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해동검도 탄생 ‘안양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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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서 ‘해동검도보급' 일념 하나로 버틴 1년

1982년 개관한 안양도장에서 김정호 총재(당시 29세)의 술기 시연
현재 전 세계 120만명의 수련생을 보유하고 있는 해동검도의 시작은 초라했다. 김정호 총재(당시 29세)는 1982년 7월에 해동검도의 최초 도장인 ‘안양도장’을 개관했다. 한국 고유의 검술인 해동검도를 보급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안양도장의 환경은 최악이었다. 당시 도장에 매트조차 깔지 못해 20명 남짓이었던 관원들은 대리석 위에서 맨발로 수련해야 했다. 또한 깡패들이 검을 이용한 무술이라는 소문을 듣고 들락거리기 일쑤였다. 세계해동검도연맹(이하 세계해동) 김정우 교육부장은 “(안양도장 시절은)정말 어려웠다. 김 총재도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때 포기했으면 지금의 해동검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동검도는 ‘시작은 미미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말처럼 25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다. 1983년 ‘안양도장’을 서울로 이관한 세계해동은 ‘하나의 해동검도(Only One Haidong Gumdo)'를 내걸고 일신우일신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세계해동은 전 세계 1,200여 개의 도장과 120만 명의 수련생을 보유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해동검도가 현재 크게 두 단체로 나뉘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세계해동와 한국해동검도연맹(이하 한국해동)이다. 두 단체는 해동검도의 창시와 최초 개관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해동은 해동검도의 창시자는 나한일 총재(현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이고 최초의 도장도 1984년 ‘서초도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세계해동은 이 사진과 함께 여러 증거자료를 세상에 공개하며 역사논쟁에서 주도권을 차지했다. 한국해동도 전 세계 600여 개의 도장과 50만 명의 수련생을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성량 수습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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