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최신뉴스

강원식 국기원에서 다시 대태협으로



강원식은 국기원 부원장을 맡으면서 당시 무덕관 사무처장을 하고 있던 황춘성(현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을 대한태권도협회 운영부장으로 기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무국장으로 승진시켜 협회 일을 맡겼다.

당시엔 광주에서 수천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의 서슬이 퍼랬기 때문에 사회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어렵던 상황이 하루아침에 일선에서 물러난 각 관 관장들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강원식을 의심했다. 다들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강원식만은 사표도 반려되고 계속 일하게 되니까 당시 사회정화위원회에 자신들을 찔러 자리를 빼앗은 게 강원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한 태권도인은 "아마도 당시 김운용 회장 최측근에 있던 모 인사가 사회정화위원회에 다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시 기세등등하던 신군부와도 관계가 깊어 김운용 회장마저도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이 인사에게 힘이 집중되면서 단증을 남발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청와대에까지 잡음이 전해져 다시 문교부에서 진상 조사를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불똥이 강원식에게까지 튀었다.

당시 국기원 사무국장으로 있던 이장원이 강원식에게 문교부에 제출할 시말서를 쓰라고 요구했고 강원식은 원장(김운용)이 쓰지 않는 한 쓸 수 없다고 버텼다. 이 과정에서 강원식은 사표를 던졌다. 잘못한 것도 없이 시말서를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부원장 자리를 내놓고 집에서 쉬고 있던 강원식에게 어느날 국기원 이사회에 참석하라는 통지서가 날라왔다. 부원장 자리는 내놓았지만 이사 자리에서는 사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심 끝에 이사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우연히도 이 자리가 그를 다시 국기원에서 일하게 한 원인이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홍종수를 김운용 국기원 원장이 부원장으로 선임하겠다고 한 걸 강원식이 반대한 것이다. 이유는 국기원 정관에 보면 부원장은 이사 중에서 선임한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사도 아닌 사람을 한번에 부원장 자리에 앉히느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정관 상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운용 원장은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바 있는 안현태가 사표를 냈다면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면서 몇 마디 하더니 바로 폐회선언을 해버렸다.

이날로 김운용 원장은 이종우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종우는 다음날 강원식과 만나 국기원에 지도자 연수원을 만들기로 합의하게 된다. 이것이 국기원 지도자 연수원의 탄생 배경이다. 지도자 연수원이 생기면서 이종우가 원장, 강원식 부원장, 김호재가 학감을 맡게 된다. 이 지도자 연수원은 지금도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아무튼 그 출발 의도와 초기의 역할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강원식은 지도자 연수원에 있을 때 몇 달 동안이나 로비를 벌여서 당시 체육부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그램인 코치아카데미에서 태권도만 떼어내 국기원 지도자 연수원으로 가져왔던 일을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근 10여년의 세월을 국기원에서 보낸 강원식은 1989년 김운용 대태협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원총회에 상정되는 파동 끝에 다시 대태협 전무이사로 복귀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댓글 1

김성재 2001.02.07
다시 전과같이 태권도의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이끌어주실 모습을 고대하는 사람이 많다는것 잊지 말아주십시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