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뒷담화] MIT, 하버드, GE 그리고 태권도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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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40만불을 뒤로하고 태권도 사범을 선택한 사나이
세계 최고의 학부를 나와 글로벌기업에서 억대연봉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태권도 사범을 하기 위해서 은퇴를 했다면 믿겠는가. 미래가 유망했던 한국인 청년 A씨는 고교시절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 월남에서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아버지의 권고 때문이었다.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던 열혈청년의 싸움 상대는 공부였다. A씨는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MIT에 입학한다. 그가 다니던 캐나다 공립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하버드 MBA(경영대학원)에 도전한다. 한국인으로서는 6번째였다.
이런 그에게 당대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GE(제네랄 일렉트릭)에서 손을 내민다. 입사 후에도 빼어난 활약을 보인 A씨는 GE 북태평양 사업단 부사장으로 발령을 받고 한국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 판매된 항공기 엔진은 물론 무궁화위성 1, 2호도 그의 손을 거쳤다. 당시 그의 연봉은 40만 달러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GE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태권도 때문이었다.
A씨는 10대 시절부터 태권도를 수련했다. 몸이 날래던 그의 태권도 실력은 또래에서는 상대가 없을 정도로 출중했다. MIT 시절 A씨는 태권도클럽을 만든다. 학내 최초였다. 태권도 클럽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수련공간이 부족해 두 곳으로 나눠 진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태권도는 심신단련과 호신을 위한 운동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故)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와의 만남은 태권도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최홍희 총재는 A씨에게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보스톤에 태권도를 전파할 것을 권했다. A씨는 이를 받아 들여 보스톤에 태권도장을 개관한다. MIT 시절 잠시 휴학을 했던 것도 태권도장 때문이었다. A씨는 대학시절은 물론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한국에서 공군장교로 근무하던 시기에도 보스톤 도장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그리고 GE에서 최고의 대우를 보장받던 1992년,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39살 때였다.
“제가 태권도 사범을 하기 위해 GE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심의택 씨가 농담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 시절 태권도 사범의 사회적인 지위는 형편없었거든요. 당시 부모님들은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만, 제가 부모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속을 많이 상하게 해 드렸던 것 같아요(웃음).”
A씨는 기본 토대가 갖춘 보스톤 도장을 중심으로 뻗어 나기기 시작한다. 그는 철저하게 성인을 위한 실전태권도를 가르쳤다. 도장 시설과 프로그램도 성인 중심으로 운영했다. 그 결과 수련생의 대부분이 성인으로 채워졌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보스톤을 중심으로 시애틀, 싱가포르, 한국 등의 지관 설립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A씨는 57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매일 같이 도복을 입고 수련생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태권도협회 등의 정치적인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A씨에게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인 A씨는 김재훈 태권도장의 김재훈 관장이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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