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국기원 단증 사용은 “의리 때문”

[기획특집 - 태권도 단증의 가치를 되찾자 2편]

미국 내 한 태권도장의 수련 모습
미국에서 태권도장의 숫자는 대략 3만여 개로 추산된다. 이중 현지 미국인이 운영하는 도장이 2만개, 한인 사범이 1만개 정도로 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태권도장 개관에 제한이 없다. 자격조건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태권도지도자(사범)와 생활체육3급(태권도) 자격증이 필요한 반면, 미국은 신청만 하면 누구나 태권도장을 열 수 있다. 양국 도장 개관의 기준 차이는 다양한 형태의 태권도를 만들어 낸다. 물론 이외에도 문화적 차이와 타 종목 지도자들의 태권도장 개관 등도 이유로 꼽힌다.
대부분의 한국 태권도장은 국기원 단(품)증을 사용한다. 규제로 묶어 놨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개인이 발행하는 단증이 대부분이다. 이는 도장 개관 요건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특별히 단증에 대한 기준과 규제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 사범들이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사범들은 수수료를 부담하는 국기원 단증 사용을 꺼리고 있다. 국기원 단증을 사용해서 오는 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세계태권도연맹(WTF) 규정에 ‘국기원 단증 소유자만이 경기를 치룰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미국 경기인들이 의무감에 신청하는 정도다. 다시 말해 미국 내에서 국기원 단증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체 한인 사범들만 놓고 따져도 국기원 단증 사용 비율은 전체 5% 내외다. 이는 미국 내 국기원 단증 현황과 한인 사범의 비율을 따지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5%의 한인 사범들이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캘리포니아에서 20년째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한인 사범은 “미국 제자들은 3년 이상의 수련과 엄격한 심사를 통해 국기원 1단증을 받는다. 그런데 가끔 한국에서 온 학생들 중 2품증을 들고 도장에 입관하는 경우가 있다. 실력이 미국 학생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수련기간도 짧다. 하지만 같은 국기원 단증이라 어쩔 수 없이 2단으로 인정해 수련을 시킨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미국 제자들을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고 국기원 단증 사용의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뉴욕주의 한 한인 사범은 “매년 국기원에 단증비로 송금하는 돈이 2천5백만원 정도 된다. 국기원 입장에서는 내가 큰 고객인 셈이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얼마 전 국기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특별히 주는 거라고 기념품 시계 하나가 고작이었다”라며 “그런 생색내기보다는 미국 수련생들이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는 것에 자부심이 느낄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홍보라도 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국기원 이름으로 ‘태권도 이미지 포스터’를 제작해 해외 도장들에게 실비만 받고 제공해 주는 노력 정도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돈을 국기원에 가져다주면서도 일부 미국 사범들이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의리’ 때문이다. 70~80년대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한인 사범들은 국기원의 상징성과 그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최근 잇따른 구설수에 오른 국기원에 대한 실망감이 크지만, 그래도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국기원은 이러한 일부 한인 사범들의 애정을 무시하고 있다. 과거 한 국기원 임원은 사석에서 “한국에 비해 미국으로 나가는 단증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말들이 많아. 사용하기 싫으면 관두라고 해”라며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얼마나 속 좁은 생각인가. 물론 일부 인사의 발언이었지만, 이러한 마인드가 국기원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해가 갈수록 국내 단증 취득 현황이 눈에 띠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국기원의 선택은 당연히 해외다. 언제까지 일부 한인 사범들의 의리만을 믿고 있을 것인가. 국기원은 해외 태권도인들이 자발적으로 국기원 단증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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