해방 후 우리나라의 당수(공수)는 모두 일본의 카라테의 완벽한 전이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김용옥의 학술발표회 참가는 무산됐고 나중에 강원식은 그를 집으로 찾아가 사과했다. 그때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강원식은 김용옥에게 아직도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강원식은 태권도계에서 일해오면서 마음의 빚을 지게 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 사람의 이름을 댄다. 김용옥, 정우진, 이행웅이 바로 그들이다. 정우진은 미국 태권도타임즈의 회장이다. 정우진이 1991년 강원식에게 남북 태권도 합동시범단을 만들어 남북태권도 교류를 하자고 제의했을 때 그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제안을 듣고서 대한체육회에 파견 근무 나와있던 안기부 직원을 통해서 안기부 입장을 확인했다. 안기부 입장은 좋다, 한번 추진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남북관계는 따뜻한 봄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양측 총리가 왔다갔다 하며 회담을 진행중이었고 서울과 평양에서 경평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더군다나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박철언이 북방정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 방침이 변경됐다. 갑자기 정부에서 불허 방침을 통보해온 것이다.
이 사실을 정우진에게 알리면서 강원식은 상당히 미안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으면 모르겠는데 잘 진행이 되다가 안된다고 하니 더 미안했던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정우진은 막판에 김운용이 개입해 틀어놓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강원식은 얼마 전 고인이 된 이행웅에게도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1994년 태권도한마당 부대행사의 하나로 강원식은 미국태권도협회(ATA) 회장이었던 이행웅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 계획을 세웠다.
이행웅측에서도 수락을 해 착착 준비하던 중 엄운규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이행웅은 강단에 서지 못했다. 강원식은 이행웅의 성공 스토리를 한국 관장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행사를 기획했으나 엄운규의 벽은 높았다. 언젠가는 이 마음의 빚을 갚아야지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이행웅이 세상을 떠나게 돼 강원식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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