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MC 취소사태’는 한국 격투기의 자화상

경제논리 앞에 6년간 지켜온 자존심 무너져
국내 격투기 시장에서 '스피릿MC'는 토종 자존심으로 통한다. 이는 격투기 관계자뿐 아니라 매니아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국내 격투기 시장은 K-1, 프라이드 등 일본 격투기의 세계적 성공에 영향받아 2003년 이후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스피릿MC를 비롯 네오파이트, 스트라이킥 등 격투기 대회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이 시점이다. 하지만 시장성을 감안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격투기 대회들은 대부분 경영난에 시달리다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스피릿MC는 2003년 3월 첫 대회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30일 열린 예정이었던 스피릿MC19 대회 포스터. 이제는 쓰레기가 됐다
지난 24일 스피릿MC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주최사인 (주)엔트리안(대표이사 박광현)이 30일 충청대학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피릿MC 19' 대회를 돌연 취소한 것이다. 엔트리안은 취소한다는 발표 직전까지도 ‘무료관람’, ‘출전 선수 인터뷰’, ‘스피릿MC 최초 지방대회’ 등의 보도자료를 언론사로 보내며 여론몰이를 했다. 그렇기에 급작스런 취소는 팬들과 언론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그런데도 엔트리안 측은 “내부사정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내놓았다.
엔트리안은 지난 9월 충청대학(이사장 오경호)과 최중화 계열의 국제태권도연맹(ITF)과 함께 격투스포츠 활성화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이에 대한 첫 단추로 스피릿MC를 충청대학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전 경기 무료관람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는 충청대학과 ITF가 스폰서 역할을 한다고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대회 운영 자금 등 구체적인 의견조율에 실패하면서 결국 파행을 맞았다.
박광현 엔트리안 대표이사는 “사과 공지에 밝혔듯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대회 일정을 연기하게 된 것은 협약을 맺은 단체 간 서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대회를 우리(엔트리안)가 떠안고 무리를 해서라도 강행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많았기에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팬들과 선수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셈이다.
경기 취소 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충청대학이나 ITF는 별일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창진 ITF 사무총장은 “우리(ITF)가 내세운 선수들과 매치업이 안 맞는 부분도 있고,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 대회가 취소됐다”며 “우리(ITF)는 자체적으로 ‘무신전’을 치룬다. 여기에는 외국의 WTF와 ITF, 그리고 일본 판크라스 출신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다”고 말했다. 무신전은 30일 충청대학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어 오 사무총장은 “그렇다고 엔트리안과 우리가 맺은 협약식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진행할 사업들이 많다. 서로 국내 격투기 발전을 위해 노력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트리안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하다. 하지만 애써 웃는 모습이다. 이벤트 및 각종 대회를 주최하는 엔트리안 입장에서 충청대학과 ITF는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 엔트리안이 수익성 없는 스피릿MC를 계속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관련 사업을 통한 수익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릿MC는 아직 확실하게 자립에 성공한 대회는 아니다. 경제돈리 즉 돈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지난해 8월, 4백만 달러에 제휴계약을 맺은 엘리트XC가 망하게 된 것도 엔트리안을 압박하는 이유다. 엔트리안 측은 이를 부인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해 한 선수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10kg 이상을 감량하고 있었다. 또 지방 격투기 팬들의 기대감도 상당히 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엔트리안이 팬을 외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내 최고의 격투기 대회라고 자부하는 스피릿MC가 말이다. 이번 취소사태는 열악한 한국 격투기 시장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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