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 최고 수익모델 ‘블랙벨트 아카데미’

[기획특집 - 태권도 단증의 가치를 되찾자 마지막 편]

국내 한 태권도장의 공개 심사현장. 전부 아동 수련생이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가진 면허증을 ‘장롱면허’라고 한다. 요즘 태권도(국기원)단증은 ‘장롱단증’으로 비하되고 있다. 국내 6백만명 이상의 유단자 중 태반이 장롱단증이다. 이는 태권도 수련 인구가 성인에서 아동으로 급격하게 변화되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1974년 3월 1일, 18세 미만이 승단에 응시할 경우 단이 아닌 품을 발급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다. 성인수련생과의 구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생활체육 활성화 바람을 타고 태권도장에서 점차 성인이 사라지더니, 지금은 씨가 말랐다.
품 제도는 3품까지였다. 그런데 1999년부터 4품 제도가 새롭게 추가된다. 국내 일선 도장에서 아동 수련생의 3품 취득기간은 대략 4년이다. 3품 취득 후 더 이상 올라갈 등급이 없는 수련생은 도장을 그만두는 확률이 크다. 이에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협의를 거쳐 4품 제도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미봉책이었다.
4품 제도는 품새조차 제대로 기억 못하는 ‘가짜고단자’를 양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6살에 태권도를 시작한 A군은 13살에 4품을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중학교 공부를 시작하면서 태권도를 그만둔다. 대학을 입학한 A군은 4품을 국기원에 찾아가 4단으로 교체한다. 국기원 품증 소지자는 별도의 심사 없이 단증으로 바꿀수 있다. 4단부터는 태권도 고단자로 평가한다. 하지만 A군을 태권도 고단자라고 평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가짜고단자의 범람과 성인들의 외면으로 인해 태권도 단증은 ‘돈만 있으면 딸 수 있는 것’, ‘애들이 추억으로 간직하는 증명서’ 등의 부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다. 또 일부 지도자 중에는 돈벌이에 급급해 속성단증을 만들어 주겠다며 광고까지 하고 있다. 단증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이는 국기원이 ‘단증공장’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단증의 가치와 수익을 함께 높이는 시너지 효과, 블랙벨트 아카데미

보스턴 김재훈 태권도장의 블랙벨트 클래스 수련자들
1편(10년째 태권도 1단인 제드의 고집)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 태권도 1단을 따기 위해서는 평균 3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이는 쉬지 않고 도장에 나와 땀을 흘렸을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블랙벨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물이다. 블랙벨트 수여식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들이 태권도 종주국의 블랙벨트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미국 내 성공도장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블랙벨트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랙벨트 아카데미는 3년간의 교육비를 한번에 선불로 받거나 분기별로 나눠서 받는 것이다. 비용은 도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5천불(6~7백만원)정도다. 이상철 관장(USTC 회장), 김재훈 관장(보스턴), 정순기 관장(버팔로), 이승형 관장(LA) 등 미국에서 도장 운영을 잘 한다고 소문난 지도자들은 블랙벨트 아카데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애너하임에서 만난 이상철 관장은 “블랙벨트 아카데미는 태권도 단증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도장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수련생 입장에서도 블랙벨트라는 목표를 가지고 정진할 수 있고, 매달 교육비를 내는 것보다 할인되는 효과도 있다. 물론 이는 도장 내에서 블랙벨트에 대한 권위와 가치가 있을 경우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보스턴 김재훈 태권도장의 경우 블랙벨트에 대한 대우는 특별하다. 도장에는 블랙벨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수련장이 따로 있다. 또 블랙벨트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 따로 있다. 급(흰띠~빨간띠) 레벨의 수련생들에게 블랙벨트는 특별한 존재로 비춰진다. 김재훈 관장은 “블랙벨트 아카데미 가입을 강요는 하지는 않다. 비용도 꼭 일시불로 납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 코스는 동기 부여를 통해 스스로 원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요하다. 일반 수련자에 비해 집중 훈련을 시키지만 심사는 엄격합니다. 블랙벨트 아카데미를 끝마쳤다고 단증을 주지는 않습니다. 심사에서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재훈 관장의 이 말 속에는 단증의 가치 상승은 곧 도장 수익을 높이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단증의 가치 높이는 일' 지도자, 국기원, 정부 모두 나서야 한다
한국의 현실에서 미국식 블랙벨트 아카데미를 도입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블랙벨트 아카데미의 핵심이 단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의식전환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의례 블랙벨트 심사에 응시 할 수 있다는 수련생과 학부모들의 생각을 바꿔보자. 응시 기준부터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련생 숫자에 급급한 수업보다는 블랙벨트와 급 레벨의 수련자를 나눠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하자. 도장이 좁다면 수업 시간을 나누자. 수업을 수련생 스케줄에 맞추지 말고, 수련생이 수업에 맞추도록 해보자. 또 성인 수련생을 위한 수업과 환경을 마련해보자.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수련생이 감소할 수도 있다. 내 도장 수련생들이 쉽게 블랙벨트를 딸 수 있고, 수련생 개인 시간에 맞춰준다는 근처 도장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자. 진짜 실력있는 태권도인을 배출해 보자. "이 도장 블랙벨트는 진짜야"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 질 것이다.
국기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증의 가치을 높이기 위해 한시적이라도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자. 승단 심사에 쿼터제(상대평가)를 적용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존 승단 합격자들과 형평성 문제가 지적될 수 있지만, 단증의 가치 상승이라는 대의적인 측면에서 밀어붙여야 한다. 또 품에서 단으로 교체해 줄 경우 간단한 심사규정을 마련하자. 이를 통해 성인들이 어린 시절 수련했던 태권도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게 말이다. 그러면 이들이 근처 도장을 찾을 확률이 더 높아 질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기대해 봄직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태권도진흥 기본계획(09 ~ 13)에는 승단심사에 대한 개선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문체부는 기본계획에서 "국기원을 세계태권도 중앙도장으로 취지를 살려 무도의 본산으로 육성하고 승품단 심사 등 경기제도를 선진화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체부가 이러한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에 앞서 단증 소유자에 대한 혜택을 늘려주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 군, 경 가산점 확대 시행 및 공무원, 교사 임용시 가산점 부여 등은 국기원은 물론 태권도 관련단체에서 적극 권의해 볼 만한 내용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다. 어떠한 큰일이라도 조금씩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국기원의 단증체계는 이제 30년 조금 넘었다. 또 국내 도장의 승단심사 문화는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체념하는 태도를 보이는 태권도 단체 관계자들과 지도자들에게 우공이산은 꼭 필요한 말 같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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