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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운규와의 악연




1989년 대한태권도협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김운용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상정됐던 사건의 여파로 대태협 전무이사로 복귀해 일하던 중 1991년 강원식은 새로운 회장을 맞이하게 된다.

김운용 회장이 1991년 자리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는 회장 자리를 내놓으면서 당시 대한광학공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최세창을 영입한다. 최세창은 12·12 쿠데타 세력의 일원으로 국방부장관까지 지낸 바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세창은 김운용 회장의 경동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했다.

이 신임 회장이 강원식에게 함께 일하자고 권유해와 그는 전무이사직을, 1996년 삼성이 회장사로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

강원식은 최세창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강원식의 기억으로는 그는 군 장성 출신답지 않게 매우 소탈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판적인 의견도 충분히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세창이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바로 1995년 하반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5·18 특별법 제정 때문이었다. 당시 이 법의 발효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쿠데타에 동참했던 많은 인사들이 감옥에 가거나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는데 최세창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1996년 1월에 있었던 대태협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태협 사무국장이었던 임춘길을 비롯해 서울과 전남의 태권도인들이 엄운규를 회장에 앉히자고 강원식에게 제의해왔다.

그러나 강원식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강원식에게 "전무이사는 당신이 계속 하시오"라고 제의하면서 끈질기게 요구해왔지만 강원식은 끝내 거절했다. 엄운규와는 협회 활동 초기부터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강원식은 문화체육부 차관보였던 최창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선 최창신은 고위 체육관료인데다가 태권도인이었고 무엇보다 태권도 발전에 대한 그의 마인드를 강원식은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게다가 최창신이 회장 자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강원식은 알고 있었다.

최창신은 문화체육부 차관보로서 태권도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임원들이 모여 태권도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했는데 태권도성전 얘기가 나왔을 때 최창신이 충남 목천에 30만편의 부지 확보가 가능하니 한번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강원식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때 엄운규와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이금홍은 그냥 국기원을 증축하자고 주장했다고 강원식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때마침 당시 태권도계 복귀를 모색하고 있던 이승완(현 대태협 상임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전화에서 이승완은 최창신을 추천했다. 이 전화로 강원식과 이승완의 인연은 오늘에 이르게 된다. 현재 이승완은 태권도신문사 회장이고 강원식은 태권도신문사 사장이다.

강원식은 엄운규를 견제하기 위해 이승완의 회장 출마선언을 통해 엄운규와 이승완의 동반 사퇴를 꾀했고 결국은 삼성 그룹이 회장사로 태권도계에 들어오는 것으로 일은 매듭지어진다. 당시 삼성물산의 대표였던 이필곤이 회장으로 이흥주가 상임부회장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때 강원식은 전무이사 자리를 내놓고 오랜 협회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1973년에 처음으로 대태협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24년만이었다. 이후 그는 잠시 쉬고 있다가 이승완의 권유로 태권도신문사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댓글 5

림 원 섭 2000.12.22
옳고 그른 분별력이 분명하기 때문에 --- 적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르다 -.
림 원 섭 2000.12.22
옳고 그른 분별력이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 적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르다 -. 또 큰 별을 보는 눈과 쪼그마한 별을 보는 눈의 차이가 있다.
익명 2001.03.08
홍길동 2001.03.21
이승완부회장이 현 상임 부회장이 아님.
홍길동 2001.03.21
상임부회장님 맞습니다.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